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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내리기. 소줏고리를 화덕에 앉히고 열을 가한 뒤 증발된 소주를 냉각시켜 병에 받는다.(전주전통술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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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가볼 만한 전통주 빚기 체험 프로그램들…숙성되면 배달받아 집에서 즐길 수도
먹을거리 풍성한 가을 한복판이다. 한가위가 다가왔다. 새로 수확한 곡식과 과일로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조상들께 올리며 감사드리는 날이다. 한가윗날 상차림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술이다. 옛사람들은 일찌감치 술을 빚어 담가두고 때맞춰 익혀 제상에 올렸다. 약주도 빚고 소주도 내렸다. 지역마다 집안마다 독특한 맛과 향을 자랑하며 전해오는 전통주들이 그것이다.
시음 때는 과음하지 마세요
한가위에 즈음해 전통주를 직접 담가볼 수 있는 행사들이 여러 곳에서 진행된다. 한가위를 앞뒤로 온 가족이 전통주 배우기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풍성한 가을을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발효와 숙성 과정이 필수인 술 제조 과정의 특성상 전 과정을 체험할 수는 없다. 미리 준비된 고두밥·누룩 등 재료를 가지고 일부 과정을 체험하면서 전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는 방식이다. 담근 술을 가져갈 수도 있다. 재료 준비가 필요하므로 예약은 필수다.
⊙ 전주전통술박물관 | 전주 한옥마을에 자리한 우리나라 전통 가양주(집에서 빚은 술·각 집안에서 대를 이어 빚어온 술) 전문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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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전통술박물관 체험관에 준비된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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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정문엔 ‘수을관’

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술의 옛이름이 수을이다. 전통 슬로푸드의 향기가 느껴지는 현판이다. 체험장으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누룩향이 몸을 감싸 온다. 한쪽 탁자 위로 술 빚는 데 쓸 누룩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누룩뿐 아니라 시음 행사에 쓰는 전통술 술단지들에서 풍기는 술내음으로 은근히 입맛을 다시는 방문객들이 많다.
박물관 안에서 술 향기가 진동하는 건, 술 빚기 체험 행사가 일상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미리 예약하면 누룩 빚기, 소주 내리기, 막걸리 거르기 체험을 하며 직접 술맛도 볼 수 있다. 술박물관의 가양주 전문가들이 직접 진행한다. 우리 전통주에 얽힌 풍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가장 인기를 끄는 건 소주 내리기와 막걸리 거르기다. 직접 내리고 거른 술을 맛보며 다른 술과의 차이점에 대한 설명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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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개의 오크통으로 장식된 충주 세계술문화박물관(리쿼리움)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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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내리기는 화덕에 소줏고리를 얹고 끓여, 증발된 소주가 냉각작용을 거쳐 흘러나오는 과정이다. 소주의 기원과 제조 원리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진다. 물론 시음 기회도 있다. 예전엔 독한 소주를 여러 잔 마시곤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며 박물관을 나서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한두 잔으로 제한한다(1시간 소요·참가비 10인 기준 한 팀당 10만원). 지초(붉은색이 강한 한약재)와 꿀을 재료로 만드는 감홍로주 내리기 체험도 있다. 소주를 내릴 때 병 위에 지초를 얹으면 소주가 떨어지며 붉은빛을 띠게 된다(10인 기준 8만원).
막걸리 거르기는 직접 빚은 가양주 덧술(2차 발효술)을 체로 걸러 막걸리를 낸 뒤 함께 맛보며 막걸리 유래와 제조 과정·종류 등에 대해 배운다. 어린이·청소년들을 위한 누룩빚기 체험도 있다. 전통술의 기본이 되는 재료인 누룩에 대한 설명과 함께 발로 디뎌 누룩을 만드는 과정이다. 이와 별도로 추석 연휴 기간엔 각종 가양주와 소주 제조 과정 배우기 및 시음 행사를 연다.
본격적으로 술을 빚어보고 싶다면 전통주 빚기 전문강좌에 참가하면 된다. 누룩 빚기에서부터 청주·송순주·신선주와 소주 등의 전 제조 과정을 이론·실습으로 배우는 11주 과정이다. 40만원, 전주전통술박물관. 입장료 없음. (063)287-6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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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볼거리> 잘 정비된 한옥마을을 한바퀴 둘러보며 옛 멋을 느껴볼 수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경기전을 비롯해 공예품전시관·한옥생활체험관·전통문화센터 등 볼거리, 체험거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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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동자북마을에선 한산소곡주 빚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밑술과 고두밥을 섞기 전에 뜨거운 고두밥을 펴 식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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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천 한산소곡주 체험마을 | 소곡주는 백제 왕실에서 즐겨 마시던 술이라고 알려졌다. 백제 멸망 뒤 유민들이 한산 지역에서 다시 빚어 마시면서 한산소곡주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번 앉아 마시기 시작하면 일어설 줄 모른다 해서 ‘앉은뱅이 술’로도 불린다.
서천군 한산면 동자북마을은 소곡주 체험행사로 뜨고 있는 마을이다. 문화체험장과 식당 등을 마련해, 9월 초부터 소곡주 빚기와 모시떡 만들기, 농산물 수확 체험행사를 진행중이다. 특히 소곡주와 관련해선 제조장, 저장시설, 전시관, 판매장 등 대규모 체험시설을 만들고 체험객을 맞는다.
오랫동안 가정에서 소곡주를 빚어온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나서서 구수한 입담을 섞어가며 행사를 진행한다. 먼저 주민들이 미리 만들어놓은 밑술을 퍼놓고 갓 쪄낸 고두밥을 펴서 말린다. 한 주민은 “고두밥 떼어 먹는 재미에 빠져드는 체험객들이 많아 미리 밥을 충분히 준비해 둔다”고 말했다.
고두밥을 잘 말려 밑술과 으깨지지 않도록 섞은 뒤 술항아리에 담는다. 술을 담은 항아리를 묶을 땐 각자 소원을 적은 소원지를 새끼줄에 꼬아 넣는다. 항아리가 밀봉되면 체험객은 100일(소곡주 숙성 기간) 뒤 다시 찾아와 용수를 박아 술을 거르는 체험을 한 뒤 자신이 빚은 소곡주를 가져간다. 직접 찾아오기 어려우면 택배로 받을 수도 있다(체험비 소곡주 1.8ℓ에 2만원). 체험용 덧술을 빚기 위해선 밑술을 빚은 뒤 2~3일의 발효 시간이 필요하다. 반드시 4~5일 전에 신청해야 체험이 가능하다. 신청 서천문화원 (041)95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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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볼거리> 가까운 곳에 한산소곡주 제조공장과 한산모시관 등이 있어 들러볼 만하다. 부근에 있는 금강변 신성리 갈대밭도 아름답다. 금강 하굿둑 부근은 이름난 철새 도래지. 10~11월이 제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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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전통술박물관에서 누룩빚기 체험을 하는 어린이들.(전주전통술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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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뿐 아니라 유기농 와인·보드카·럼도 만들어
⊙ 충주 세계술문화박물관(리쿼리움) |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세계 술의 모든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종합 술박물관이다. 입구에 세워진, 스코틀랜드에서 들여온 대형 증류기 두 대와 출입문 위에 쌓아놓은 46개의 오크통들로 박물관 들머리부터 위스키 냄새가 풍겨오는 듯하다.
쌓인 술통 밑의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면, 먼저 벽에 그려진 술의 여신이 반겨준다. 발을 옮기면 와인·맥주와 위스키 등 각종 증류주, 우리 전통주를 망라한 술의 제조 과정과 함께 제조 도구, 술병 등 소장물로 가득 찬 다섯개의 전시실이 차례로 다가온다. 와인관·맥주관·동양주관·오크통관·증류주관 등을 차례로 둘러보는 동안 각종 술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체험행사는 충주의 청명주 등 전통주 빚기(1만~1만5000원), 제철 과일을 이용한 유기농 와인 만들기(2만원·이상 10일 전 10인 이상 단체로 신청), 보드카·럼 등 칵테일 만들기(8000원), 향초 만들기(3000원·이상 수시 체험) 등이다.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레이블을 단 병에 술을 담아가는 ‘셀프 와인’도 있다. 술 외에 다양한 발효식품의 제조 과정을 알아볼 수 있는 발효과학관도 준비중이다. 입장료 어른 6000원(와인 시음 포함), 어린이 4000원. 매주 목요일 휴관. 추석 전날·당일 휴관. 리쿼리움 (043)855-7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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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볼거리> 충주 세계술문화박물관은 볼거리 많은 남한강변 중앙탑공원에 있다. 신라중앙탑·충주박물관(무료)이 옆에 있고, 중원고구려비·누암리고분군·탄금대 등 숱한 문화유적지를 주변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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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거르기 체험.(전주전통술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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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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