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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9.30 22:00 수정 : 2009.10.03 17:33

배꼽 잡고 웃어야 좋은 책이잖아요. 그렇잖아요~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유머 넘치는 교양·문학 서적 읽기
웃음 하수 취급하는 출판계·사회 전반 엄숙주의

“너무 길었다.”

프랑스의 소설가 쥘 르나르가 온갖 동물들의 행태를 관찰한 후 기록한 산문집 <박물지> 중 뱀에 관한 항목이다. 달랑 저 한마디다. ‘두 겹으로 접은 이 쪽지는 문패를 찾는 러브레터’(‘나비’)처럼 시적인 정의들이 넘쳐나는 이 명저에서, 뱀에게만은 단 두 개의 어휘를 할당했다. 빵 터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파충강 뱀목 뱀아목에 속하는 동물의 총칭으로 다리가 퇴화한 것이 특징이다’라는 식의 진지한 접근이 오히려 우스워질 지경이다. 이처럼 유머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아는 작가들의 책은, 삶의 직선주로만을 내달려온 우리에게 갓길 휴식의 여유를 일깨운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지식과 정보와 의미에 대한 강박에 매몰된 책읽기 문화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개그맨 최효종
서구인들의 유전자에는 ‘유머’라는 인자가 각인되어 대대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체 높은 거물급 인사가 심지어 공식석상에서조차도 개그 본능을 주체 못 하는 모습을 볼 때다. 이를테면, 지난해 미국 대선후보였던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낙선 직후 한 방송에 출연하여 했던 발언을 보자. 대선에서 떨어진 후 어떻게 지내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는 “젖먹이인 내 손주와 동일한 라이프사이클을 공유하고 있다. 세 시간쯤 자다가 깨서 울고, 또 세 시간쯤 자다가 깨서 운다”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유머로 명예를 빛내는 서구의 대화방식

상당한 수준의 조크지만, 우리는 존 매케인이 정치에서의 실패를 딛고 개그계에서 새로운 성공신화를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네들에게 유머란 일상이요 풍토라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종종 국회라는 무대를 통해 의도하지 않은 코미디 촌극을 보여주긴 해도 기본적으로 엄숙주의를 지향하는 우리의 사회지도층과는 달리, 영미·유럽의 정치가들에게 유머란 체면이나 명예를 더욱 값지게 만드는 요소다. 그리고 이러한 풍토와 인식은 그들의 저널리즘이나 출판문화에서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중문학에서는 물론, 딱딱한 논문이나 이론서에서도 촌철살인의 구절을 만나기란 어렵지 않다. 노벨상을 수상한 20세기의 지성 버트런드 러셀의 저서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의 경우도, 지극히 논리적으로 기독교의 교리를 반박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책 전체가 기독교에 대한 완벽한 패러디로 읽히기도 한다.

“온갖 결함들을 지닌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 세계를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수백만년에 걸쳐 만들어놓은 최선의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지가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정말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생각해 보라. 만일 여러분에게 전지전능과 수백만년의 세월을 주면서 세상을 완성시켜 보라고 했다면 고작 공포의 KKK단이나 파시스트 같은 것밖에 만들 수 없을까?”-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버트런드 러셀, 사회평론)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왜 키들거리면서 읽을 만한 교양서나 이론서가 많지 않을까? 이 질문은 오해다. 한국에도 유머러스한 표현과 쉬운 문체로 독자들을 유혹하는 교양서적이 분야별로 적지 않은 수가 출간되고 있다. 다만,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책들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타이틀이 붙는다. ‘알기 쉬운 …’, ‘엽기 …’, ‘○○학 여행’ 등등. 도서출판 북스피어의 임지호 편집장은 말한다. “한국의 교양서들은 ‘유머’를 내세우는 즉시 아이들이 보는 책으로 분류된다. 책을 유머의 매개로 삼는 것을 금기시하는 풍토가 있다”고.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정보와 지식을 전하는 교양서와 이론서들로 장난을 치면 안 되고, 만약 장난을 쳤다면 그런 책들은 아동용으로 특별대우를 받아야만 한다. 유머러스한 교양서들의 게토화다.

유머를 앞세운 대중문학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이쪽의 사정은 더 나쁘다고 할 수 있다. 대중문학 자체의 지위가 높지 않고 저변도 얕은 까닭이다. “우리는 ‘한국 소설’이라고 할 때 어떤 전형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의미를 두는 편이고, 그 메시지 자체가 무겁다. 유머나 장르소설들이 들어설 틈새는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임지호 편집장은 말한다. 장르소설의 저변이 넓고 순문학에 비해 저급한 것으로 인식되지도 않는 영미와 일본의 문학작품들에서 유머의 코드를 자주 발견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 문학에도 분명 먼 옛날부터 이어져 온 유머의 전통이 존재한다. 해학과 골계미. 국어 고전시간에 밑줄 쳐 가면서 외웠던 단어 아닌가. 그러니까 한민족이 한반도에 정착하던 고조선시대부터 온통 엄숙했던 건 아니라는 얘기. 백성들의 해학이 넘치던 조선시대 서민 문학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엄혹했던 식민 치하에서조차도 조선의 모든 작가들이 “붓을 꺾고 통곡하고 싶구나”라며 책상머리에서 탄식만을 토했던 것은 아니니까.

“인도… 라면 수도를 한다고 한편 손을 공중에 쳐들고 한평생 사는 사람이나 수백 리 길을 데굴데굴 굴러서 가는 사람만이 사는 곳인 줄 알아서는 큰 코를 떼이지.

그 사람들이 얼굴은 새까맣고 젖이 떨어진 뒤에는 밥 구경을 못한 것같이 바짝 말랐어도, 인구가 4억만이요 간디의 뒤를 따라 ‘만세’를 부르기 시작하는 데는 신사양반 대영제국도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핑핑 돌아가는 세계 대세 이야기>(채만식, 1931년 2월)

‘알기 쉬운… ’ ‘엽기’ 꼭 붙여야겠니?

이 유쾌함의 전통은 이후로도 아주 희미하게 명맥을 유지했다. 해방 이후 연이어 터진 전쟁, 그리고 뒤이은 군사독재의 시대까지. 농담 한번 잘못했다가는 관재수 제대로 겪어야 했던 시절이었으니만큼 지성계와 문단은 내내 정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출판계에 남아 있다. 성석제와 박민규, 배명훈 등 유머의 맛을 아는 작가들이 차례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한국 출판계의 풍토는 독자들의 책읽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웃기는 책을 즐겨 읽는다’는 취미는,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러운 ‘길티 플레저’에 가깝다. 유머라는 속성은 어떤 책을 평가하는 데서 아직까지도 부차적인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가끔은 장르를 떠나서 단지 웃긴다는 이유만으로 책을 골라 보자. 반농담 삼아 이야기하자면, 그 또한 출판문화의 다양성 확보를 위한 작은 싸움이다.

보기보다 제법 웃긴 교양·이론서들

⊙ <교양> 디트리히 슈바니츠 (들녘) | ‘취업 준비생을 위한 종합교양’ 같은 느낌이라 책 좀 읽는 이라면 거들떠보기조차 싫어할 아이템이지만, 몇몇 챕터의 유머러스한 문체가 그러한 실용적 속성으로부터 이 책을 구원한다.

⊙ <서양 철학사> 버트런드 러셀 (집문당) | 철학에 관심이 있더라도 졸릴까봐 엄두가 안 난다면 종종 피식하게 만들어 주는 버트런드 러셀의 이 명저를 선택하자. 소크라테스 시대부터 존 듀이의 실용주의까지 철학사조의 흐름이 알차게 정리되어 있다.

⊙ <경제학 패러독스> 타일러 코웬 (랜덤하우스) | 위트 넘치는 일상의 예시들로 경제학의 개념을 설명하는 이 책에는 도표가 등장하지 않는다. 경제학 교수이자 파워 블로거인 저자는 딸에게 이 책을 읽힌 후 ‘금전적 인센티브’ 없이 설거지를 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 <야구란 무엇인가> 레너드 코페트 (황금가지) | 야구 이론 입문서의 바이블. 일평생을 야구장에서 보낸 저널리스트의 저술로, 메이저리그의 우스꽝스런 일화나 어록이 풍부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강점은 고 이종남 대기자의 번역인데, 전설적인 메이저리거들의 대화가 구수한 팔도 사투리로 펼쳐지기도 한다.

글 조민준 객원기자 zilch321@empal.com·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표지모델 개그맨 최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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