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0.05 19:18
수정 : 2009.10.05 19:18
[건강2.0]
앞서 혈압 조절이나 뼈 대사에서 신장이 하는 일을 한의학 개념을 써서 살펴본 바 있는데, 독자들이 오해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한의학에서의 장부(오장육부)는 간장, 신장 등 서양의학의 장기 명칭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만 똑같은 개념은 아니라는 것을 잘 이해해야만 한다. 장기 혹은 기관(organ)은 ‘특유의 기능을 수행하는 다소 독립성을 가진 신체의 부분’으로서 세포-조직-장기-신체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 이에 반해 장부 개념은 ‘생체의 기능들이 그 특성(주로 오행 속성)을 중심으로 계통적인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여러 장기와 조직이 하나의 기능체계를 형성한다.
한의학에서 신(腎)은 어떤 때는 신장(콩팥)을 가리키지만, 방광, 뼈, 골수, 머리카락, 귀, 허리, 생식기 등을 포함하는 개념 혹은 모두를 대표하는 의미로도 종종 사용된다.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부신피질 호르몬의 기능, 더 넓게는 시상하부-뇌하수체-호르몬 분비기관 축의 호르몬 분비 조절작용까지도 신의 기능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한의사가 어떤 환자의 상태를 신허(腎虛)라고 표현한 것을 콩팥 병에 걸려 있다고 진단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같은 용어가 다른 장기를 가리키는 경우조차 있다. 아무거나 잘 먹는 사람보고 ‘비위(脾胃)가 좋다’고 말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비(脾)는 소화기능을 담당하는 핵심 장부로서 소화효소를 분비하는 이자(췌장)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비가 몸의 중앙에 있고, 위와 막이 연결되어 위완부를 싸고 있으며, 말발굽 혹은 낫 모양이라는 <동의보감>의 형태 묘사를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어째서 지라를 비장이라고 하게 되었을까? 서양의학이 일본을 통해 도입되면서 일본의 의학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그 원인이다. 김용옥씨는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이 점을 잘 밝혀 놓았다. 메이지유신 이전에는 일본에서도 한의학이 융성했기 때문에 네덜란드 의학을 받아들여 번역하면서 익숙한 오장육부 개념을 차용하였고, 누가 어떤 이유로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자는 췌장으로, 지라는 비장으로 번역되어 굳어진 것이다.
현대의학과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너무 달라서 통역 없이는 대화하기 힘든 상태로 느껴질 때도 있다. 같은 용어를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오해를 더욱 깊어지게 만들 수 있으므로 소통을 위해서는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윤영주/한국한의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의사·한의사)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