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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스코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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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하이스코트 킹덤과 함께하는 영업맨 사연 공모전
추석을 보내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그날 생각이 났어요. 조금은 늦은 나이에 영업 엠디(MD·머천다이저)로 입사하고 신입사원 연수를 받은 뒤 본격적으로 일에 투입된 게 추석이었거든요. 선배들은 “이제 고생 시작이다, 오자마자 명절이다”라며 놀림 반 걱정 반 해주셨지만, 신입이 뭘 알겠습니까? 만날 “열심히 하겠습니다!”만 외쳐댔죠. 명절 전부터 추석 선물 업체들을 찾아 “입점 좀 해 주세요, 사장님”이라고 단내가 나도록 뛰어다녔습니다. 신입. 그것도 여자 엠디가 얼마나 팔겠느냐는 시선으로 ‘물건은 주지만 기대는 안 한다’는 표정이 역력한 업체 사장님들을 대하며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화장실 문을 잡고 울기도 하고, 유명제품 관계자들에게 문전박대 당하면서 ‘월급만 받고 때려치우자!’라고 곱씹으며 추석을 기다렸습니다. 추석 이틀 전 주문 마감을 하고 시에스(CS·컴퓨터 서비스) 팀과 택배 현황을 검사하는데, 택배 아저씨는 보냈다 하시고, 고객은 받지 못했다고 하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고객들과 전화할 때마다 식은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그러다 추석 하루 전날! 거의 마감이 끝나고 사고 없이 잘 마무리했다며 한숨 돌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려댔습니다. 전화를 받자 잔뜩 화난 고객이 “도대체 물건이 언제 오냐, 직원들이 퇴근을 못 한다”며 버럭 화를 냈습니다. 알고 보니 배송업체 사고로 물건이 배송 안 된 거죠. 더구나 배송할 곳은 천안, 서울, 안산 3곳의 공장이었습니다. 회사에 빨간불이 켜졌어요. 우리 팀 전원은 그 물건을 사러 마트를 뛰어다녔고, 3대의 차를 준비해서 부랴부랴 출발했습니다. 추석 전이라 텅 빈 회사에 앉아 선배들을 기다리며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저녁이 한참 지나서야 배송을 마친 선배들이 전화를 하셨고, 전화기에 대고 “죄송합니다”라며 계속 절을 했어요. 도망치듯 회사를 나왔습니다. 대충 묶은 머리와 퉁퉁 부은 눈으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에 가니 여기저기서 온 선물세트가 놓여 있더라구요. 선물세트들을 발로 냅다 차버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속은 좀 시원해졌습니다. 물론 그 이후로도 명절 증후군을 계속 겪지만 저도 어느새 능숙하게 전화 받는 영업맨이 되었습니다. “네~ 고객님, 아직 안 도착했다구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요즘 택배회사들이 얼마나 정확한데요.” 김효연/서울 마포구 망원1동
※ 위스키 킹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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