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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07 18:00 수정 : 2009.10.07 18:00

언더그라운드 예술가들의 창작 근거지인 타헬레스. 건물 내부는 기상천외한 그라피티로 도배돼 있다.

[매거진 esc] 노중훈의 여행지 소문과 진실

1989년 11월9일 밤 9시, 베를린 장벽이 주저앉았다. 냉전시대의 상징적이면서도 매우 구체적인 산물이 해체된 것이다. 독일 정부는 베를린 장벽 붕괴 20돌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를 시행하거나 준비중이고, 국내외의 각종 매체는 통일 독일을 다시금 집중 조명하고 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베를린을 달구고 있는 가장 뜨거운 이슈는 예술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새로운 창작 무대로 각광받고 있는 이 도시는 지구촌 예술의 중심축으로 거듭나고 있다. 베를린은 이제 전통과 첨단, 주류와 비주류, 상부와 하위문화가 아름답게 공존하는 예술의 용광로라고 불릴 만하다. 물론 물리적 통일이 완벽한 화학적 통일로까지 이어진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발표된 독일 내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동독과 서독 간의 분열이 여전히 크다”고 답했다. 50년이 지나도 두 지역 간 격차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베를린 장벽을 다시 세웠으면 좋겠다고 응답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베를린 장벽 붕괴가 독일, 특히 베를린이 오늘날 전세계가 주목하는 동시대 예술의 바로미터가 되는 데 단단히 한몫했다는 점이다.

예술의 수도를 자처하는 뉴욕과 파리의 예술가들이 언젠가부터 하나둘씩 자신들의 둥지를 등지기 시작했다. 살인적인 물가와 수직 상승하는 건물 임대료를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새롭게 찾은 보금자리는 베를린이었다. 베를린은 도시의 명성과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물가가 낮고 주택 가격이 헐했다. 더구나 빈 건물들이 많았다. 유리 지갑의 예술가들에게 제격이었다. 일부 젊은 아티스트들은 발전이 더딘 옛 동베를린 지역의 버려진 건물들과 주인 없는 공장들을 자신들의 캔버스로 삼았다. 베를린 도심에 자리한 타헬레스(Tacheles)가 바로 그런 경우다.

타헬레스는 원래 백화점 건물이었다. 한때 프랑스 전쟁 포로를 수용하던 공간으로 쓰였으며,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폐허가 됐다. 오랜 시간 방치되던 건물은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철거될 운명에 처했지만 1990년 2월 일군의 실험적인 예술가들에 의해 무단으로 점거되면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예술가들의 ‘침입’ 이후 타헬레스는 겉과 속이 다른 건물이 됐다. 외관은 황폐해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엇보다 벽면을 빈틈없이 메우고 있는 강렬한 그라피티에 입이 쩍 벌어진다. 건물에 상주하는 예술가들과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덧칠해서 생긴 알로록달로록한 결과물이다. 타헬레스에는 크고 작은 작업실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들이 회화, 조각, 음악, 사진 등에 천착하고 있는데, 이들이 매달 내는 월세는 그야말로 상징적인 수준이다.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타헬레스를 두고 “합법적인 지위와 실험성을 바꿨다”며 매서운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한 번 보고 지나치는 여행자 입장에서는 ‘고여 있는’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지만 시대의 공기를 예민하게 호흡하고 스스로에게 부단한 질문을 던지는 베를린의 예술가들에게는 마뜩잖은 구석이 있는 듯하다. 어쩌면 이렇게 자기 성찰에 주저하지 않는 예술가들의 무정형한 연대의 그물망과 본질을 고민하는 분위기가 예술의 도시 베를린을 지탱하는 버팀돌인지도 모르겠다.

노중훈 여행 칼럼니스트 superwin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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