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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07 18:55 수정 : 2009.10.0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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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몇 달 전 본 외신 기사가 떠오릅니다. 의류 브랜드 이름으로 익숙한 프랑스의 작은 마을 라코스테에 관한 소식이었는데요. 유명 패션디자이너인 피에르 카르댕이 마을의 개발을 위해 수백억원을 투자했건만 지역 주민들의 욕만 먹고 있다더군요. 개발로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고 방문자들 때문에 동네가 시끄러워졌다는 이유로 말이죠. 세상에나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니 한국이라면 명예시민이 아니라 명예시장 정도는 보답받았을 공로 아닙니까.

프랑스인들의 턱없는 자존심이 느껴지면서도 근사해 보였습니다.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 요란 뻑적지근한 드라마 세트장이라도 세워서 관광객을 끌어보고자 안간힘 쓰는 한국 지자체들의 모습과 대비되더군요. 관광객을 유치해서 지역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취지는 반갑지만 오래된 것들을 갈아엎으며 드라마 세트장이나 외국산 테마파크 등 외부 자원 유치만을 능사로 여기는 건 측은한 자기부정으로 보입니다.

이번주 여행면의 진안 백운면 기사는 그런 점에서 신선했습니다. 오래된 가게의 간판 이름과 직접 쓴 주인 글씨까지 살리면서 재치있게 변신한 간판들 덕에 그 앞에 멈춰서는 방문객이 늘어났지만, 그로 인해 대박을 꿈꾸는 재빠른 후속 변화들이 없다는 게, 늘어난 방문객만큼 식당 매출은 늘어나지 않았지만 주민들이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게 ‘격’ 있어 보이더군요. 게다가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의 다짐 같은 지자체 구호들이 넘치는 이 마당에 ‘바람을 느껴요’ ‘하늘을 보아요’라는 마을 어귀 간판이라니, 진짜 근사하잖아요?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G20 정상회의 유치가 ‘국격’을 높이는 계기가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 전에는 ‘국운 상승의 기회’라는 표현까지 했죠. 솔직히 참 ‘격’ 없게 느껴졌습니다. 인기 많고 덩치 큰 애한테 “너 괜찮은데” 한마디 듣기 위해 안간힘 쓰는 존재감 없는 학생이 된 기분입니다.

남의 눈에 잘 보여야 내 격이 생긴다는, 새마을에 새벽종 울리던 시절 마인드는 이제 좀 떨쳐버리는 게 어떨까요. 남이 아무리 칭찬해 봐야 자존감 없으면 꽝이라는 거 김어준씨가 만날 하던 이야기잖아요.

김은형 < esc >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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