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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넘이가 시작되면 삿갓을 쓴 사공들이 물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초에 불을 붙이기 시작한다. 인공조명을 가급적 자제한 호시노야의 밤은 다른 곳보다 두텁고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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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노중훈의 여행지 소문과 진실
일본의 숙박시설 중에 호응이 큰 것이 료칸이다. 일본 전역에 걸쳐 다양한 수준의 료칸이 산재하는데, 시설과 서비스 면에서 허술한 경우도 많다. 가루이자와는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7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한적한 지역이다. 인구도 얼마 되지 않는다. 예로부터 부호나 유명 인사들 별장지로 이름이 나 있는데, 이곳에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는 새로운 개념의 료칸이 있다. 호시노야 가루이자와에 들어서면 일본 전통 료칸에 대한 선입견이 여지없이 깨진다. 객실부터가 독특하다. 으레 깔려 있어야 할 다다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곳곳에 다양한 료칸과 스키장을 보유하고 있는 호시노 그룹은 호시노야 가루이자와를 대대적으로 개보수하기에 앞서 광범위한 설문조사를 했다. 그리고 ‘다다미방이 불편하다’는 젊은층의 반응에 주목했다. 그래서 호시노야의 모든 객실에는 다다미 대신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푹신한 이불과 함께 고급 침대가 놓여졌다. 다다미와 더불어 시계와 텔레비전도 자취를 감췄다. 호시노야의 시간은 째깍째깍 소리를 내지 않는다. 물체의 그림자 길이와 위치의 변화로만 가늠된다. 료칸 쪽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비일상적인 현실’을 체험하길 원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여러 부분에서 그런 의도가 감지된다. 리조트 안의 건물과 수목들은 그림자가 쉽게 생기도록 설계되고 조성됐다. 덕분에 한낮에도 따뜻한 물이 온몸을 감싼 듯 안온함이 느껴진다. 밤이 이슥해져도 조명을 대낮처럼 밝히지 않는다. 오히려 조도를 더 낮춘다. 절제된 조명은 어둠을 흔들지 않고, 켜켜이 쌓인 어둠의 거죽만을 스치듯 매만진다. 공간감은 이파리들이 서걱거리는 소리와 물이 흐르거나 부딪치거나 하여 나는 소리에 의해 형성된다. 리셉션 건물은 홀로 떨어져 있다. 비일상적인 공간에 진입하기 전,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의 끈을 고쳐 매라는 의미로 읽힌다. 오염원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무배출 시스템’(Zero Emission)을 구축하고 ‘에너지 자급자족’(Energy In My Yard)을 실천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료칸 안팎에서 발생한 쓰레기는 30여 가지로 분류되며, 음식 찌꺼기는 지력을 높이기 위한 비료로 쓰인다. 부지 안에 흐르는 강물의 힘으로 발전기를 돌리고, 지열과 온천 원천수로 방을 데운다. 실제로 리조트 단지에는 3개의 수력발전소가 원활히 돌아가고 있다. 여름에는 밤에 차가워진 공기를 낮 동안 순환시켜 냉방의 효과를 얻는다.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에도 에어컨을 가동할 필요가 없다. 이런 비상한 노력을 통해 에너지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렸다고 한다. 료칸은 에코 투어도 운영한다. 전문 가이드와 함께 료칸 주변의 산허리를 한 땀 한 땀 짚어 나가는 트레킹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야외 프로그램은 이른바 ‘별 투어’다. 일단 해거름이 끝나고 사위가 어두워지면 리조트에서 차를 타고 몇 분 거리에 위치한 개활지로 이동한다. 별이 총총하게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투어 리더가 여러 별자리를 자세하게 짚어준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해 온 천체망원경을 통해 달과 목성과 금성 등을 바짝 당긴다. 이내 육안으로는 파고들 수 없는 별세계의 안쪽이 찬란하게 펼쳐진다. 노중훈 여행 칼럼니스트 superwiner@hanmail.net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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