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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영국 패션 브랜드 버버리의 베스트셀러 트렌치코드. 2009년 가을/겨울 버버리 프로섬 컬렉션에서 선보인 트렌치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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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실용적인 군복에서 출발해 미니드레스까지 진화해온 트렌치코트…패션을 넘어 문화적 상징으로
옷장에서 한숨 쉬는 소리가 들린다. 범인 색출을 위해 옷장을 열었다. 옷장 한구석에서 가을색 트렌치코트가 천장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가을이 왔다는 소리다.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고 출근길에 나서면, 매일 똑같은 풍경도 때로는 흑백으로, 때로는 세피아톤으로 다르게 보인다. 마법 망토가 마법사에게 신비의 힘을 주는 옷이라면, 트렌치코트는 기분을 흔들어 놓는 신기한 옷이다. 트렌치코트 매개로 소셜네트워킹 사이트까지 등장 트렌치코트의 역사는 영국 브랜드 버버리의 역사와 맥을 함께한다. 1856년 토머스 버버리가 영국 헴프셔 지방에 포목상을 열면서 시작된 버버리의 역사는 1888년 통풍이 잘되면서 방수 기능을 가진 직물 개버딘을 개발하면서 그 첫 장을 쓰기 시작했다. 1901년 토머스 버버리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보병들을 위해 개버딘으로 만든 우비에 기능성 견장, 허리띠, 디링(D-ring) 등을 더한 코트를 만들었는데, 이게 참호라는 뜻의 ‘트렌치’가 붙은 트렌치코트다. 군인들을 위해 만들어지고 군 장교의 제복으로도 널리 입혔던 트렌치코트는 지극히 실용적인 디자인에서 출발했다. 총이 어깨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는 견장과 사격할 때 어깨를 보호하는 플랩, 바람이 들어가는 걸 막아주는 소매끈, 수류탄 등을 걸기 위한 벨트 등이 트렌치코트의 실용성을 말해주는 장식이다. 깃을 세울 수 있고 주머니가 많은 것도 군복의 특징 중 하나다. 트렌치코트는 전쟁이 끝난 다음 전쟁터가 아닌 도시로 그 무대를 옮겨 일반화되고 대중화되면서 멋스러운 코트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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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2009년 가을/겨울 버버리 프로섬 컬렉션에서 선보인 트렌치코드. 패션 브랜드 닥스의 2009년 가을/겨울 트렌치코드. 라푸마에서 출시한 고어텍스 소재의 트렌치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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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리는 100년 넘게 트렌치코트의 명가로 인식되어왔지만 1990년대 들어 트렌치코트의 변하지 않는 디자인 등으로 소비자들에게 점차 외면당했다. 버버리의 브랜드 가치는 하락했고 버버리 트렌치코트는 지루한 아이템이 됐다. 버버리의 구원투수는 2001년 구치와 디케이엔와이(DKNY)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크리스토퍼 베일리였다.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되면서 버버리와 버버리 트렌치코트는 적극적인 변신을 시작했다.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버버리의 새로운 라인 ‘버버리 프로섬’을 통해 버버리와 트렌치코트의 현대화를 이뤄냈다. 2008년 봄/여름 컬렉션에는 스쿠버다이버의 옷에서 영감을 받은 스쿠버 트렌치코트, 가죽 소재로 만들어 빈티지 느낌이 강한 트렌치코트 등을 디자인했다. 2010년 봄/여름 컬렉션에서는 트렌치코트를 허리 라인을 올린 하이웨스트 미니 드레스로 응용한 의상을 선보였다. 트렌치코트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버버리는 최근 트렌치코트를 매개로 한 소셜네트워킹 사이트 ‘아트 오브 트렌치’(www.artofthetrench.com)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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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직접 그린 트렌치코트 일러스트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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