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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1.04 19:14 수정 : 2009.11.08 09:23

<영웅>(1998).

[매거진 esc] 장르간 경계 허무는 트렌드 최전방 정연두…
백남준 이어 뉴욕현대미술관 소장작가로

당신이라면 다른 사람의 꿈을 카메라 안에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작가 정연두(40)는 ‘꿈’이라는 오래된 단어에 생동감 넘치는 동시대성을 집어넣는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희뿌연 꿈이나 특별할 것 없는 오늘의 상황 때문에 발설하기엔 한없이 크게 느껴지는 내일의 꿈을 정연두는 공들여 시각화하고 새로운 얼굴로 빚어 현실에 등장하게끔 한다. 그의 작업을 통해 오늘날 각자가 꾸는 꿈은 여전히 녹슬지 않은 채 매력적이고 구체적이며, 접촉 가능한 그 무엇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는 가뿐하게 사교댄스 한번 당겨주면서 시름을 잊는 대한민국 중년의 절실한 꿈을 직접 춤을 배우면서 기록했고(<보라매 댄스홀>), 10대 음식점 배달원의 찰나를 액션 영화배우의 포즈처럼 남겼다(<영웅>). 그런가 하면 남극의 얼음판 위를 달리는 것이 꿈인 패스트푸드점 소녀를 비롯한 젊은이들의 소원을 사진으로나마 ‘들어주면서’(<내 사랑 지니>) 꿈과 현실이 맺는 관계의 틈 사이를 흥미롭게 항해해왔다.

<내 사랑 지니(BeWitched) #12>(2001).

<내 사랑 지니(BeWitched) #2>(2001).

분당 새도시에서 발견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정연두는 <보라매 댄스홀>, <원더랜드>, <내 사랑 지니>, <도쿄브랜드 시티> 등 현실과 비현실을 오묘하게 접촉시킨 사진 시리즈로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지금에 와서 ‘그에게 카메라는 꿈과 현실을 대화하게 만드는 징검다리’라고 말하는 것은 상식적인 언급일 테다. 하지만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사진 기술은 배운 적도 없으며,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유학하며 ‘설치를 해놓고 시간을 기록하는 작업’ 정도를 해왔던 작가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의 표현도구였을까. 그는 유학 후 한국에 돌아와 놀랄 만큼 압도적으로 변한 분당의 아파트 주변을 어슬렁거린 게 사진을 찍게 된 우연한 계기가 됐다고 했다. “분당에서 동네 자장면 배달을 하는 청소년의 사고 현장을 목격했죠. 피 흘리는 그 친구에게 다급하게 앰뷸런스를 불러주게 됐어요. 동네 아파트로 배달을 다니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할리 데이비슨 같은 질주를 꿈꾸는 이상을 갖고 있다는 게 재밌게 느껴졌어요. 그에게 따로 만나자고 하고 소위 독수리폼으로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죠.”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작가에게서 동시대적인 이야기꾼의 기질과 함께 타인의 현실에 직접 뛰어드는 퍼포먼스적인 성향을 느낄 수 있었다.

1998년 분당의 오토바이 소년을 찍은 <영웅>에서 눈치챌 수 있듯, 이후 정연두의 사진 작업은 평범한 사람들을 찾아 말을 거는 것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그의 사진은 그들의 꿈과 사연을 묻는 것으로 구체화됐다. 대표적인 사진 작업 <내 사랑 지니>(BeWitched)에서 그는 꿈에 관한 전통적인 상징인 마법사 ‘지니’의 현대화된 역할을 자처했다. 등장인물의 현재 모습과 지금과 다른 꿈속의 ‘워너비(wanna be) 현실’을 찍은 사진을 평행하게 배치함으로써 꿈과 현실, 그리고 타인과 나의 꿈을 견주어 보게 만든 것이다. 변두리의 주유소,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 중국의 별 볼 일 없는 음식점 등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지금 모습을 찍고 그들이 품고 있던 꿈을 잠시나마 사진을 통해 이뤄주는 이 작업은 과정 그 자체가 ‘예술’이자 꿈과 비현실이 섞인 ‘농담’이 됐다. 작가의 표현대로, 꿈을 장면으로 구현하는 것이야 철저한 자료 조사와 장소 섭외와 연출 등을 거쳐 순간적인 무대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타인의 꿈을 조종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갖 사건 사고가 일어났죠. 네덜란드의 한 극장 환등기사인 청년은 유명 여배우를 만나는 게 꿈이라고 했어요. 미술관 큐레이터와 제가 갖은 고생 끝에 여배우까지 섭외했는데, 후에 청년은 농담이었다며 이 아시아 작가 뭐냐 하는 식으로 깜짝 놀라더군요. 사실은 매표소에서 일하는 아가씨와 대화하는 게 꿈이었다면서요.(웃음)”

〈Wonderland_The Magician Turned the Whale into a Flower〉(2004).

〈Wonderland_He Didn’t Sleep For 3 days〉(2004).

〈Location_1〉(2004).

평소에는 모르고 스쳐 지나갈 뿐인 다른 사람들의 삶 속으로 작가 정연두는 걸어 들어가고 그들의 꿈과 현실을 기록한다. 그 기록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뛰어넘고 때로 꿈과 현실의 관계를 모호하게 만들 만큼 마술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원더랜드>에서 작가는 유치원 어린이들이 그린 ‘고래가 꽃이 됐어요. 사람이 풍선처럼 보여요’를 표현한 무한 상상력의 크레파스 그림을 사진으로 변신시켰다. “아이들의 꿈은 제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도 있는가 하면, 제가 이해하지 못한 것도 있어요.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지는 그림들이 참 많았죠. 이걸 사진으로 만들기 위해서 의상디자이너, 소품디자이너 등 많은 사람들과 앉아 뚝딱거리고 오랜 시간 노력했죠.”

삐뚤빼뚤 어린이가 그린 보라색 선 하나를 그림처럼 뽑아내기 위해 애썼던 수공예의 과정을 작가는 “하찮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중요한 단계로 끌어올리는 자체가 아주 재미있었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한 장으로 아이들의 크레파스 그림이 압축되지만, 이 이상하고 재밌는 사진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드로잉도 있고 무대 디자인도 있고 퍼포먼스도 있다. ‘2007년 올해의 작가’(국립현대미술관 선정) 전시에서 작가가 보여준 <로케이션>과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 이후 정연두는 본격적으로 비디오, 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지휘자처럼 총동원시켰다. 제주도, 뉴욕, 태안반도 등의 그림 같은 야외 풍경에, 한눈에 봐도 가짜인 걸 알 수 있는 붉은 천 등의 소품 장치를 배치시킨 사진 <로케이션> 작업을 통해 작가는 사람들의 꿈을 넘어 우리의 배경이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물었고, 작가가 만든 무대 그리고 작업 자체를 본격적인 실험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어진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 <공중정원>(다큐멘터리 <역사스페셜> 형식 차용), 신작 <시네매지션>(마술사 이은결 등장)은 한층 풍부하게 진실과 허구, 거짓말과 역사, 마술과 현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작업에서도 빠지지 않았던 현실 속 다양한 대중문화적 장치들도 등장한다.

아이디어, 그다음이 매체
작가 정연두

정연두는 최근 백남준에 이어 한국 작가로는 두 번째로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작품을 소장해 한층 ‘핫’한 미술 작가로 호명되고 있다. 그는 “매체나 장르 간의 혼란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죠. 사진작가냐 화가냐 비디오아티스트냐 하는 구분이 중요하진 않다고 봐요.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서 공감이 갈 만한 매체를 불러오죠. 신작 <시네매지션>도 공연이라는 장르와 영화라는 장르를 혼성하겠다, 뭐 이런 각오가 아니라, 저의 엉뚱하고 바보스러운 아이디어가 그렇게 펼쳐진 거예요. 제가 좀 카오틱(chaotic)한 사람이거든요.”

글 현시원 객원기자 sonvadak25@hanmail.net·사진제공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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