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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수로의 조각배. 케랄라 주는 수상 교통이 발달했다. 내륙수로 덕분이다.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수로 유람이 대세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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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노중훈의 여행지 소문과 진실
인도는 거대하고 복잡다단하다. 외부인의 편향된 시선과 작은 마음으로 가늠하기란 어림없는 일이다. 길거리 여기저기에는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소들과 구걸하는 사람들이 즐비한 반면, 과거 지배층의 맥을 잇는 인도 부호들의 여유로운 생활은 상상력의 한계를 가뿐하게 넘어선다. 인도 하면 빛바랜 황톳빛만 너울거릴 것이라고 예단하기 쉽지만 빨강, 노랑, 파랑, 분홍 등의 선명한 원색이 눈길을 잡아끌기도 한다. 여행의 빛깔도 스펙트럼이 넓다. 흔히 인도 하면 낙후된 여행 인프라를 ‘견뎌내는’ 고행의 여정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인도 곳곳에는 부정적인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투어 프로그램도 많다.인도의 일부 성에는 아직도 옛 통치자들의 자손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재정적인 특권을 누렸던 조상들과 달리 대부분의 궁전 소유자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부닥쳤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방편이 궁전의 용도를 호텔, 레스토랑, 박물관 등으로 변모시키는 것이었다. 덕분에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유럽인들이 험한 바닷길을 개척하면서까지 연결해 놓은 무역로를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토후국들의 풍요와 호화로운 생활을 경험할 수 있게 됐다.
궁전 호텔의 외부는 웅장하고 정교하며, 내부는 절정의 화려함을 보여준다. 체크인을 하면 터번을 두른 종업원이 나타나 옛날 마하라자(대왕)를 시중들듯 깍듯하게 인사하고 짐을 카트가 아닌 머리에 이고 나른다. 이들은 왕을 영접하고 시중하던 옛날 방식을 고집한다. 각 층마다 담당 종업원들이 몸을 숨긴 채 대기하고 있다가 손님이 객실을 나서면 어느새 뒤를 따른다. 그러고는 가고자 하는 곳으로 소리 없이 인도한다. 호텔은 왕궁을 개조한 것이어서 복도가 얽히고설킨 경우가 많은데, 행여나 손님이 당황할지도 모르는 사태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향유를 섞은 물로 욕조를 채워놓아 왕의 목욕을 직접 경험해볼 수도 있다. 낮 동안의 외출을 끝내고 밤이 되어 호텔로 돌아오면 램프를 든 종업원들이 미리 마중을 나와 길을 밝혀준다. 무수히 명멸했던 인도의 왕조들이 남긴 가장 황홀한 유품인 궁전 호텔은 ‘손님은 왕’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해준다.
인도 남단에서 아라비아 해를 바라보고 있는 케랄라 주의 주요 도시들과 관광지들은 주로 서부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지만 해안 도시에서 자리를 뒤로 물리면 내륙수로 투어에 나설 수 있다. 내륙수로는 운송의 길이었다. 향신료와 먹을거리들이 물길을 따라 곳곳으로 전파됐다. 물자의 통로는 이제 유람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보통 알라푸자와 콜람을 기점과 종점으로 삼는 리버 크루즈들이 관광객들을 태운 채 수면을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유람선의 종류 중 가장 비싼 것은 객실을 갖춘 하우스 보트다. 선장 이외에 요리사와 이용객의 편의를 돌봐주는 스태프가 동승한다. 하우스 보트는 담박하고 적막한 여행이다. 그저 배에 앉아 좌우로 흐르는 평화로운 풍경을 오로지하면 된다. 모눈종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수동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해가 이울면 부레옥잠의 바다에 배가 멈춰 선다. 물 위에서 하룻밤 묵어가기 위해서다. 사위는 휘휘하고 만질 수 있는 것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명상 같은 밤이 그렇게 지나간다.
노중훈 여행칼럼니스트 superwin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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