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1.16 19:55
수정 : 2009.11.16 19:55
[건강2.0]
치아 건강을 ‘오복의 하나’라고들 한다. 그러나 유교경전인 중국 고대 <상서>(尙書)의 오복에 치아 건강은 들어 있지 않다. 다만, 민간에 전해오기를 오복에 “치아가 좋은 것”이 포함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쨌든 치아 건강이 자손이 많은 것, 부부가 해로하는 것, 손님 대접할 것이 있는 것, 명당에 묻히는 것과 동급으로 어깨를 견주는 복 중의 하나로 꼽히는 것을 보면 그 중요성은 틀림없는 사실인 듯하다.
치아 건강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의사들의 권고대로 하루 세 번 3분 이상씩, 위아래로 칫솔질하려 애쓰며, 1년에 한 번씩 치과 검진을 한다. 부모들은 이 닦기 싫다고 도망 다니는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이 닦는 습관을 갖게 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틀니를 쓰시는 부모님을 위해 인터넷 검색뿐 아니라 치아 건강에 좋다는 다양한 민간요법을 소개하는 등 애를 쓴다. 하지만 치과에 갔을 때 또다시 목돈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누구나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누가 좀 체계적으로 관리해줄 수 없나?’ 푸념 섞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는 허황된 바람이 아니다. 국민이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국가는 국민의 치아 건강을 위해 힘쓸 의무가 있다. 건강을 지키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 같지만, 실은 사회나 국가가 어떤 건강 정책을 펴느냐에 따라 개개인의 건강 유지와 질병 발생 가능성이 현저히 달라진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소득 수준이 중남미 코스타리카 이상 정도만 되는 국가라면, 국민의 건강을 개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책임지려 할 때 그 국민들이 훨씬 더 건강해진다고 한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는 학교에서 다양한 치아 건강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한 결과 이들 국민의 치아 건강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북유럽 국가 대부분은 아동과 청소년들의 치과 치료비를 대폭 낮추거나 없앴고, 다양한 치아 건강 프로그램을 통해 평생 건강한 치아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모자건강관리수첩에 구강 건강에 관한 내용을 넣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필요한 치료와 예방 처치를 받도록 관리하고 있다. 보건 후진국이라 하는 미국조차도 많은 지역에서 수돗물의 불소 농도 조절이라는 간단하고 효과적인 구강보건 사업을 통해 치아 건강만큼은 선진국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각 지역 보건소 구강보건실에서 치아 표면의 홈을 막아 충치를 예방하는 실란트나 불소 도포 등의 처치를 아주 저렴한 비용에 받을 수 있다. 일부 지역은 미국처럼 수돗물의 불소 농도를 조절해 충치 예방에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우리 국민이 매년 치과 진료비로 지출하는 돈은 4조원이 훌쩍 넘는다. 그러나 정부가 이에 쓰는 돈은 매년 100억원에 불과해 예산과 사업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치아 건강을 위해 치과보험 광고를 유심히 살피듯 우리 지역 지자체가 펼치고 있는 치아 건강 사업과 예산을 유심히 살피자. 또한 밤마다 아이의 양치질을 검사하듯 우리 가족 치아 건강을 위해 써야 할 예산이 혹시 강의 모래를 퍼내는 삽질에 묻혀버리지 않는지 면밀히 검사하자. 그것이 내 오복을 지켜내는 방법이자, ‘국민의 오복 유지’라는 국가의 의무를 다하도록 돕는 지름길이다.
김철신/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구강보건정책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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