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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1.18 19:29 수정 : 2009.11.18 19:29

와인. <한겨레> 자료사진

[매거진 esc] 유러피언 요한의 코리아 스타일





제가 처음 와인을 맛본 건 5살 되던 해였습니다. 당시 어린 제 눈에 비친 어른들은 ‘끊임없이 와인을 마시는 존재’였습니다. 포르투갈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를 뒀으니 말 다했죠. 매일 저녁 식사하면서, 매주 토·일요일만 되면 어김없이 식사 때마다 와인을 마시는 어른들을 보며 저도 어른들을 따라 마셔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더구나 와인의 그 매혹적인 색과 빛은 저를 강렬하게 유혹했죠. 어느 날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다 아버지가 보시지 않는 틈을 타 아버지의 와인 잔을 몰래 들고 단숨에(!) 비워버렸어요. 이 광경을 본 어머니는 화가 단단히 나셨습니다만, 아버지는 웃음을 그치질 않으셨답니다. 다섯 살 그때가 제가 와인을 처음 경험한 때였습니다.

이처럼 프랑스에서 와인은 한국에서 김치와 같은 존재입니다. 와인 없는 식사는 몹시 어색하고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이런 와인 문화는 프랑스나 포르투갈이나 마찬가지고요.(한국인들은 아직 잘 모르지만 포르투갈 와인 생산량은 세계 10등 안에 들어요.)

와인을 처음 맛보았을 때는 맛과 향을 어렴풋이 접했다면 청소년기를 거치고 청년이 되면서 부모님·친척들과 함께 당당히 와인을 즐기기 시작한 뒤로 좋은 식사와 어우러질 때 더욱 맛이 좋아지는 와인의 정신을 알게 되었죠. 한 해 두 해 와인을 접하면서 지금은 좋은 식사와 좋은 와인이 잘 어우러질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압니다. 좋은 스테이크를 한 입 썰어 입에 물고 레드 와인 한 모금으로 입을 축였을 때 그 맛의 어우러짐이란! 먹고 마시는 기쁨을 한층 더해줍니다.

유러피언 요한의 코리아 스타일
이런 제게 한국인들이 와인을 마시는 모습은 놀라움이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쯤 파리에서 처음 한국 친구들과 함께 와인을 마셨을 때가 기억납니다. 와인은 식사에 곁들여 음미하면서 천천히 마시는 술로 생각했던 저는 계속 “원 샷!”을 외치며 단숨에 와인 잔을 비우던 한국 친구들을 보며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죠. 이후 한국에 와서 한국인들과 함께 와인을 마실 때마다 와인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마셔야 하고, 무엇과 함께 마시는 술인지를 종종 설명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인들의 독특한 술 문화는 잘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깨달은 점이 하나 있습니다. 결국 한국인들에게 와인은 여느 술과 마찬가지로 누구와 마시고 즐기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점이 한국 사람들에게 ‘와인의 정신’인가 봅니다. 요즘엔 제가 한국인들과 함께 한국식으로 와인을 ‘원 샷’ 하는 걸 보면 … 이젠 저도 한국인이 다 되었나 봐요. 쩝.

장필립 보드레 주한 유럽연합 상공회의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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