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1.18 19:49
수정 : 2009.11.18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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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웅(24)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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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바둑 고수들 이기고 1억5천만원 상금 거머쥔 우승자…바둑의 절제 벗어난 경기장 젊은 활기
“아…!” 게임 캐스터와 해설자, 방청석에서 동시에 탄성이 흘러나왔다. 게임 스코어 3 대 2로 앞서고 있던 이재웅(24·사진) 선수가 최철한(24) 선수의 숨겨진 돌 ‘히든’을 귀신같이 찾아내며 우승에 성큼 다가간 순간이었다. 지난 15일 용산 아이파크몰 이스포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1회 ‘월드바투리그’(WBL) 결승전. 7판4선승제로 진행되는 이 대회에서 이재웅은 6세트를 따내며 우승 상금 1억5000만원의 주인공이 됐다.
이번 이재웅 선수의 우승은 ‘바투 1등이 바둑 1등을 이겼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이재웅 선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바둑을 시작해 16살에 프로 기사가 됐다. 프로 기사이긴 하지만 이재웅 선수는 이번 대회에 출전한 이창호나 최철한 등에게 7~8연패를 하는 등 바둑에서는 실력 차이가 확연했다. 하지만 바투에서는 달랐다. 이재웅이라는 이름 대신 ‘웅빠’라는 아이디로 더 유명한 이재웅은 바투에서는 엄연한 국내 1위다. 그는 8강에서 이창호를 꺾고 4강에서 중국의 저우전위를 눌렀다. 이재웅은 이를 “꼭 해 보고 싶은 걸 이뤄낸 기분”이었다고 표현했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바둑에서 국내 랭킹 1위 자리에 오른 동갑내기 프로 기사 최철한. 결승전다운 접전 끝에 최철한을 이긴 이재웅의 승리는 바둑과 바투가 비슷하지만 절대 같지는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바둑과 바투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경기장 분위기다. 경기장에 카메라를 들이는 것에도 민감해하는 바둑과는 달리 바투는 스타크래프트 등 다른 이스포츠처럼 선수들이 게임 부스에 들어가 경기를 진행하고 게임 캐스터가 무대에서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게임을 중계한다. 성승헌 게임 캐스터와 김성룡 해설위원은 다른 게임 중계 못지않게 높은 목소리와 빠른 말투로 “냄새를 맡았나요?”, “이러면 장렬하게 전사하는 건데요” 등을 연발하며 바투 경기의 진행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전달한다.
선수들은 바투 경기장에 오면 조금씩 화려해진다. 복장과 머리모양 등에 손이 간 흔적이 보이고 늘 고요하게 바둑판만 응시하던 표정도 모니터 앞에서는 한결 편안해진다. 경기 진행 상황에 따라 웃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는 등 순간의 감정을 얼굴에 드러낸다. 조훈현 9단 같은 프로 기사들이 게임 부스에 앉아 마우스로 경기를 하는 모습도 바둑을 떠올리면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이창호 9단의 경우 첫번째 바투 경기에서 헤드폰을 뒤집어쓰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경기에서 승리를 해도 상대방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해 밝은 표정을 짓지 않는 바둑과 달리 바투에서는 우승하면 마음껏 기쁨을 표현할 수 있다. 젊은 프로 기사들은 바둑에서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우승 세리머니’를 바투에서 시도해보기도 한다.
글 안인용 기자·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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