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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비누 거품 눈을 맞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 싱가포르의 크리스마스 이벤트는 이 나라의 관광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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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노중훈의 여행지 소문과 진실
지구상에는 면적이 좁은 나라들이 많다. 다녀본 나라들 중에는 모나코가 작았고, 싱가포르의 몸피가 얄팍했으며, 룩셈부르크의 영토가 협소했다. 중국에 반환된 홍콩과 마카오도 ‘작은 여행지’의 대표적인 곳들이다. 작은 나라들은 대부분 부존자원이 없다. 자원 민족주의는 남의 나라 일일 뿐이다. 모나코의 경우는 아예 전기, 철도, 수도 시설까지 프랑스에 의존한다. 공항 역시 인접한 코트다쥐르 지방의 니스 공항을 이용한다. 천연 관광자원이 빈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나라들은 인공 관광자원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자원 하나 없는 작고 가난한 어촌이었던 모나코의 승부수도 관광산업이었다. 요트 항구와 최고급 호텔을 두루 조성해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여행 목적지로 거듭났다.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세기의 연인에서 모나코의 왕비로 변신해 그야말로 영화 같은 삶을 보여준 그레이스 켈리의 역할이 컸다. 생전 자신의 유명세를 발판 삼아 그랑프리 자동차 경기 등 세계적인 행사와 이벤트를 유치함으로써 엄청난 관광객을 모나코로 불러 모은 것이다. 지금도 매년 5월이면 시내 도로를 통제한 채 F1 그랑프리를 개최하는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열리는 F1 중 가장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다. F1 마니아들과 관광객들, 그리고 유명 인사들이 일거에 모여들어 어느 숙소를 가더라도 빈방을 찾아보기 어렵다. 카지노도 있다. 스페인, 프랑스 등의 지배로 재정이 악화하자 1863년 그리말디 왕가가 해결책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카지노다. 지금도 카지노를 통한 외화벌이가 모나코 경제의 중심축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싱가포르는 축제와 이벤트에 방점을 찍는다. ‘축제’라는 단어는 다분히 성대하고 아주 흥겨운 어떤 것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지만 싱가포르의 축제들은 소박한 면모를 풍긴다. 우리가 보기에는 별것 아닌 아이템과 테마에도 어김없이 축제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부족한 관광자원을 만회하기 위한 전략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어쨌든 사소한 것도 축제로 만들고 이벤트화하는 그네들의 눈썰미와 재주는 확실히 뛰어난 면이 있다.
싱가포르는 크리스마스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갖가지 이벤트를 열고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점등 행사도 매우 중요한 크리스마스 프로그램이다. 백화점과 상점들이 밀집한 오차드 로드를 비롯해 시내의 주요 거리가 형형색색의 크리스마스 장식물로 요란하게 치장된다. 쇼핑몰을 중심으로 한 대형 건물들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경쟁하듯 멋을 부린다. 몇 해 전 싱가포르를 찾았을 때만 해도 좀 시시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올해는 행사 규모도 훨씬 더 커지고 화려해졌다. 인접 국가에서 찾아온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아 보였다. 몇몇 건물 앞에서는 저녁이 되자 비누 거품으로 인공 눈을 만들어 하늘로 쏘아댔다. 우리 눈에는 다소 유치해 보일 수 있지만 늘 여름만 지속되는 바람에 눈을 보지 못한 대다수의 싱가포르 주민들에게는 비누 거품 눈을 맞는 것도 나름의 행복이다. 휴양지 빈탄과 섬 전체가 테마파크인 센토사, 그리고 쇼핑 말고는 두드러진 관광자원과 즐길 거리를 갖추지 못한 싱가포르에서 ‘아열대의 크리스마스’는 발상의 전환과 참신한 시도로 받아들여질 만했다. 크리스마스 이벤트 하나만 보고 싱가포르에 가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색다른 재미임에는 틀림없다.
노중훈 여행 칼럼니스트 superwin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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