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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이를 살려내라,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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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한국의 사진가들
직접 분장하고 카메라 앞에 서는 연출사진으로 비틀린 현실 조롱하는 사진가 조습
학교 앞은 뿌옇다. 최루탄이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파파팍! 또 터진다. 하늘 높이 터진 최루탄은 새들의 운무처럼 하늘을 제 마음대로 휘젓다가 학생들의 머리에 칼처럼 꽂힌다. 목이 타들어간다. 숨이 멈출 것 같다. ‘제길 담배라도 한 모금 빨았으면.’ 또 터진다. 달린다. 까만 뿔테 안경이 떨어지든 말든. 학교 앞은 전쟁터다. 최루가루보다 더 높은 곳에서 외치는 핏빛 소리가 들린다. “쓰러졌어. 한열이가 쓰러졌어.” 1987년이었다.
2002년, 시청 앞은 붉다. “오 필승 코리아, 오 필승 코리아.” 함성이다. 사람들은 숨죽인다. ‘꿀꺽’ 숨 넘어간다. “골인~~.” “와~~.” 같은 날, 같은 시각,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춤춘다. 함성 위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습이가 쓰러졌다.” 조습은 광장에서 피 흘리고 쓰러졌다.
“습이가 쓰러졌다”
젊은 사진가 조습(34)의 작품 <습이를 살려내라>에는 피 흘리는 조습과 이한열 열사가 있다. 조습은 1987년 쓰러졌던 이한열 열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일종의 패러디다.
이한열 열사가 독재 권력에 희생되었다면 조습은 누구 때문에 쓰러진 것일까? “공포였다. ‘대한민국’을 한목소리로 외치는 모습이 (광기로 비쳐질 만큼) 공포로” 다가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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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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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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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에는 이처럼 역사의 한순간이 뾰족하게 등장한다. <물고문>에는 박종철 열사가 있다. 담배를 꼬나물고 박종철(조습)의 머리채를 잡아끄는 남자들은 짐승처럼 보인다. 그 짐승들의 뒤에는 때를 벗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묘한 웃음을 짓게 하는 이 사진은 대중목욕탕에서 찍었다. 작가는 평범한 공간에서 옛날의 상처를 끄집어내는 재주가 있다. <5·16>은 5·16 군사반란을 재현했다. 바지를 반쯤 내린 군인은 조악한 노래방보다 더 지저분하고 역겹다. 사진 안의 주인공은 작가다. 작가는 분장을 한 채 조롱하고 비웃고 경멸한다. 역사 문제를 지금의 일상과 절묘하게 연결시키는 그의 상상력은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들다. 이 작품들은 2005년 개인전 <묻지 마>에 등장한 사진들이다. 20여 가지 역사적인 사건들을 작가 자신의 시선으로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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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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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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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너희를 질리게 하리라,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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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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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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