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풍류의 끝은 컥 컥 컥 | 노동효
|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아름다운 추억보다 더 진하게 남은 여행지 황당 체험담
그래도 이 맛에 여행 못 끊는다네
⊙ 풍류의 끝은 컥 컥 컥 | 노동효
보름달 뜬 인적 드문 바닷가 절벽에 앉아 벗과 함께 한잔 술을 마시는 것보다 멋진 풍류가 있을까? 그 일념으로 여행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난여름 서해안 임해관광도로를 지나다 모섬에 들른 적이 있었다. 부엉재산이 바다로 잦아들다가 갑자기 솟구치며 생긴 정말 작은 섬. 목조다리 건너 정상에 오르자 편편한 나무마루가 깔린 전망대가 있었다. 천수만 일몰을 감상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장소, 내 언젠가 이 섬에 다시 와 ‘황홀한 밤’을 보내고 말리라.
호프집에서 그 얘기를 듣던 Y가 이번 주말이 보름달이니 그곳으로 떠나자, 라며 재촉했다. “내가 텐트랑 버너, 코펠을 준비할게. 넌 먹고 마실 걸 준비해, 주변엔 가게도 없어.” “알았어, 마침 어머니께서 담근 오디주가 있던데 한통 갖고 갈게.” “그거 좋지.” 우리는 신두리 사구와 간월암에서 낮 시간을 보낸 뒤 해질 무렵에 맞춰 그곳에 도착했다. 정상엔 아무도 없었다. 완전 무인도구나. 전망대 마루에 2인용 텐트를 치고, 매트를 깔고, 나무벤치를 테이블 삼아 밥도 짓고 찌개도 끓였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우리를 엿보던 달이 휘영청 솟아올랐다. 랜턴을 껐다. “왜?” “보름달에게 미안하니까.” Y도 맞장구를 쳤다. 달도 떴으니 어디 오디주를 마셔볼까? 이 분위기에 어울리는 술병이 아니고 술잔도 없지만 뭐 어때. 1.5ℓ 페트병에 담긴 오디주를 코펠에 콸콸콸 따랐다. 우리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건배를 하고 달빛 머금은 술을 들이켰다, 벌컥. 5초 후 우리는 사약이라도 먹은 사람처럼 뒹굴고 있었다. 컥, 컥, 컥. Y가 어머니 몰래 숨겨온 건 ‘잘 익은 오디주’가 아니라 ‘잘 익은 간장’이었던 것이다. 이미 목젖을 적셔놓은 간장 맛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으니, 그것으로 풍류는 끝이었다. 랜턴 켜, 물, 물, 물!
노동효 <로드 페로몬에 홀리다> 저자
|
⊙ 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기막힌 인연 | 손미나
|
⊙ 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기막힌 인연 | 손미나
아르헨티나 여행의 첫날. 숙소 바로 옆 건물에서 빨간 탱고 신발 한 켤레가 그려진 탱고학원 간판을 발견했다. 탱고를 배우려던 참이었기에 잘됐다 싶어 수업료나 물어볼 요량으로 들어갔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그곳에 있던 한 여자 무용수가 말을 걸어왔다.
“어느 나라에서 오셨지요?” “한국이요.” “어쩜, 반가워라. 저도 서울에 갔었는데 정말 좋은 기억이 많아요.” 그녀는 무용수의 우아한 자태를 잃지 않으려는 듯 한쪽 무릎을 살짝 세우고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로 커다랗고 동그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뮤지컬 <에비타> 공연을 하느라 한국에서 꽤 오래 머물렀어요. 함께 일한 사람들이 좋아서 추억이 더 많이 생겼죠. 특히 미스 배를 잊을 수가 없어요. 한국에서 유명한 사람이라던데 어찌나 소탈하고 친절하던지요.” 뮤지컬 <에비타>? 미스 배? 설마!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르헨티나 여행을 준비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친구 중에 뮤지컬 <에비타>의 주인공을 맡았던 배해선씨가 있었다. 그녀는 내가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간다고 하자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같이 가고 싶은데 아쉽네요. 공연하면서 아르헨티나 무용수들과 친해졌는데, 가장 친했던 막달레나의 연락처를 드릴 테니 저 대신 꼭 만나고 오세요.” 그러나 서로 바쁜 일정에 치여 연락처를 받지 못하고 떠나고 말았다.
“실은 미스 배가 꼭 만나고 오라 한 친구가 있는데요. 막달레나라고….” 그녀는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곧바로 내 말을 받았다. “제가 막달레나인걸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지구 반대편 남미 대륙의 끝 아르헨티나, 그중에서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또 그중에서도 하필 내 숙소 옆 건물에서 이런 만남이 이루어지다니. 그녀와 나는 황당할 정도로 기막히고 운명적인 만남에 서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믿기지 않는 일들이 쉴 새 없이 벌어진 아르헨티나 여행, 그 운명적인 행보의 시작에 불과했다.
손미나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저자
|
⊙ 거문도에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다 | 박동식
|
⊙ 거문도에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다 | 박동식
산은 좋아하지 않지만 바다와 섬이라면 밥 먹다가 숟가락도 내던지고 뛰쳐나갈 정도다. 이 때문에 거문도행을 계획할 때부터 봄바람에 흔들리는 유채꽃처럼 싱숭생숭 들떠 있었다. 문제는 스케줄이 조금 빡빡했다는 점이요, 마감에 쫓기는 원고가 하나 있었다는 것이다. 여수 여객터미널 근처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출항 시간은 아침 7시40분. 그러나 밤을 꼬박 지새우고도 원고를 넘기지 못했다. 편집자에게 몇 시간 유예를 부탁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거문도행 배에 올랐다. 배에서 2시간여 동안 원고를 마무리할 생각이었으나,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결국 거문도에 도착해 우체국으로 달려가 2시간 넘게 원고를 마무리해 송고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거문도를 돌아보기에 남은 시간이 촉박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거문도 등대부터 달려갔다. 아름다운 바다에 취해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등대에서 나올 때는 여수로 나가는 여객선 출항 시간까지 딱 1시간이 남아 있었다. 꼭 둘러볼 생각이던 신선바위와 영국인 묘지까지 다녀오기엔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다. 등대 풍경과 신선바위가 같은 해안 절경이기에 영국인 묘지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발걸음은 이미 신선바위로 향하고 있었다. 신선바위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만 30분. 이제 영국인 묘지는 고사하고 배를 탈 시간도 촉박했다. 정상에서 콜택시를 불렀다. 전화를 끊은 후 전력질주로 산을 뛰어 내려왔다. 택시에 타자마자, 비처럼 쏟아지는 땀을 씻으며 영국인 묘지로 가자고 재촉했다. 운전사는 그러면 배를 못 탈 것이라고 했다. 거문도까지 와서 중요한 영국인 묘지 사진을 못 찍고 떠난다는 건 여행작가에게 치명적인 일이다. 하지만 다음날 일정 때문에 하루 더 머물 수는 없었다. 결국 선착장으로 향했고, 신선바위에서의 전력질주 하산 덕분에 1주일 동안 종아리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박동식 <내 삶에 비겁하지 않기> 저자
⊙ 그때 나는 제정신이었던가 | 여기자 K
|
여기자 K
|
몇년 전 혼자 충동적으로 터키에 갔다. 지중해에 접한 작은 도시에 들렀을 때, 28살이라고 주장하나 48살은 돼 보이는 남자한테 길을 물어봤다. 어쩌다 그 남자 누나네 집까지 가게 됐는데, 가잔다고 또 따라갔던 나를 생각하면 이 인간이 진정 제정신인가 싶다. 그때는 그가 하도 친절해서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밤 10시쯤 그의 누나네 집에 들어서는데 분위기가 꼭 한국 가정집 같았다. 누나 남편이 방바닥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 집 꼬마들은 동양인이 신기해서 난리가 났다. 누나는 사과차를 타줬다. 말 안 통하니 대화도 못 하고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대체 나는 여기서 뭘 하는 걸까’ 생각했다. 누나 남편도 어색한지 담배를 엄청나게 피워 방 안이 너구리굴이 됐다. 한 시간 동안 그 가족하고 멀뚱멀뚱 텔레비전을 봤다. 털고 일어나려는데 애들이 가지 말라고 떼를 썼다. 그래도 그때는 다행히 이성이 되살아나(!) 숙소로 돌아왔다.
|
⊙ 그때 나는 제정신이었던가
|
그 다음날 또다른 배불뚝이 아저씨가 관광지를 다 데려다줬다. 말은 또 안 통했다. 그는 우리나라 남대문시장 같은 곳을 통과하더니 이후 재개발 지역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건물은 텅 비고 불량기 흐르는 애들이 담배를 피워대는 곳이었다. 엄청나게 겁이 났는데 이번에도 친절한 그를 배반할 수가 없었다. 그가 한 허름한 건물 안으로 올라가기에 질겁해 도망갈까 했다. 알고 보니 그는 그 건물 안에 재봉틀 몇 대 두고 바지를 만들어 시장에 납품하는 사람이었다. 거기서 반짝이로 도배한 듯한 바지 두 벌을 꺼내 나한테 선물로 줬다. 이렇게 정신 놓고 여행해도 별일 없이 매번 잘 살아돌아온 거 보면, 세상이 그렇게 각박하지는 않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 이승연이 스페인어를 이렇게 잘할 줄이야! | 채지형
|
⊙ 이승연이 스페인어를 이렇게 잘할 줄이야! | 채지형
집을 떠나 길 위에 나선 지 아홉 달째. ‘열정의 나라’ 쿠바 아바나의 골목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왠지 이 도시에서는 행운이 함께할 것 같았다. 우연히 발견한 게시판에는 아바나에서 라틴아메리카 영화제가 열린다고 써 있었다. 역시 행운이 따르는 게 분명해. 쿠바 친구에게 영화를 하나 골라달라고 하니 <하바나 블루스>를 짚어줬다. 오케이. 그 영화야.
그러나 <하바나 블루스>는 보지 못했다. 1시간 동안 줄을 섰지만 앞으로 그 두 배를 기다려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아 줄에서 나왔다. 영화제 기간 영화 관람료는 약 200원 정도. 관람료가 싼데다, <하바나 블루스>는 영화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화였다. 운이 별로 없군. 다시 프로그램을 들여다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김기덕 감독 특별전이 열리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나 얼마 만의 우리나라 영화인가. 가슴은 쿵쾅쿵쾅. 베네치아(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에 빛나는 <빈집>을 마음에 두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얼마나 설레던지, 마치 <시네마 천국>의 토토가 영화를 보던 마음이 이런 마음 아닐까 싶었다. 영화관은 외곽에 있었다. 여행자도 없었지만 동양인이라고는 유일무이했다. 쿠바 사람들이 한국에서 왔느냐고 묻더니,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눈을 찡끗한다. 어깨를 으쓱 한번 올려주고 영화관에 들어가 앉았다. 다시 운이 좋아지는구나.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영화 속의 배우 이승연씨가 이렇게나 스페인어를 잘할 줄이야. 재희씨도 마찬가지였고 엑스트라들도 그랬다. 덕분에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이 모두 웃고 있는데, 나만 왜 웃는지 모르는 사태가 발생했다. 세상에나, 배우도 감독도 한국인인데, 모든 관객들 중 나만 영화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운이 나쁜 것인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대부분의 영화가 더빙되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인생도 여행도 그렇게 행운이 오락가락하는 법이다.
채지형 <지구별 워커홀릭> 저자
|
⊙ 환차손으로 날아간 내 돈 돌리도! | 김산환
|
⊙ 환차손으로 날아간 내 돈 돌리도! | 김산환
최근 북한이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워낙 전격적인 조처라 우리 정부는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화폐개혁은 한 사회를 송두리째 흔드는 일이다. 금이나 현물 대신 돈을 선호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때로 화폐개혁은 그 나라 국민은 물론, 여행자에게 벼락을 내리기도 한다. 5년 전 쿠바를 갔을 때 내가 그 벼락을 맞았다.
쿠바는 과거 사회주의 국가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내국인과 외국인에 대해 다른 물가를 적용한다. 내국인과 외국인이 쓰는 화폐도 다르다. 내국인은 페소, 외국인은 컨버터블페소를 써야 한다. 고정환율제를 시행하고 있어 1컨버터블페소는 1달러와 가치가 같다. 현지인들은 달러를 선호했다. 달러가 국제통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외국인도 이런 사정을 잘 알기에 굳이 환전을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적어도 2004년 11월13일까지는 그랬다. 11월13일 오전, 나는 환전소를 찾았다가 망연자실했다. 쿠바 정부가 그 날짜로 달러에 대한 10% 평가절하를 단행한 것이다. 달러와 컨버터블페소의 환율이 1 대 1에서 1 대 0.9로 바뀌었다. 즉, 100달러를 환전하면 100이 아니라 90컨버터블페소를 주는 것이다. 그때서야 나는 그동안 쿠바인들이 달러가 아닌 컨버터블페소로 치를 것을 고집하고, 아바나의 환전소마다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던 것이 이해가 됐다. 쿠바인들은 모두 알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여행을 마칠 때까지 쿠바에서 1500달러를 환전했다. 약 150달러의 환차손을 본 셈이다. 몇 달 동안 배낭여행을 하면서 단돈 1달러를 아끼기 위해 몸부림쳤던 것을 생각하면 눈 뜨고 도둑맞은 느낌이었다. 그 돈을 생각할 때마다 속이 쓰렸다. 150달러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떠올려보곤 했다. 쿠바라는 나라도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경제 근간을 뒤흔드는 일을 이처럼 조용히, 신속하게 해치웠으니 말이다.
김산환 <걷는 것이 쉬는 것이다> 저자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