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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30 22:27 수정 : 2010.01.01 11:34

나만의 2009차트 쇼쇼쇼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각계각층 15인이 발표하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나만의 2009 차트 쇼!쇼!쇼!





한 해를 정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이십대 마지막 봄날을 떠올리며 잠시 회한에 잠길 수도 있고, 1년 동안의 통장 명세와 카드 사용 명세를 뽑아 씀씀이를 반성할 수도 있고, 휴대전화에 추가된 전화번호를 하나씩 확인하면서 1년이라는 시간만큼 넓어진 인간관계를 돌아볼 수도 있다. esc는 2009년을 정리하는 방법으로 차트를 선택했다. 각계각층 15명에게 물었다. “올 한 해를 차트로 정리한다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1위부터 3위까지 순위를 정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차트를 받았다. 15명이 건네준 차트처럼 다른 이에게는 사소할지 모르지만 자신에게만은 1년을 정리하고 2009년을 기억하기에 더없이 충분한 차트를 하나씩 만들어보면 어떨까. 재미있는 건, 이런 작은 차트가 퍼즐 조각처럼 모이고 모이면 신기하게도 하나의 그림이 된다는 사실!

“올해 리뷰어를 곤경해 빠뜨린 영화는?”

⊙ 1위 | <2012>

1996년 <인디펜던스 데이>가 나왔을 때 평론가들은 네로 황제에게 유언을 남기는 페트로니우스처럼 외쳤다. “학살을 해도 좋고 도시를 불태워도 좋으니 제발 영화만은 만들지 말아다오.” 그 외침도 무색하게 롤란트 에머리히 감독은 연이어 <고질라> <투모로우> 등을 만들며 ‘파괴지왕’으로 당당히 집권했고 2009년에는 쓰나미, 화산 폭발, 지진의 재난 3종 세트 <2012>를 내놓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감독이야 규모를 늘려가며 동어반복을 하면 된다지만, 거기서 거기인 영화들에 더 이상 동원할 수사가 바닥난 영화 기자는 어쩌란 말인가.

⊙ 2위 | <나는 비와 함께 간다>


이병헌, 조시 하트넷, 기무라 다쿠야 그리고 일라이어스 코티어스는 왜 이 시나리오에 “예스”라고 답한 걸까? 관람하는 내내 신뢰할 만한 배우들이 본 미덕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애썼으나, 끝내 예수 수난극의 경직된 복제품만 본 채 심히 좌절하고 말았던, 2009년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

⊙ 3위 |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유럽으로 간 우디 앨런의 건재를 통보해 온 수작.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라는 원제가 국내로 들어오며 어딘지 모를 곳에서 몰라보게 환골탈태하는 바람에, 꼼꼼치 못한 평자는 시사회를 놓치고 뒤늦게 개봉관으로 질주해야 했다. 그러나 더 심한 낭패를 본 쪽은, 이 영화 촬영에 헌신적으로 협조하고도 한국 시장에서는 전혀 홍보 효과를 거두지 못한 바르셀로나 관광청일 터다.

김혜리/영화평론가



“소설가를 위한 최고의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은?”

⊙ 1위 | 패스트핑가(Fastfinga)

여전히 육필을 고집하는 소설가(예를 들어 김훈 선생처럼)들을 위한 애플리케이션이다. 검지로 일필휘지 쓰면 된다. 손가락 글쓰기가 좀 어색하게 느껴진다면, 볼펜 끝에 AAA 배터리를 끼워서 써도 된다. 연필심을 촛불에 데워 가면서 쓰면 되려나? 어쨌든 문제는 다 쓰고자 하는 마음인 거다.

⊙ 2위 | 3D 카메라

자료조사를 하는 소설가에게 사진기와 녹음기는 필수다. 묘사할 건물을 찍고, 사람들의 언어 습관을 몰래 녹음한다. 이건 아이폰이 없어도 가능하다. 그러나 좀더 심도 있는 묘사가 필요하다면? 3D 카메라가 도움이 된다. 왼쪽 눈의 위치에서 피사체를 한 번 찍고, 오른쪽 눈의 위치에서 다시 찍는다. 그러면 이 애플리케이션은 여러 포맷의 입체사진을 토해낸다. 입체안경을 끼워주진 않아서 사시처럼 두 개의 상을 한데 모아서 봐야 하는 단점이 있다.

⊙ 3위 | 세카이카메라

이건 좀 설명하기 어려운데, 역시 설명 못하겠다. 아무튼 이것의 모토는 이 세계에 태그를 달자는 것이다. 소설가에게 타인은 늘 갈망의 대상이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또 그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것만 알면 명작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소설가들이 많다. 이걸 실행시키면 엘시디(LCD)창으로 이 세계에 남겨진 타인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그 흔적들은 이 세계에 둥둥 떠다닌다. 아, 설명하기 어렵다.

김연수/소설가



“올해 최고의 ‘남성인권보장위원회’(남보원) 구호는?”

⊙ 1위 | “니 생일엔 명품가방, 내 생일엔 십자수냐!”

녹화 현장의 반응이 뜨거웠다. 한동안 남보원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이 구호가 나왔다. 남성들은 남녀관계에서 많은 것을 퍼주고(?) 그만큼 못 받는 억울한 속사정이 있다. 여성들은 항상 ‘정성’을 강조하면서 고가보다는 싼 것들로 선물한다. 그런 속내를 잘 보여줬다.

⊙ 2위 | “6시에 약속인데, 6시에 머리 감냐!”

남녀관계에서 ‘돈’과 관련이 없는 부분을 찾다가 발견한 아이템. 데이트를 할 때 여성들은 남성들이 오래 기다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개그맨 황현희씨와 박성호씨도 비슷한 경험이 있더라. “왜 그렇게 늦게 나와!”라는 외침이다.

⊙ 3위 | “커피 값은 내가 냈다, 진동 오면 니가 가라!”

남녀관계에서 한 사람이 돈을 내면 다른 사람은 ‘몸이 좀 고생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나온 개그다. 주로 남성들이 돈을 내기 때문에 여성들은 노동을 좀 했으면 했다. 반대로 여성이 돈을 내면 남성이 커피를 가져오는 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평등한 남녀관계를 위해서!

최효종/개그맨



안성기(왼쪽) 사진 씨네21 이혜정. 손정은 아나운서(오른쪽).

“옆자리에서 함께 뉴스를 진행해보고 싶은 남자 연예인은?”

⊙ 1위 | 안성기

좋은 목소리와, 신뢰감을 주는 편안한 외모. 좋은 앵커의 외형적인 조건일 텐데, 이를 가장 완벽하게 갖춘 이는 바로 영화배우 안성기가 아닐까. 단지 앵커 역할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뉴스 진행을 해도 손색이 없을 듯.

⊙ 2위 | 이선균

이선균과 뉴스. 얼핏 안 어울리는 조합 같기도 하지만,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그 부드러운 저음을 어찌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다만 그 목소리에 취해 뉴스는 귀에 전혀 안 들어올지도.

⊙ 3위 | 장동건

최근 몇 년간 맡았던 배역 때문이겠지만 장동건이라는 배우에게는 거칠고 어두운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보고 났더니 그에게서 장난기와 함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 엿보이더라. 대통령을 연기하면서 보여주었던 느낌 그대로라면 앵커로서도 손색이 없을 듯. 다른 여자를 곁에 앉히고 싶어 하지 않으실 그분(!)께는 죄송해요.^^

‘물론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꿈이요 희망사항이고, 나에게는 현재 주말 뉴스데스크를 함께 이끌어가고 있는 왕종명 앵커가 최고다. 정말이에요.’

손정은/문화방송 아나운서



“혼자 술 마실 때 안주로 딱 좋은 편의점 음식은?”

⊙ 1위 | 김창렬의 포장마차 훈제삼겹(세븐일레븐)

채다인 제공

훈제삼겹살과 보쌈소스가 먹기 좋게 포장돼 있는 제품이다. 향긋한 훈제 향의 삼겹살과 매콤한 보쌈소스의 조화가 저도 모르게 막걸리가 생각나는 맛. 디제이 디오시 김창렬씨를 모델로 한 제품이기도 하다. 요즘 막걸리가 유행이라고 하는데 편의점에서 ‘캔막’(캔막걸리) 하나 사서 가볍게 한잔하는 것도 좋을 듯?

⊙ 2위 | 존쿡 스모크 브랏(지에스25)

작은 용량으로 포장되어 있어 맥주와 함께 가볍게 한잔하기 좋은 제품이다. 극락이 따로 있겠는가. 이 소시지를 프라이팬에 살짝 구워 시원한 맥주를 곁들이면 그게 바로 극락이다.

⊙ 3위 | 불나게 매운 떡볶이 화볶이(대부분의 편의점에서 판매)

제목 그대로 입안이 화끈할 정도로 얼얼한 떡볶이. 직장 상사와 한판 해서 속이 쓰린 날, 여기에 소주 한잔하면서 분을 삭이는 건 어떨까?

채다인/이글루스 블로거(totheno1.egloos.com)



로봇 물고기(왼쪽) 연합뉴스. 배명훈(소설가·오른쪽)

“올해 에스에프 소설가의 생계를 위협했던 소설 같은 사건은?”

⊙ 1위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내 소설에 용어사전을 넣었다. ‘먼지’라는 항목에 ‘현대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존재의 흔적’이라고 쓰고, ‘바보’라는 항목에 ‘현대 도시인들 사이에 합의된 최소한의 사악함을 습득하지 못하여 타인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인간의 도리를 행함으로써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사람’이라고 썼다. 딱 들어맞는 경우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원고를 넘기고 며칠 뒤에 그 일이 일어났다.

⊙ 2위 | 로봇 물고기

비난도 아니고 조롱도 아니고 풍자도 아니다. 이건 소설로 쓰면 분명 먹힐 만한 아이템이다. 괜찮은 에스에프(SF) 하나가 나왔다.

⊙ 3위 | 지하철역 우측통행 캠페인

“편리하고 안전한” 우측통행. 그렇다면 국가는 도대체 왜 지난 수십년 동안 “불편하고 위험한” 좌측통행을 아이들에게 강요했을까. 벌도 주고 가끔은 때려가면서 말이다. 국가가 스스로 한 말에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오히려 뻔뻔하게 국민이 후진적이고 우매하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좀 곤란하다. 소설 <1984>의 그 끔찍한 통제사회에서 주인공에게 할당된 직업이 무엇이었던가. 정책이 바뀔 때마다 국가가 과거에 그 일에 관해 내뱉은 말들을 찾아내서 그것을 모두 삭제하는 일이었다.

배명훈/소설가



“혼자 사는 뮤지션 오양이 올해 가장 많이 먹은 외식은?”

⊙ 1위 | 남가좌동 모래내설렁탕집의 가마솥밥 설렁탕과 수육

한겨레 자료사진

하루에 한끼만 먹는 날도 허다하다 보니 ‘한끼라도 제대로 먹자’는 강박이 있어서 몸이 허하다 싶을 때 항상 찾았던 집 앞 설렁탕 집. 최고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먹어야 생명이 연장되는 기분이랄까. 3만5000원짜리 모듬수육은 나의 로망.

⊙ 2위 | 연희동 완산골명가의 콩나물국밥

전주 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 집. 24시간 영업이라 새벽에 한 그릇 말 때 최고다. 계란을 국물에 섞지 말고 먹으라고 하지만 섞어 먹어 아저씨에게 항상 눈 흘김을 당한다.(아저씨, 취향이 이런 걸 어쩌겠어요.)

⊙ 3위 | 남가좌동 엄마손떡볶이집의 김밥

떡볶이집이지만 김밥이 맛있다. 얇게 말린 김밥이 고소하고 좋다. 같이 포장하는 떡볶이는 순전히 김밥 찍어먹는 소스 용도.

오지은/뮤지션



“올해 달콤한 병맛 코미디는?”

‘올해의 키워드를 뽑으라면 역시 ‘병맛’. 다짜고짜 삽질로 밀어붙이는 정치도 병맛, 살아날까 말까 약 올리는 경제도 병맛, 세상을 떠난 좋은 사람들 생각에 마음도 병맛. 그래도 이런 씁쓸한 병맛들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개념 있는 병맛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미쳤다, 밥맛없다, 병신 꼴값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내겐 정말 달콤한 병맛들.’

⊙ 1위 | <롤러코스터>

이런 제길. 도대체 이따위로 멋지게 미친 것들이 왜 이제서야 나타났는지 모르겠어요. 개념을 밥 말아 먹어도 꼭꼭 씹으면 이렇게 영양가가 풍부하군요. ‘남녀 탐구 생활’도 물론 좋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갈 데까지 간 병맛 드라마 세계를 통렬하게 때려준 막장 드라마 패러디에 감동. 특히 불륜의 남녀들이 누가 집에 남느냐를 다투는 상황에서, 갑자기 버라이어티 쇼로 변신해 까나리 액젓을 마시는 장면.

⊙ 2위 | 야구 카툰 <불암콩콩 코믹스>

진정한 병맛의 현신체는 인터넷 개그 만화들에서 찾는 게 정답이다. 귀귀, 이말년 등 쟁쟁한 작가들이 버티고 있지만 겨울이라 심심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최의민 작가의 손을 들어준다. 프로야구 선수들을 실명도 모자라 온갖 별명으로 등장시켜 후줄근한 그림체로 마구 뒤흔든 플레이는 가히 다이내믹 병맛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독해가 어려운 패러디들을 친절히 설명해주는 댓글 또한 일품.

⊙ 3위 | ‘떡실신녀’ 황정음

굳이 병맛 차트에 넣자니 미안하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애호도를 반영했다. 아무튼 귀엽게 미친 병맛으로 한 해를 상큼하게 해주었다. 각종 떡실신 술주정 연기도 훌륭했지만, 그 장면들을 모아 요들송 뮤직비디오로 만든 <지붕뚫고 하이킥> 팀의 병맛 센스는 발군.

이명석/저술업자



“올해 가장 보기 안쓰러웠던 ‘안습’ 코스프레는?”

⊙ 1위 | 낸시랭의 고양이 인형

몇달 전 티브이를 보다 깜짝 놀랐다. 행위예술을 하시는 낸시 랭씨가 지상파 방송에 나오고 있었다. 어깨엔 고양이 인형이 올려져 있었다. 나 역시 패션계에 몸담고 있지만…, 꽥! 고양이 인형이 공포였을까, 낸시 랭이 더 공포였을까.

⊙ 2위 | 구준표 복장의 정주리와 박휘순

‘꽃남’의 대명사 구준표. 그러나 구준표 스타일 머리와 옷을 하고 나온 개그우먼 정주리씨를 보면서 새삼스레 다시 깨달았다. 새삼스런 깨달음을 도운 개그맨이 한 명 더 있다. 역시 구준표 스타일 머리를 하고, 모피를 입고 나온 개그맨 박휘순씨. 깨달음은 이렇다. ‘부티’ 나는 스타일링도 하는 대상에 따라 최고로 ‘싼 티’ 날 수 있다는 사실을.(물론 망가지는 게 직업인 개그맨이시니까 그랬겠죠?)

⊙ 3위 | <세바퀴> 임예진의 세일러문 복장

나는 올해 서른아홉이다. 지금 ‘국민 여동생’은 문근영씨지만, 내 세대(라기엔 조금 앞서 있지만)에도 국민 여동생이 있었다. 머릿속에 항상 상큼하고 귀여운 이미지로만 남아 있는, 그 내 마음속 국민 여동생이 올해 문화방송 <세바퀴>에서 나온 모습을 보고 입이 벌어졌다. 1970년대에 국민 여동생이던 임예진 누님~! 왜 그러세요…. ㅜㅜ

박성목/장광효카루소 브랜드매니저



“올해 먹어본 가장 신기한 ‘괴식’은?”

⊙ 1위 | 백색의 베이컨 가루

한 퓨전 한식당에서 먹었던 흰색 가루. 베이컨을 건조시켜 만들었다고 했다. 분명 돼지고기로 만든 베이컨은 흰색이 아닌데, 어떻게 베이컨을 가루로 만들었기에 그런 흰색을 만들 수 있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신기한 건 맛을 보면 형태만 흰색 가루일 뿐 맛과 풍미는 실제 베이컨과 꼭 같다는 것이었다. 돼지고기의 지방(흰색)만 건조했을까? 제 요리 경험상 지방으로 가루를 만들어도 이렇게 흰색이 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쩝. 아무튼 가루 형태로 베이컨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니 신기한 노릇이었다. 아, 물론 비법은 비법이기에 굳이 주인장에게 비법을 캐묻고 싶진 않았다.

박종숙 제공

⊙ 2위 | 유자청주머니

한식연구가 박종숙씨의 손맛작업실에 갔던 날이었다. 박 원장님이 정성스레 무언가를 준비했다. 유자주머니차였다. 평범한 유자차는 유자를 채 썰어 설탕이나 꿀에 재는데,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일단 유자 속을 파내고 그 안에 채 썬 밤, 대추, 석이버섯을 채워 매실청물에 담근다. 그 뒤 삼투압에 의해 단단해진 유자를 썰어 같이 내는 것. 깊은 맛이 느껴졌다. 옛날 해남 지방의 부잣집에서 만들어 먹곤 했단다. 잊을 수 없는 전통의 맛!

⊙ 3위 | 라면 국물

패스트푸드에 반대해 생긴 슬로푸드에 몸담고 있는지라 인스턴트 라면은 1년에 몇 번 먹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 슬로푸드를 공부하다 지난해 말 들어와 올해 아주 오랜만에 라면을 먹었다. 먹을 때마다 항상 신기한 라면 국물. 맛을 보면 고기 육수에 최소 서너가지 채소는 넣어 끓였을 법한 맛이 나는 라면 국물, 그러나 수프의 재료 성분표를 보면 눈을 씻고 찾아봐도 고기나 채소 성분은 단 한 방울도 들어 있지 않는 라면 국물. 고기 없이 육수 맛을 내고 채소 없이 채소 국물 맛을 내는 신기한 재주라니….(그러나 저는 이런 재주는 배우고 싶지 않습니다. 몸에는 괜찮은 걸까요?)

노민영/남양주시 슬로푸드팀



“올해 ‘딴나라’에서 ‘울나라’ 생각에 코끝 찡했던 일은?”

⊙ 1위 | 타이 코묵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야심차게 벌였던 사업에 폭탄(?)을 투하하자 이를 잊기 위해 가족을 데리고 무작정 떠났다. 5년 전 성탄절 어름에 닥친 쓰나미로 22만명이 휩쓸려간 안다만해의 한 섬 ‘코묵’으로. 17시간 3등칸 열차에 30분 봉고차, 1시간 롱테일보트 트립 끝에 선착장도 없는 모래해변에 우리 셋만 덩그러니 내려졌다. 예약도 없이 찾아들어간 비치 방갈로, 체크인하다 옆에 놓인 서가에 눈길이 꽂혀버렸다. 책, 한글로 된 책! 전기도 없고 로밍폰도 왔다갔다하는 코딱지만한 섬에서 발견한, 앞서간 한국인의 자취. 뒷장에 흘려 쓴, 사랑을 잃고 쓸쓸히 여기까지 찾아든 한국 아가씨의 세상살이 이야기.

⊙ 2위 | 영국 맨체스터

그가 없었다면 결코 가리라고 생각할 수 없는 그곳 ‘맨체스터’. 그가 있기에, 그가 잘해왔기에, 또 그가 더욱 잘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놓칠 수 없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연간 170만의 관중이 찾는 100년 역사의 ‘꿈의 구장’(the Theatre of Dreams) 올드트래퍼드 경기장. 130년 역사 속에 거쳐간 20%도 되지 않는 외국인 선수 중 아직도 ‘레전드’가 진행중인 박지성. 그의 이니셜 ‘J. S. Park’이 박히 유니폼을 플레이어스 라운지(Player’s Lounge)에서, 그의 이름 ‘Jisung, Park’을 아너스 보드(Honor’s Board)에서 발견했을 때 최초의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전설에 몸서리쳤다.

⊙ 3위 | 중국 윈난성 다리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인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는다는 것은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우리 앞에 등장했던 재색 정장 모습 그대로 거기 서 있었다. “아빠, 여기, 노무현 대통령이 있어요!” 아들과 함께 떠난 중국 윈난성 다리(大理), 구청(古城)의 한 책방 입구에 그가 표지모델로 나온 중국 시사주간지가 붙어 있었다. 남중국 뙤약볕에 바래버린 사진 속 그가 이국땅 촌동네에서 내 눈과 마음을 그렇게 붙잡다니. “꽃은 져서 더 아름답게 피고, 사람은 죽어서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영원히 되살아난다.”

김형렬/호텔 자바 이사



“2009년 방영 드라마 중 최고의 눈빛은?”

⊙ 1위 | <지붕뚫고 하이킥> ‘빵꾸똥꾸’를 외치는 해리의 눈빛

급기야 정부는 빵꾸똥꾸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사태까지 오고 말았다. 근엄한 뉴스진행자마저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어 무력화하는 ‘빵꾸똥꾸.’ 하지만 방통심의위는 헛삽질을 날렸다. 계엄(시정조치)은 마땅히 빵꾸똥꾸가 아닌 해리의 눈빛을 무력화하는 데 써야 했다. 빵꾸똥꾸는 껍데기일 뿐이다.

⊙ 공동 2위 | <지붕뚫고 하이킥> 세경을 째려보는 보사마의 눈빛

가부장으로서 마지막 남은 자존심조차 내버린 듯, 이 세상 모든 시청자들의 원망을 다 사겠다는 결기 하나로 뭉쳐 세경을 견제하는 노골적인 보사마의 날 선 눈빛은 카메라를 뒤흔든다. 일본 아줌마들에게 시선을 둘 때, 족사마의 신분으로 스파이크를 날릴 때의 눈빛을 더해 2009 하반기 대표적인 ‘이글아이’다. 그 눈빛이 담고 있는 역설적 처연함은 장인에게 “이걸 어쩌죠”라며 날리는 비굴 눈빛과 쌈으로 함께 싸서 맛봐야 제격이다.

⊙ 공동 2위 | <아이리스> 김태희의 눈빛(벌린 입 포함)

김태희의 눈빛은 ‘최고 눈빛 선정위원회’(가칭)에서 벌린 입을 눈빛 심사 요소로 포함시켜도 되느냐는 논란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하지만 틱장애 아니냐, 지병 아니냐 등의 근거 없는 소문을 잠재우고 총알이 주인공만 피해 가는 급박한 상황에서 다물 줄 모르는 그의 벌린 입과 눈빛은 통합을 내세우는 현 정부의 지침을 따를 때, 일괄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 결국 우세했다.

⊙ 3위 | <아내의 유혹> 불 뿜는 목소리를 더욱 빛나게 하는 김서형의 눈빛

김서형의 눈빛은 70년대 <장희빈>의 윤여정, 80년대 <사랑과 야망>의 김용림을 잇는 악역 눈빛의 교과서였다. 트리플 악셀과 같은 고난도 눈빛 기술을 보는 듯한 그의 연기를 보면 3위 자리를 내주는 손마저 미안해질 정도다.

하어영/<한겨레> 문화부 기자



“올해 최고의 코미디는?”

⊙ 1위 | 와이티엔 ‘빵꾸똥꾸’ 방통위경고 보도 사건

어린이가 ‘빵꾸똥꾸’라는 대사를 썼다는 이유로 엠비시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경고조치를 받았다. 또박또박 ‘빵꾸똥꾸’를 발음하던 새벽 뉴스 남자 앵커의 톤이 슬슬 무너지기 시작한다. 뒤이어 ‘서울역 광장서 미신고 집회 12명 연행’ 보도 때는 말을 잇지 못하고, 급기야 지구촌 뉴스를 전해야 하는 여성 앵커는 웃음을 참지 못해 거의 흐느끼는 수준.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 또한 1위로 꼽기에 손색이 없으나, 개인적으로는 이 방송사고가 더 웃겼다.

⊙ 2위 |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는 <저수지의 개들>이나 <펄프 픽션> 같은 초기작들을 좋아한다. 이후의 몇몇 작품들에서 보여준 격조나 메시지는 왠지 그답지 않다는 생각. 간만에 그 모든 것을 빼고 엔터테이너로서의 모습으로 돌아온 타란티노, 실로 반갑고 유쾌했다.

⊙ 3위 | 영화 <낮술>

노영석 감독의 한국 독립영화. 별 기대 없이 극장을 찾았다가 완전히 뒤집어져서 나왔다. 당시 극장에는 나 외에 관객 세 사람만 있었는데 모두 일행 없이 혼자 영화를 보러 온 거였다. 115분 동안 그들과 함께 신나게 웃고 났더니,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일면식 없는 그들과도 묘한 친근감이 느껴질 지경.

장항준/영화감독



“올해 내 마음을 사로잡은 사진책은?”

⊙ 1위 | <시선 1980>(구본창 지음, 와우이미지 펴냄)

사진가 구본창 선생이 독일 유학에서 돌아와서 한국을 기록한 사진을 모은 책. 1980년대 중반부터 1988년까지 한국 사회의 풍경이 담겨 있다. 청년 구본창이 바라본 한국 사회가 잘 나타난 사진집이다.

⊙ 2위 | <99 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강영호·김탁환 지음, 살림 펴냄)

소설가 김탁환이 사진가 강영호의 사진을 보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쓴 장편 연작소설집. 사진 한 장을 보고 상상력을 발휘해 소설을 썼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두 사람이 갖고 있는 문화콘텐츠의 융합이다. 사진이 다른 장르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3위 | <이미지스 온 비잉>(Images On Being)(여동완 외 지음, 가각본 펴냄)

한국의 사진가를 소개하는 사진집 시리즈. 여동완·강재훈·김장섭·심환근·오형근·이갑철·이일섭·최영동·허용무 등 9명의 사진작가의 사진 작품을 소개한다. 500부 한정판으로 제작됐으며 각 권에는 작가 친필 사인과 번호가 매겨져 있다. 출판사 가각본은 이 시리즈를 통해 앞으로 한국의 사진가 100여명을 소개할 예정. 1인 출판사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시리즈물이라고 생각한다. 그 집념에 박수를.

이상엽/다큐멘터리 사진가



“올해 나를 울린 여행은?”

⊙ 1위 | 맨발 산행

쌀쌀한 늦봄 오대산 산행을 갔다. ‘맨흙과 자갈 밟기가 건강에 최고’라는 일행의 말에 대뜸 신발·양말을 벗어 들었다. 군 복무 시절 맨발로 행군하고 축구했던 내가 아닌가. ‘오만’이 후회의 몸부림으로 바뀌는 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자존심이 문제였다. 신발을 다시 신을 명분도 없었다. 일행과 등산객들의 ‘놀라움과 존경 어린 시선’이 나를 밀어붙였다. 아으, 오를수록 길바닥은 돌투성이로 변했다. 속으로 울부짖으며 걸었다. 등산객 하나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정신 나갔군.” 그 뒤 1주일간 내 발은 ‘불타는 족발’이었다.

⊙ 2위 | 스카이다이빙

아에프페 연합

미국의 한 스카이다이빙센터. 5000m 상공 비행기 안. 옆의 금발녀가 주위 남자 다이버들과 내 입술에 뽀뽀하고는 뒷문으로 뛰어내린다. 갑자기 당한 촉촉한 뽀뽀를 생각하며 기분 좋은 낙하를 즐겼다. 그런데 이 금발녀, 다이빙에 한 맺혔는지 쉬지도 않고 비행기만 뜨면 몸을 싣는다. 몇번 더 점프를 하는 동안, 나 말고도 몇 놈이 그녀와의 뽀뽀를 즐기기 위해 점프를 계속한다는 느낌이 왔다. 그녀를 따라 10번 넘게 다이빙을 하니 비용이 장난이 아니다. 한 남자가 내게 물었다. “너도 대회 나가니?” “아니.” “근데 왜 그렇게 열심히 점프하니?” “….” 그녀와 남자들은 대회를 앞두고 훈련중인 선수들이었다. 앞으로 며칠간 100번 정도 더 낙하할 거란다. 난 그날 저녁 짐을 쌌다.

⊙ 3위 | 고교 동창과의 조우

아침 외국출장을 갈 땐 항상 비행기에 타자마자 머리까지 담요 덮고 잔다. 옆자리 한 남자도 담요 뒤집어쓰고 잔다. 그렇게 몇 시간을 자다가 경유지에서 잠시 내려 옆자리 남자와 대화하니 목적지가 같다. 어디선가 만난 듯했다. 목적지 도착 뒤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는데, 다음날 전화가 왔다. 그는 고교 동창이었다. 세상 참 좁다. 너무 반가워 늦은 밤까지 고교 시절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국제선 비행기 옆좌석에서 고교 동창 만나는 게 번개 맞을 확률이라는데, 번개 한번 제대로 맞았다. 내년엔 확실하게 번개 때릴 여성분 만나기를, 맨발로 스카이다이빙하며 빌어본다.

조상근/극한스포츠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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