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0.01.06 19:32 수정 : 2010.01.06 19:47

일러스트레이션 이상호 기자 silver35@hani.co.kr

[매거진 esc]





esc 주선 선남선녀
2 대 2 소개팅
성공·전업·연애·결혼
“골치 아프지만 포기 못해!”

서른살은, 혹은 서른살 이상은 우울하다. 적어도 시와 노래를 보면 그렇다. 이들 작품을 보면 서른살 이상은 웃으면 안 될 것 같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이라고 노래하는 가수(김광석·‘서른 즈음에’)나 “삼십세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젊다고 부르는 것을 그치지 않으리라. 하지만…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라고 쓴 작가(잉게보르크 바흐만·<삼십세>)나 심지어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살은 온다”라고 ‘저주’를 퍼붓는 시인(최승자·‘삼십세’) 앞에서 즐겁고 발랄한 게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난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여자가 좋아.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나름대로 확고한 가치관도 가지고 있고 그러면서도 새로 시작할 수 있고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잖아”라는 위로(야마모토 후미오·<내 나이 서른하나>)가 있긴 하지만 역부족이다.

작가들이 이처럼 엄살을 부린 것은 30대 초반 나이 때 고민도, 열정도 최고치에 다다르기 때문일 게다. esc가 소개팅을 주선했다. 싱글인 젊은 남녀 직장인 넷이 4일 저녁 100년 만이라는 폭설을 뚫고 강남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수줍은 사랑의 화살표 대신 젊은 직장인들의 사람 사는 이야기가 눈처럼 쌓였다. 조성운(30) 갤러리 ‘시에스피’(CSP) 대표, 신상훈(32) 딜로이트 컨설팅 애널리스트 등 남성 둘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김효정(30) 법무법인 양헌 변호사와 김재민(31) 요리사가 말을 이었다. 수다는 취미를 향했다, 올해는 절대 보기 싫은 직장상사로 이어졌고, 부업과 전업에 대한 고민으로 향했으며, 연애와 결혼으로 모였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이들에게 서른은 즐거운 나이였다.

서른, 잔치를 준비해볼까?

전업, 직장인의 로망

4일 저녁 다행히 눈은 그쳤지만 아직 날은 쌀쌀했다. 죽엽청주가 풀어준 건 언 몸만이 아니었다. 긴장으로 조금 굳은 마음도 술이 풀어줬다. 대화는 날씨와 술 이야기에서 자연스레 요새 직장인들의 고민인 전업과 부업으로 이어졌다.


고나무 기자(이하 나무) : 다들 추운데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 네분을 모신 건 30대라는 의미가 남다르다고 생각해서예요. 서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확실히 30대와 20대는 다르다고 느낍니다. 저를 돌이켜봐도 그렇고요, 20대 땐 술 마시러 돌아다닌 기억밖엔.

조성운(이하 성운) : 저도 항상 친구들한테 나 20대 때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고 말해요.

김효정(이하 효정) : 전 술 안 먹고 돌아다녔어요.(웃음) 술을 못하거든요. 그런데 술은 제가 권하죠.(다들 웃음) 술 많이 마시는 사법연수원에서 폭탄주를 한잔도 안 마시고 졸업한 유일한 졸업생일걸요.

신상훈(이하 상훈) : 저랑 비슷하시네요. 저도 술 마시면 바로 잡니다. 회사 선배들과 술자리 가도 “사이다 한병이요”라고 외치죠.(웃음)

나무 : 술 얘기가 자연스레 나와서 그런데요, 저도 주당은 아니지만 술친구들과 만나면 항상 마지막엔 “술집 내자”는 말로 끝이 나죠. 농담으로만 뱉었다 최근에 진짜 가능성이 있는 건지 조사해 봤어요, 권리금부터 술까지요. 만만치 않더군요. 주변 친구들 이야기 들어봐도 바리스타, 소믈리에, 조리사 등의 수업을 듣는 직장인이 정말 많은 것 같습니다. 한 직장에 30, 40년 다니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다들 꿈꾸는 부업이나 아예 직업을 옮기는 전업의 ‘로망’이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전업하신 경험 있는 건 조성운 대표님이시죠?

효정 : 저도 전업했어요. 학원강사였어요. 졸업하고 나서 강사로 일하다 사법시험을 준비한 경우죠. 통계학과 출신이거든요. 보통 금융업으로 많이 취직하는데 저는 놀다 보니(웃음). 그땐 ‘열심히 20대 때 놀다가 30대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서른, 잔치를 준비해볼까?

성운 : 벼랑 끝 전략이셨네요?(웃음) 20대 중·후반에 조급증은 안 생기셨어요? 친구들 잘나가는 거 보면 조급증 같은 게 생기잖아요.

효정 : 일부러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서른살까지 내가 할 일을 찾아서 시작하기만 하면 될 것 같았죠. 급하게 해도 돌아가는 경우 많잖아요. 그래서 더 열심히 놀았어요.(다들 웃음)

나무 : 물론 요샌 전공 가리지 않고 사법시험을 준비하지만 전공이 인문학이 아니시잖아요? 계기가 있었나요?

효정 : 제가 워낙 스포츠를 좋아해서 스포츠 관련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다 변호사 자격증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죠. 야구, 축구 등 스포츠를 다 좋아해요. 보는 걸 워낙 좋아해서요. 지금도 법무법인에서 엔터테인먼트 관련 일을 많이 하는 편이고요. 올핸 스포츠 쪽 업무를 하는 게 꿈이죠.

성운 : 스포츠 법률 시장은 큰가요?

효정 : 아쉽게 스포츠는 영화나 음악에 비해서 아직 시장이 작죠. 고액 연봉 선수도 야구 외엔 별로 없죠. 시장이 좀더 커져야죠.

나무 : 어쨌든 취미가 고리가 된 거네요. 대표님은 어땠나요? 전업이라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성운 : 저는 군대 면제라 나이에 어드밴티지가 있었어요. 첫 회사도 빨리 들어왔죠. 회사를 4년 다니고 그만두고 1년 반 있다 갤러리를 차렸는데도 이제야 서른이니까요. ‘이제는 좋아하는 걸 해야겠다’는 결정이 조금이나마 쉬웠죠. 저는 항상 친구들에게 말하는 게 “사람의 능력은 상위 1%가 아니라 30% 안에만 들면 된다”는 거예요.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인간관계나 성실함으로 커버할 수 있다는 말이죠. 30%라면 셋 중 하나에만 들면 된다는 말이죠. 첫 직장으로 대기업에서 재무 쪽 일을 했어요. 제가 성실하긴 한데 재무 쪽에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 많더군요. 다들 자격증도 많고요. 일은 재밌는데 객관적으로 세명 중에 한명 안에 못 들겠더군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회사를 그만두고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자는 연락이 왔지만 ‘아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어’라고 결심했습니다.

나무 : 사진과 미술은 전공이신가요?

성운 : 아뇨, 학부 전공은 또 다릅니다. 다만, 미술을 좋아해서 따로 배웠습니다. 김흥수 화백에게 개인적으로 배운 적도 있고요. 주말마다 가서 배웠죠. 그쪽에 관심이 많다 보니 아무리 피곤해도 전시가 정말 보고 싶을 땐 트레이닝복 입고 갤러리에 간 적도 많죠. 회사에서 퇴근 일찍 한 날엔 갤러리가 보통 일곱시에 문을 닫으니 트레이닝복에 운동화 차림으로 뛰어가서 봤죠. 정말 좋아하면 어떻게든 하게 되더군요.

재민 : 저는 ‘로망’하는 부업이 술집이에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술집이 있어요. 집 근처에서 레코드 보유량이 가장 많은 곳이죠. 인테리어는 아주 허름한데 음악을 적어 내면 공연 실황이나 뮤직비디오를 틀어줘요. 술도 마시면서 제가 금방 요리해서 낸 음식을 끼리끼리 모여 먹는 술집. 좋아하는 음악 듣고 영화를 보는 술집이 저의 마지막 로망이죠.

상훈 : 대학 후배가 예전에 종로에 작은 카페를 차렸어요. 벌이도 괜찮고 만족도도 굉장히 높았죠. 주위에서 다들 부러워했어요. 카페를 생각해봤지만, 이 직업을 하면서는 못할 것 같아요. 지금은 ‘하던 거나 잘하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만약 부업을 한다면 카페를 하고 싶어요. 아니면 제가 좋아하는 냉면으로?

올핸 이런 상사 좀 안 봤으면

삼십분이 지나자 기자가 사회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 빈 접시가 하나둘 늘자 각자의 인생 이야기가 자연스레 돌고 돌았다.

성운 : 회사 다녔을 때 저는 ‘뒷담화’하는 상사가 싫었어요. 정치하는 상사나 팀 분위기를 안 좋게 하는 상사 있잖아요.

나무 : 그래요? 보통 후배가 상사 뒷담화를 하지 않나요?

성운 : 그게 아니라 말하자면 후배를 자신의 뒷담화에 공감하게 하는 거죠. 가령, 대리가 후배들 데리고 밥 먹는데 “아무개 과장 이상하지 않냐? 짜증나지 않냐?”라며 저한테도 공감하기를 바라죠. 자기편에 서주기를 바라는 거예요. 연말 회식자리에서 “뒷담화 좀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가 다음날 선배에게 불려간 적도 있어요, 하하.

나무 : 그런 상황에서 모든 직장인은 나름의 대처법이 있잖아요? 대표님 대처법은 뭐였나요?

성운 : 연말에 참다 참다 상무님과 전무님 있는 회식자리에서 “팀 내에서 뒷담화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어요. 다음날 대리님과 과장님이 조용히 부르시더군요. 저는 혼나는 줄 알았는데 웬걸 조용히 “사실 우리 의도가 그런 게 아니라… 직장인들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데 그런 말이라도 하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시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그때 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2004년 신입사원 때라.

재민 : 저 같은 경우 능력 없고 감도 없는데 상사라는 이유만으로 군림하는 분은 좀 아닌 것 같아요.

성운 : 좀 극단적이지만 만약 한 상사는 능력이 좋은데 성격이 까칠하고 조직에 적응 못 하는 독불장군이고 다른 상사는 능력은 고만고만한데 조직에 순응하고 사람 좋다고 쳐요. 둘 중에 누구를 택하시겠어요?

재민 : 직장에서는 능력 좋은 상사가 더 좋은 것 같아요. 능력 없는데 인간관계로 무마하려는 상사는 제 타입 아니죠.

성운 : 그래서 제가 말씀드린 게 바로 ‘30%론’이에요.(다들 웃음)

효정 : 저도 조금 부족한 건 괜찮은데 직원들을 힘들게 할 정도의 상사는 좀….

결혼은 미친 짓이다?

대화는 자연스레 결혼으로 이어졌다. 참석자마다 인생의 우선순위는 달랐다. 각자에게 결혼은 다른 무게였다.

나무 : 다들 집에서 결혼하라는 압박을 받고 계실 것 같습니다.

상훈 : 집에서 슬슬 압박이 있어요. 준비는 끝난 것 같긴 한데요.

재민 : 저는 5년 전부터 부모님의 압박을 받아왔죠. 꿋꿋이 버티고 있습니다.(웃음) 돈 잘 벌 땐 아무 말씀 없다 요새 성화세요.

나무 : 압박에도 결혼을 안 했다는 말은 일이 먼저라는 취지신가요?

재민 : 그렇죠.

상훈 : 혹시 오늘 기사 보셨어요? 선호하는 이상형에 대한 조사 내용이 나왔더군요. 여자들이 선호하는 남자는 연봉이 4500만원에 키는 177㎝ 이상, 직업은 공무원이고요, 여자는 3820만원에…. 어휴~.

재민 : (웃으며) 선호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상훈 : 그런데 공무원이 4500만원을 벌려면 연차가 높아야 하잖아요. 말이야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성운 : 선호하는 기준에서 사람마다 집착하는 한 가지는 있는 것 같아요. 직전 회사에 다닐 때 알던 한 여성 대리 선배님은 오로지 키와 외모만 봤어요.

재민 : 두분은 여자를 볼 때 뭘 우선 보세요?

성운 : 음… 저도 외모를 좀 따지는 것 같네요.(다들 웃음)

상훈 : 전 대화가 통해야 돼요.

효정 : 저는 저랑 같이 놀 수 있는 남자였으면 해요.

나무 : 취미나 취향이 같아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재민 : 전 절대 포기 못 하는 게 남자의 자신감이에요. 자신감이 없는 남자는 자격지심이 많고 자격지심이 많으면 상처를 잘 받고 여성에게 상처도 잘 주더군요. 남자가 단단한 사람이었으면 해요. 여자한테 상처 안 주고 포용할 수 있는. 전 그걸 포기 못 하죠. 외모는… 진짜 안 봐요.(다들 웃음)

성운 : “얼굴 본다”는 말도 있고 “진짜 집안이 좋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있지만, 결론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찾는 거 같아요. 말이 통한다는 것도 그렇죠. 나란 사람은 성장 과정, 배움, 직업 등등 여러 가지가 합쳐진 단 한 사람이잖아요. 아주 유니크한 거죠. 비슷한 사람을 찾는 게 힘들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제 생각엔 빨리 포기하고 ‘난 이런 것만 보겠다’는 사람은 빨리 결혼하는 거고 아니면 늦어지는 거 같아요. 예전 회사에서 알던 어른이 항상 제게 술자리에서 “성운아, 너는 앤드(and)론이 아니고 오어(or)론을 택해라. 미모, 재력 등 앤드로 가면 안 된다. 한 가지만 봐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난 얼굴만 봤다”(다들 웃음)고 말씀하시더군요.

효정 : 전 기준을 두세 가지 정해놓고 그 기준들을 평균 내서 종합적으로 따지죠.

재민 : 결국 기준은 각자 주관인 것 같아요. 미술 쪽 일을 하는 친구가 있어요. 유학도 다녀온 이 친구는 남자를 보는 기준이 오로지 외모예요. 집안, 학력, 다 필요 없고 오로지 외모만 보죠. 오로지 포기 못 하는 게 외모래요. 지금 자기 남자친구가 커피숍 문 열고 들어오는 장면에서 얼마나 떨렸는지 아느냐고 항상 말하죠. 조 대표님 여성을 보는 기준이 직업이랑 잘 맞으시군요.(다들 웃음)

서른 잔치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규

소개팅 참석자들 가운데는 이제 막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도 있었고 각자의 영역에서 이미 4~5년의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에게 서른살이란 무엇일까. 술잔은 멈추지 않았다.

성운 : 저 같은 경우 서른 됐을 때 ‘아 이젠 어쩔 수 없어. 누가 뭐래도 서른이야’라고 생각했어요. 서른 됐을 때 진짜 조금… 기분이 그랬어요. 다른 분들은 어떠셨는지 모르겠네요. 서른살이 되니 주변의 대우가 달라진 거 같다고는 느꼈죠. 이십대 땐 일로 만나도 사람들이 저를 보고 ‘그래 넌 어리니까…’라고 생각한다는 느낌이었죠. 서른이 되니 어디 가도 어른 대접을 받는 거 같았죠. 스스로 ‘처신을 바르게 해야 되나’란 생각도 들죠. 변호사님은 윗분들이 “가끔은 사회생활하면서 까칠하게 해라”고 말하지 않나요?

효정 : 저는 서른이 돼서 오히려 좋은 게, 어디 가든 당당할 수 있어요. 20대 땐 의뢰인을 만났을 때도 처음에 의뢰인이 저를 보고 ‘어라? 이 변호사 몇살이야? 여자는 좀…’ 이런 느낌을 받았죠. 사람이 능력으로 평가받아야 하는데 그게 아닌 거죠. 그래서 오히려 일할 땐 서른이라고 하고 다녔어요. 오히려 나이를 올린 거죠. 법무법인 선배들도 “(좀더 어른스러워 보이도록) 클라이언트가 봤을 때 말도 좀더 똑 부러지게 하라”고 시켜요.

성운 : 저도 변호사님과 동질감을 느껴요. 저도 잘 웃는 편이거든요. 그게 업무 수행할 땐 단점일 때도 있어요. 단호하게 말해야 할 때가 있죠. 전 회사에서도 윗분들이 “야, 까칠하게 해”라는 말씀 종종 했어요.

효정 : 그래서 제게 어려 보이는 건 일할 땐 장점이 아니었죠. 선배들도 “옷도 나이 들게 입어라”는 말씀을 하셨죠.

재민 : 전 서른 됐을 때 생일잔치 안 한 거 말고는 크게 다른 걸 못 느꼈는데…. 주변 친한 친구들 중에도 ‘결혼? 그걸 왜 해?’라는 주의자들이 좀 있죠.

성운 : 여성인 친구들 가운데 자기 분야에서 석사, 박사를 하며 공부를 많이 해도 결혼하고 애 낳으면 다 그만두고 애만 보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의문스러웠죠. 너무 아쉽지 않으냐고 물으면 “뭐 어때?”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그러고 보니 그렇게 답한 친구들 남편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전문직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군요.

재민 : 전 남편 경제력에 기대 사는 건 생각 안 해 봤어요. 자기 경력과 직업을 포기하고 접고 들어가는 게 이해 안 돼요.

상훈 : 전 좀 다른데요. 꼭 엄마일 필요는 없지만, 엄마나 아빠 중 하나는 아이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 그렇다고 여성에게 직업을 관두라는 건 아니고요. 다만, 자아성취형의 직업인이 되라는 거죠. 제 경우 어렸을 적 집에 아무도 없으면 우울했어요.

나무 : 변호사님은 어떠세요? 제가 듣기로 여성 사시 합격자가 많아진 뒤 요새 사법연수원에서 다들 서로 연애한다고 들었습니다.

효정 : 저는 그때 ‘연수원에서는 연애 안 한다’고 생각했죠. 동료로서 잘 지내긴 했는데 그 안에서 연애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결심했죠. 지금 후회해요.(웃음) 특히 연수원에선 여자는 안에서 (남편을) 잡아야지 밖에 나오면 안 된다는 말도 있었어요. 실제로 연수원 남자 동기들은 다 결혼했는데 여성은 안 그래요. 저희 사무실에서도 여성 변호사들은 골드 미스가 많아요. 남자들은 결혼이 쉬운데 여자들은 결혼이 어려워요.

나무 : 왜일까요?

효정 : 저희 사무실에 한 여성 변호사 선배가 계세요. 아이를 기르는데 너무 안돼 보이더군요. 물리적 시간상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없으니까 아이를 친정에 맡겨요. 친정은 지방에 있고요. 일을 포기 못 하니까요. 저도 고민이에요. 일과 가정 중 어느 정도 포기할 수 있으면 아이를 택하는 게 낫다는 생각조차 들더라고요.

나무 : 옛날 소개팅 자리에서나 할 ‘아이템’인데, 각자 첫인상을 돌아가며 말해 볼까요?(다들 웃음)

성운 : 김효정 변호사님은 조용하다가 한방씩 던지는 게 좋으세요. 개그에 대한 리액션이 좋다고 할까요?

효정 : 의뢰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제 직업상 중요하니까요, 하하.

상훈 : 변호사님은 제가 조심스러워하는 타입이에요. 모든 사람은 화내고 웃고 울고 다양하게 감정을 표현하죠. 그런데 변호사님은 잘 웃으시잖아요? 화난 것도, 우는 것도 웃음으로 표현할 것 같아요. 제가 굉장히 (표정에) 집중을 하게 되는 타입이죠.

나무 : 어쨌든 리액션이 좋다는 말이죠?

효정 : 저도 장기가 있었네요?(웃음)

재민 : 저는 첫인상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보는 편이에요. 까칠한 인상이라고들 해요.

상훈 : 저도 처음 뵀을 땐 차가워 보였는데 대화해 보니 아니네요.(웃음)

재민 : 신상훈씨는 대화를 나누고 보니 조용한데 위트 있게 말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오늘 모인 네 분 모두 직업이랑 다른 면이 있네요. ‘아, 이 사람은 무슨 일 할 것 같다’는 느낌과 첫인상을 주는 분들이 아무도 없네요.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김효정(법무법인 양헌 변호사)
김효정(30·법무법인 양헌 변호사)

대학 땐 열심히 놀았다. 놀이와 취미가 역으로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그의 인생은 “놀아라, 길이 보인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썰렁한 개그에도 사람 좋은 눈웃음과 사이다의 탄산이 터지는 듯한 웃음을 터뜨려 남성 참석자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다.


김재민(요리사)
김재민(31·요리사)

소개팅 섭외 전화를 하자 “다들 주량이 얼마죠?”란 질문을 처음 던질 정도로 술을 사랑하지만, 술보다 일을 더 사랑하는 여자. 미술을 전공했지만 요리에 꽂혀 한식연구가 밑에서 5년간 공부했다. 관심사가 다양해서 지금은 엠비에이 과정에서 푸드 마케팅을 공부한다.


신상훈(딜로이트 컨설팅 비즈니스 애널리스트)
신상훈(32·딜로이트 컨설팅 비즈니스 애널리스트)

다, 나, 까로 끝나는 말투를 처음 들으면 참 반듯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그는 반듯했다. 그러나 반듯함을 한꺼풀 벗기자 의외로 엉뚱한 매력이 튀어올랐다. 한창때 냉면 네 그릇을 한 번에 비웠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엥겔계수가 높다. 작은 일상을 크게 즐기는 다감한 캐릭터의 소유자다.


조성운(갤러리 시에스피 대표)
조성운(30·갤러리 시에스피 대표)

대기업 재무팀에서 4년 동안 일하다 그만두고 갤러리를 차렸다. 지금은 갤러리를 알리고 전시회를 준비하느라 몸이 두개라도 모자란 일상을 보낸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신사적이고 질투심이 날 만큼 배려심이 많은 그에게 소개팅 참석자들은 “유재석 수준으로 사회를 본다”고 평했다.



사랑의 작대기 향방은?

자신을 사랑하는 30대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신년 대담 형식을 소개팅으로 한 데는 음험한 의도도 있었다. 일요일 아침에 주로 방송하는 미혼 남녀를 짝지어 주는 방송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되어 보고 싶은 욕망이 조금 있었다. 섭외하기도 전에 ‘사랑의 작대기 길이는 몇 센티가 적당할까?’라거나 ‘둘만의 1분 데이트 기회는 언제 줄까?’ 등 고민에 빠졌다.

웬걸, 섭외부터 쉽지 않았다.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만의 취향이 있으면서 이성친구가 없는 30대 직장인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연애의 시대에 품절되지 않은 30대 훈남훈녀를 찾는 일은 어려웠다. esc 모든 팀원이 각자의 인맥을 뒤졌다. 이날 참석한 4명은 ‘연애 시장’에 재입고된 흔치 않은 우량 상품이다.

esc가 처음 시도하는 소개팅이라 주최자가 더 떨렸다. 하지만 긴장은 오래가지 않았다. 조성운 대표는 타인을 배려하면서 대화를 선도하는 ‘유재석 스타일’ 사회자임이 드러났다. 신상훈씨는 다른 참석자의 말을 경청하면서 그때그때 개그와 진지한 답변을 섞어 던지는 ‘대화의 달인’이었다. 김효정 변호사는 ‘리액션의 달인’이었다. 눈웃음과 청량한 웃음은 그 자체로 분위기를 띄웠다. 첫 5분 마음의 벽을 무너뜨린 건 김재민 요리사였다. “폭탄주로 시작하죠”란 한마디에 다들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자존감이 단단한 남자를 좋아한다는 그는, 거침없는 웃음과 달리 스스로 단단해 보였다.

세 시간의 방담은 인터뷰가 아니라 진짜 소개팅 자리처럼 즐거웠다. 왜일까? 넷 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줬다. 삼십대를 즐기는 방법은 좀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기자가 결론 내렸다면 과장일까? 그 공감의 기쁨이 커서 누가 커플이 될지는 돌아오는 지하철에서야 자문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