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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1.13 21:56 수정 : 2010.01.13 22:06

옛날 잡지를 보러 갔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70~80년대 십대들의 영양제 만화·청소년·대중문화 월간지
만화잡지 대명사 <보물섬> 10만원 호가





그 무렵의 10대들은 잡지와 함께 자랐다. 인터넷이 미처 이 땅에 도착하지 않았던 80년대 이야기다. 당시의 청소년들에게는 새 월간지가 서점에 깔리던 매월 25일이 바로 약속의 날이었다. 지난 잡지를 달달 외울 정도로 복습하며 하루빨리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초등학생들은 ‘아기공룡 둘리’의 <보물섬>과 ‘20세기 기사단’의 <새소년>을, 2차 성징이 시작된 중학생들은 피비 케이츠와 소피 마르소의 화보가 실렸다는 <스크린>과 듀란듀란 오빠들의 브로마이드가 부록으로 딸려 나온다는 <하이틴>, <주니어>를 학수고대했다. 또래보다 조숙한 남자애들은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선데이 서울>이나 <핫윈드> 같은 잡지들을 숨겨놓기도 했다.

사뭇 진지해질 나이가 되자 본격 대중문화 전문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로드쇼>의 ‘컬트영화 걸작선’, 또는 <핫뮤직>의 ‘아트록 명반 30선’과 같은 기사들을 마치 암기과목 공부하듯 한자 한자 꼼꼼히 읽었다. 비디오나 수입 시디로도 미지의 영화와 음악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 목마른 마니아들은 그렇게 영화를 읽고 음악을 읽었다. 잡지는 지금의 30~40대들에게 친구이자 연인이었고, 선생님이자 멀티미디어였다.

과거의 잡지들이 지녔던 이 모든 효용은 어느덧 인터넷의 몫이 되었다. 이제 브로마이드를 벽에 붙이는 대신 고화질의 스타 사진을 내려받아 컴퓨터 바탕화면을 장식하면 되고, 잡지 기사를 오려 스크랩하는 수고를 들일 필요 없이 인터넷 기사를 자신의 블로그에 퍼 나르기만 하면 그만이다. 좋은 영화와 음악, 만화에 대한 정보는 지천에 널려 있다. 그리고 하나의 기사를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기에는 소화해야 할 정보의 양이 너무도 많다.

기다리는 재미, 아껴 읽는 재미


이러한 시대에 옛날 잡지의 매력을 다시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먼저, 70~80년대 소년소녀 잡지·만화 애호가들의 네이버 커뮤니티 ‘클로버문고의 향수’를 운영하고 있는 임재헌씨는 ‘추억의 공유’를 꼽는다. 어린 시절 <소년중앙>의 열렬한 애독자였다는 임씨는 “좋아하는 잡지를 며칠씩 끼고 조금씩 아껴 보던 기억을 회원 모두가 가지고 있고, 그 기억들이 동호회의 바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거 만화잡지의 대명사였던 <보물섬>은 권당 10만원을 넘는 고가에 거래될 만큼, 추억을 나눌 만한 옛날 잡지들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까운 것이 현실. 소장자를 찾아 양해를 구하고 복사본을 얻을 수만 있어도 행운이다.

이렇게 점점 사라져가는 추억의 단서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이 커뮤니티에서는 작년 11월 <클로버문고의 향수>라는 이름의 도록집을 정식 출간하기도 했다. 클로버문고는 70~80년대의 소년잡지 <새소년>의 문고판 브랜드다. “어린이 교양지부터 만화잡지, 음악·영화 전문지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잡지들은 대개 자신들의 전문 분야를 확실히 내세워 왔다. 그리고 그 울타리 속에서 잡지를 사랑하는 이들은 독자로서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다. 인터넷 문화에서는 자신이 정보를 찾아서 손쉽게 취사선택할 수 있지만 그러한 자부심이나 애착을 느낄 기회는 거의 없다. 쉽게 찾는 인터넷 기사보다는 한권에 담긴 한달의 이야기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임재헌씨의 말이다.

출판기획사 코믹팝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자 만화 칼럼니스트인 선정우씨는 옛날 잡지가 지닌 독보적인 콘텐츠들이 인터넷 시대에 더욱 가치를 발한다고 말한다. ‘너무 많아서 어림짐작으로 추산할 수밖에 없다’는 그의 소장 자료 중 잡지만 대략 5000여권. 본격적인 수집은 8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 “순정만화지 <르네상스> 창간호를 시작으로 잡지를 사 모으기 시작했더니 3~4년 만에 몇백권으로 늘어나 있더라. 당시에는 부담스러웠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제대로 모아서 나중에 박물관 하나 차리자고.(웃음)” 그러나 이렇게 모은 잡지들은 단순히 박물관의 유물에 머무르지 않고 곧 현실적인 힘을 발휘했다. “피시(PC)통신 시절부터 온라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이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을, 나는 곧바로 모아놓은 잡지들에서 정확한 팩트를 확인하여 차별성 있는 글을 쓸 수 있었다.”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고 해도 그 바다의 기원은 고작해야 90년대 중반. 특히나 지식 데이터베이스가 취약한 한국 인터넷의 현실을 고려할 때, 옛날 잡지들은 그 이전 시대의 정보 창고였던 셈이다.

대체 불가능한 종이 잡지의 매력

장차 자신이 소장한 잡지 자료들을 바탕으로 디지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공개하겠다는 선정우씨는 아직까지 종이 잡지의 힘을 믿는 사람 중 하나다. “책을 비디오나 엘피(LP)처럼 단명한 매체와 비교하면 안 된다. 비디오, 엘피는 세상에 나온 지 100년도 안 되었지만 종이책의 역사는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세월 동안 책은 사람이 휴대하면서 읽기 좋게 최적화되어 왔다. 사람들이 그 느낌을 쉽게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옛날 잡지들, 이것만은 꼭 있었다

◎ 소년잡지 : 계절감각 뚜렷한 명랑만화 | 신정(5공 초기에는 양력설을 쇠었다)이면 떡국 많이 먹기에 도전. 식목일에는 나무 심고, 여름철에는 어김없이 대천 해수욕장이었다. 가을이면 낙엽과 함께 고구마도 태웠으며 겨울에는 바둑이와 함께 눈싸움. 월령 따라 진행되는 명랑만화의 레퍼토리는 해마다 고스란히 반복되었지만 매달 설레며 기다렸다 낄낄대곤 했다.

◎ 연예잡지 : 아날로그 광고 | ‘뉴 키즈 온 더 블록 공식 팬클럽 모집’이라고 떡하니 잡지에 실린 광고들은 오늘날의 인터넷 팬카페들이 범접하기 힘든 권위와 아우라를 품고 있었다. 게다가 입회비도 웬만한 중고생들의 한 달 용돈에 육박했다. ‘이틀 안에 원하시는 분과 맺어드립니다’던 펜팔 광고는 또 어떤가. 여성들은 그냥 신청서만 보내면 되지만 남자는 필히 우표 9장을 동봉해야 했다.

◎ 음악·영화잡지 : 독자엽서 | 구구절절한 사연과 글솜씨만으로는 안 된다. 평소 수업시간 공책 뒷면을 통해 연마했던 만화 베끼기 신공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잡지 독자엽서란에 명함이나마 내밀 수 있었다. 채택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전교에 자랑거리. ‘소정의 선물’로 제공된 3개월 잡지 정기구독권은 덤이었다.

◎ 주간지 : 깔깔유머 | 80년대의 참새 시리즈, 90년대의 최불암/만득이 시리즈 등 당대를 풍미했던 유머 트렌드를 업데이트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최신 주간지들을 뒤적여야 했다. 잡지 시장이 축소되고 잡지들이 유머를 다루지 않으면서 더 이상 사람들도 ‘웃기는 이야기 하나 해 줄까?’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글 조민준 객원기자 zilch92@gmail.com·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표지디자인 이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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