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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타현 묘코시 아카칸 스키장의 중턱에 자리잡은 아카쿠라 관광호텔 노천탕. 입욕객들이 눈보라 치는 슬로프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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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명품쌀·사케·온천으로 유명한 니가타
스키보다 더 푸짐한 ‘애프터 스키’ 메뉴들
일본 스키 여행에선 스키의 재미를 드높여주는 즐길 거리가 푸짐하게 따라붙는다. 신선한 자연설에서 속도전을 즐긴 뒤 맛보는 뜨거운 온천욕, 맛깔스런 정찬(가이세키)과 식사에 곁들인 일본식 청주(사케) 몇 잔, 이른바 ‘애프터 스키’다. 니가타현은 온천의 고장이자 명품쌀 고시히카리 생산지이면서, 순하고 담백한 맛의 청주 생산지로 이름 높다. 어느 스키장을 찾더라도 한자리에서 밥맛, 술맛, 뜨거운 맛을 두루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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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코 지역의 전골 기노코나베. 버섯·배추·두부와 메밀가루 반죽을 떼어 넣어 익혀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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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천탕에서 감상하는 폭설 속 산줄기 - 온천
스키를 탄 뒤 빼어난 경관을 굽어보며 온천욕을 즐기기엔 묘코고원 아카칸 스키장 중턱에 자리한 아카쿠라 관광호텔 대온천탕이 제격이다. 해발 1500m인 리프트 정상과 750m인 스키베이스 중간, 해발 1000m 지점에 들어앉은 호텔 별관 온천탕이다. 지난달 개장한 깨끗한 대온천탕이다. 실내 온천탕에 앉으면 대형 유리창을 통해 펼쳐지는, 눈 맞는 삼나무숲 등 바깥 풍경이 아늑하게 다가온다. 욕실에 딸린 노천탕에서의 풍경은 말할 나위 없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채 내려다보는 폭설 속의 광활한 산줄기와 슬로프는 환상적이다. 향 짙은 삼나무로 치장한 사우나도 딸려 있다. 본관 전시실에선 70년 전 스키장 풍경과 당시 방문객들이 남긴 흑백사진들을 감상할 수 있다.
온천의 수질을 따지자면 단연 도카마치의 마쓰노야마 온천이다. 효고현의 아리마 온천, 군마현의 구사쓰 온천과 함께 ‘일본 3대 약탕’으로 꼽히는 염천이다. 화산지대 온천이 아니다. 오랜 세월 땅속에 짠 바닷물이 스며들어 고여 있다가 용출되는 간헐천이다. 마을에서 바다까지는 40㎞ 거리. 해발 350m 지점이다. 1896년 문 열어 4대째 운영중인 지토세온천여관의 주인 야나기 야스지는 “지금 솟는 바닷물은 1000만년 전 이곳이 바다였을 때 갇혀 있던 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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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케는 섭씨 17~20도 상태가 가장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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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치료에 특효가 있다는 이 온천 원탕은 다카노유라는 이름으로도 일컬어진다. ‘다카’는 매를 뜻한다. 700년 전, 날개를 다친 매가 날아와 늘 같은 자리에 앉아 물에 날개를 적시는 것을 보고 이 온천을 발견했다고 한다. 실개천이 흐르는 길옆에 원탕이 있고, 여기서 솟는 온천수를 아홉개의 여관에서 나눠 쓴다. 용출 온도는 무려 섭씨 97도. 이를 식혀서 욕조에 넣는다. 노천탕에 몸을 담그면, 물을 맛보지 않더라도 바닷물과 같다는 걸 금세 느낄 수 있다. 몸도 가볍고 마음도 가벼워진다. 마쓰노야마는 ‘일본인의 고향 100선’에 선정된 작고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계단식 논과 미인림이라 하는 너도밤나무숲이 시골 마을의 정취를 돋워주는 곳이다.
유자와마치의 에치고유자와역 주변엔 전통온천 거리가 형성돼 있다. 거품탕·노천탕·사우나를 갖춘 공동욕탕 5개가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을 집필하며 즐겼다는 야마노유, <설국>의 여주인공 이름을 딴 고마코노유도 있다. 에치고유자와역 앞엔 누구나 들러 발을 담글 수 있는 족탕이 있다.
여관에 딸린 온천에선 매일 시간을 정해 남탕과 여탕을 바꾸는 곳이 많다. 묘코시의 온천 소믈리에 도모마 가즈히로(44)는 “한 손님에게 두 스타일의 욕탕 체험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며 “아침저녁으로 달라지므로 조심하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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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치고유자와역 부근의 노천 족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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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맛 없고 반찬 없어도 밥맛 나는 고시히카리 쌀밥 - 먹을거리
니가타현은 일본에서 대표적인 쌀 생산지다. 밥맛 좋기로 이름난 고시히카리가 니가타 특산 품종이다. 대부분의 여관들에서 고시히카리로 지은 쌀밥을 낸다. 고시히카리란 밥의 찰기(고시)와 윤기(히카리)를 뜻한다. 이름난 만큼이나 밥맛이 정말 좋다. 니가타에 머무는 동안 밥맛 덕에 식사를 거르는 일이 없었을 정도다. 값은 생각보다 비싸다. 1등품이 2㎏에 1800엔(약 2만2000원)이니, 국내 보통 쌀의 두세 배 가격이다. 그래도 불티나게 팔려 쌀이 모자랄 지경이라고 한다. 고시히카리 중에서도 우오누마에서 생산한 것을 최고로 친다. 찰기와 윤기가 더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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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치고유자와역 혼슈칸의 사케 자동판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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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손님에게 고시히카리를 구해 대접하는 걸 기본 예의로 친다. 여관에서 정찬으로 내는 ‘가이세키’ 요리에도, 돈가스를 간장조림한 뒤 밥에 얹고 간장을 뿌려 내는 니가타식 타레가스돈덮밥에도 고시히카리 밥을 곁들여야 최고로 친다. 들일할 때 새참으로 먹던, 김으로 싼 주먹밥을 재현한 이른바 폭탄주먹밥도, 쑥과 쌀로 만든 떡을 조릿대 잎에 싸서 내는 조릿대경단(사사단고)도 마찬가지다.
해산물로는 방어·대게·분홍새우·연어가 유명하다. 말린 연어를 썰어 술에 절여 부드럽게 만든 연어포는 전통적인 술안주다. 니가타 지역은 일본에서 최고의 폭설지로 꼽힌다. 눈이 많은 만큼 음식도 겨울나기에 요긴한 저장식이 발달했다. 버섯·참마·메밀국수(소바) 등이 유명하다. 메밀국수엔 후노리라는 해초를 섞어 넣어 면을 뽑는다. 도카마치에서 맛볼 수 있는 다나다나베는 이 지역의 계단식 논(다나다)에서 난 쌀로 만든 누룽지와 버섯을 곁들여 내는 전골. 가구라난반(매콤한 피망)을 쌀과 발효시켜 만든 소스(시오노코)를 넣어 먹는다. 묘코 지역엔 두부·버섯·배추와 메밀가루를 반죽해 떼어 넣어 익혀 먹는 기노코나베도 있다. 국물 맛이 좋다. 갓 만들어낸 두부를 공처럼 둥글게 떠낸 오보로도후(두부)도 묘코 지역 명물이다. 제삿날 친척들이 모이면 된장국에 오보로도후를 넣어 먹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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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할 때 새참으로 먹었던 ‘폭탄주먹밥’. 밥에 연어나 명란 등을 넣고 김으로 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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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처럼 순하고 담백한 맛 - 니가타 청주(사케)
니가타는 일본 청주(사케)의 본고장이다. 96개 양조업체에서 1000여종에 가까운 사케 브랜드를 만들어낸다. 종류가 많은 만큼 맛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알코올 도수는 대개 14~17도다. 모처럼의 일본 여행길에, 아무 사케나 덥석 사 맛볼 수는 없는 일. 들러볼 만한 곳이 신칸센 에치고유자와역 안에 있다. 사케 체험장 혼슈칸이다. 니가타의 96개 양조회사가 각각 내놓은 대표 사케들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시음코너에서 500엔을 내면 바꿔주는 코인 다섯개로, 자동판매기에서 다섯가지 사케를 골라 마셔볼 수 있다. 입맛에 맞는 사케를 판매코너에서 구입하면 된다. 시음코너 구석에 ‘전달의 인기 사케 순위’가 걸려 있다. 지난 12월의 경우 구보타가 1위, 고시노간바이가 2위, 고시노우메뉴가 3위, 핫카이산이 4위를 차지했다.
니가타시에선 해마다 스키철인 3월 둘쨋주 토·일요일 ‘사케노진’이라는 술박람회를 연다. 사케로 진을 친다는 뜻이다. 2000엔을 내고 시음용 잔 하나를 받아들고 들어가면, 니가타현에서 나온 수백종의 사케를 마음대로 맛볼 수 있다. 한잔 두잔 맛보면서 대취하는 이들이 많다. 이틀이면 어지간한 사케는 다 맛볼 수 있다지만, 조심해야 한다. 종종 앰뷸런스에 실려나가는 경우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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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히카리 포장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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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타 여행쪽지
2월까지 한국인 특별 우대
◎ 나리타공항에서 JR전철 나리타 익스프레스로 도쿄역까지 50분(승차권·특급권 2940엔). 도쿄역에서 JR전철 조에쓰 신칸센 타고 에치고유자와역까지 1시간17분(5980엔). 대한항공은 인천공항~니가타공항 비행편을 매일 1편씩 왕복 운항한다. 인천에서 저녁 6시 출발, 니가타에서 아침 9시30분 출발. 2시간 걸림.
◎ 니가타현 도카마치 마쓰야마 온천마을에선 방문객들 대상 전통문화 체험행사를 벌인다. 너도밤나무 숯 만들기, 전통 도롱이 차림에 눈신발(간지키·일종의 설피)로 눈길 산책하기, 전통 화로 체험, 버섯 채취 등. 2200엔.
◎ 니가타현에서는 2월28일까지 스키장·숙박시설·온천·식당·주점 등과 연계해 한국인 여행자에게 각종 혜택을 주는 행사를 진행중이다. 예컨대 가맹 호텔에 숙박하는 손님에게 스키장 리프트 교환권이나 식당 이용권, 명품 사케 할인권 등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레드캡투어·모두투어·브라보재팬 등 10개 여행사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문의 니가타현(www.niigata.or.kr) 서울사무소 (02)773-3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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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하고 담백한 게 니가타 사케의 제맛”
사케 소믈리에 이구치 도모히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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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케 소믈리에 이구치 도모히로가 여러가지 사케를 잔에 따르며 맛과 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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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타현 에치고유자와의 후타바 온천호텔 식당. 사케 소믈리에 경력 7년의 이구치 도모히로(37)를 만났다. 그가 니가타의 유명 브랜드 핫카이산, 유자와지역의 술인 조젠미즈노고토시, 그리고 마키하타 세 종의 술을 각각 잔에 따르며 말했다.
“사케는 기본적으로 단맛과 쌉쌀한 맛, 강한 향과 약한 향으로 나뉜다. 네 가지가 결합해 다양한 맛과 향의 사케가 나온다.” 와인 분류와 비슷하다. 그는 “니가타 사케는 다른 지역 술에 비해 맛과 향이 밋밋할 만큼 순하고 담백한 게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겐 이런 분류보다 ‘준마이’니 ‘다이긴조’니 하는 재료 및 정미 정도에 따라 나뉘는 분류법이 익숙하다. 준마이는 순미, 즉 쌀과 누룩·물로만 만들었다는 뜻이다. 보통 혼조슈는 향을 강화하기 위해 주조용 알코올을 섞는다. 긴조는 쌀을 정미할 때 40%를 깎아낸 것을 가리킨다. 그는 “거친 껍질 부분을 깎아내고 순 탄수화물만으로 담근 술을 알아준다”고 말했다. 50%를 깎아낸 것이 다이긴조다. 일부 주조회사는 70%를 깎아낸 쌀로 담가 ‘초특산품’이란 이름으로 고가의 사케를 내놓기도 한다. 준마이 다이긴조, 준마이 긴조, 준마이, 혼조슈 등으로 나뉘는 술의 등급이 이래서 나온다.
술병 색깔을 보고도 술의 등급을 알 수 있다. 대체로 싼 술은 투명한 병에, 고급 술은 어두운 빛깔의 병에 담는다. 자외선을 차단해 숙성이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긴조급 사케는 초록색 병을, 다이긴조는 검은색 병을 주로 쓴다. 도모히로는 “사케는 보통 한달간 발효시켜 1년 정도 숙성시키는데, 완성된 즉시 마실 때 가장 맛이 좋다”며 “그 이상 숙성되면 맛이 바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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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를 깎아낸(30%만 남은) 양조용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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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술의 재료인 쌀이다. 50~70%까지 깎아낼 수 있을 만큼 강도를 지닌 쌀이 필요하다.”
니가타는 밥맛 좋은 고시히카리 쌀이 유명하지만, 술을 담그는 덴 쓰지 않는다. 양조용 쌀은 간사이 지역에서 생산된 야마다니시키 품종을 주로 쓴다. 최근엔 니가타에서 고시탄네이란 양조용 쌀을 개발해 쓰고 사용을 확대하고 있다.
도모히로는 “사케는 보통 17~20도의 상온으로 마시는 게 가장 맛있다”고 말했다. 데워 마실 땐 42도 정도가 알맞다. 그는 “향이 순한 것은 상온으로, 맛과 향이 강한 것은 데워 마실 때 제맛이 난다”고 조언했다. 복어 지느러미를 구워 곁들이는 이른바 히레사케에 대해 그는 “맛의 변화를 위해 재미로 시작된 음주법이지, 일본 전통 방식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케의 맛과 품질을 분석하고, 고객 취향에 따라 추천해주는 일을 하는 사케 소믈리에는 니가타현에만 5000여명이 활동중이다.
니가타=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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