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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1.27 21:06 수정 : 2010.01.30 11:12

일러스트 박혜원

[매거진 esc] 하이스코트 킹덤과 함께하는 영업맨 사연 공모전

그러니까 27년 전의 일이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무지가 용기”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글쎄 갓 스물 된 처녀가 유곽, 즉 집창촌에 가방 한가득 물건(?)을 넣고 들어가 팔려고 했으니 말이다. 나는 농촌봉사활동을 가기 위해 단기간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별다른 재주도, 기술도 없었던 나는 한 화장품회사(지금은 망했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들 목욕용품 전문회사)의 아르바이트 영업사원으로 들어갔다.

낡은 건물의 3층 사무실, 여성용품 회사인데도 여성은 한명도 보이지 않고 과장인지 팀장인지 모를 남자는 상품에 대해 그저 “샤워용품”이라고만 말했고 판매하는 수만큼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농활 떠나기 일주일 전에 다 팔 요량으로 물건을 한가득 가방에 넣고 집으로 돌아와 가까운 가족과 친척, 친구들에게 강매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샤워 시설도 흔치 않았고 문화도 활발하지 않은 때여서 여성의 몸 중 어느 부분을 청결하게 보호하는 것에 대해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때였다. 물건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고 불과 몇 분도 되지 않아 이모, 고모, 사촌 언니 모두 내 가슴을 떠밀며 얼굴을 붉히기 일쑤였다.

이런 판국이다 보니 겨우 몇 개 물건을 강매하고 나니 힘도 빠지고 의욕도 상실해, 나는 이러다 농활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들었다. 한참 고심하던 중 이 물건이 필요한 사람에게 파는 게 가장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번쩍 일어났다. 나는 한달음에 또래 남학생들이 우리 몰래 쉬쉬하며 떠들어대던 유곽으로 달려갔다.

여름 정적만 흐르던 한낮이었다. 동네 개만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그 골목, 문패가 아니라 ‘○○호’라고 숫자만 적혀 있는 점포에 나는 깊은숨을 몰아쉬고 들어갔다. 낮잠을 자다가 깼는지 부스스한 얼굴의 여자들이 내가 내놓은 물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만 집중한 채 웃는지 우는지 모를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입에 침을 튀겨가며 한참을 설명했는데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자가 물건 하나를 집어들며 “한번 써보지 뭐”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돈을 꺼내 주며 “옆집, 앞집 다 가봐. 지금 시각이 지나면 팔기 힘드니까. 우리 이제 영업 준비해야 하거든”이라고 말했다.

그 언니 옆에 있던 아가씨 서너명도 물건을 샀다. 그 언니의 말대로 나는 앞집, 뒷집, 옆 점포까지 모조리 다 들렀고 거의 20개를 단번에 팔았다. 물량이 다 떨어진 나는 이튿날 물건을 갖다주겠다며 예약까지 받았다. 이튿날 물건을 더 가지러 올라갔더니 팀장은 눈이 동그래져 “어떻게 다 팔았느냐”며 놀랐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며칠 동안 그 유곽을 드나들며 물건을 다 팔았고 농활을 두번 다녀올 수 있는 용돈을 벌었다. 돈을 받고 쾌재를 부르며 떠나던 나를 보고 팀장은 “영업사원으로 일해 볼 생각 있으면 언제든 오라”고 했다. 그때 내가 팔았던 상품은 바로 여성용 청결제였다. 향기도 나고 느낌도 좋은 청결제를 흔쾌해 사주었던 그때 그곳의 언니들을 생각해본다. 영업우먼으로서 절호의 기회였던 셈인데 다소 아까운 기회를 놓친 것 같다.

이순이/대구 서구 내당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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