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융단 사이로 바다 내음 극치

안좌도 소곡리 두리마을 앞바다 갯벌. 멀리 보이는, ‘천사의 다리’ 너머로 광활한 감태밭이 펼쳐진다.

[매거진 esc]
건강식 감태 채취 무르익은 전남 신안 안좌도
고인돌 등 선사유적과 김환기 생가 볼거리

새벽 배 타고 초록 융단 사이를 달린다. ‘천사의 다리’ 지나 질퍽이는 갯골로 파고든다. 무릎까지 빠져드는 한없이 부드러운 갯벌. 자지러지며 철새들을 띄우는 갯벌도, 바삐 움직이는 아낙네 손길도 온통 초록빛이다. 푸른 융단 한자락 들출 때마다 물씬 풍겨오는 초록 바다 내음의 극치. 상큼한 향기와 부드러운 질감으로 입맛을 돋워주는 감태(가시파래) 채취 현장이다.

전남 신안군 안좌도 소곡리 앞 광활한 갯벌은 한겨울에도 초록빛이다. 마을과 앞바다의 두 섬, 박지도·반월도를 잇는, 1.5㎞에 이르는 ‘천사의 다리’ 주변 갯벌이 푸른 융단으로 덮였다. 해마다 12월부터 이듬해 3월 중순까지 약 150㏊ 넓이의 갯벌에서 감태 채취가 이뤄진다.

“파랗게 깔렸다고 다 채취하는 것이 아니락게. 우게 보드런 부분, 끝에 치만 살짝 채취허는 것이요. 밑엣것은 뻐셔서(억세서) 못쓰지라.”(채취 어민 김성갑씨·57) 물감태(생감태)로 쓸 것은 부드러운 윗부분만을, 말려 저장할 것은 조금 더 아랫부분까지 채취한다고 한다.

말린 감태. 왼쪽이 햇빛에 자연건조시킨 감태김, 오른쪽은 건조기에서 말린 무침용 감태다.

1990년대 중반 염산 과다 사용으로 자취 감춰

감태로 더 많이 알려진 가시파래는 갈파래과에 속하는 녹조식물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 주변 갯벌에서 잘 자란다. 장흥·완도·무안·태안 등 서남해안의 오염되지 않은 청정 갯벌에서 많이 나는데, 맛이 달고 향이 뛰어나 감태·감태지로 부르는 곳이 많다.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에서 나는 다시마과의 갈조류 감태와 혼동하기도 한다. 또다른 겨울 별미 해조류인 매생이에 비해 올이 굵고, 향은 한결 짙으면서 밝은 초록빛을 띤다. 일본인들이 좋아해 예전엔 거의 전량을 일본으로 수출했지만, 요즘은 김처럼 얇게 말리거나 무쳐서 먹는 밑반찬으로 인기를 끌며 국내 소비가 크게 늘고 있다.

겨울이면 소곡리 두리마을 어촌계 주민 11명이, 가시파래 채취가 허가된 약 150㏊ 넓이의 갯벌을 오가며 1인당 하루 평균 80~100㎏씩을 채취한다. 예년엔 하루 150㎏ 안팎 채취가 보통이었지만, 올해는 추운 날이 많아 채취량이 줄었다. 90년대 중반엔 7~8년간 감태가 거의 자취를 감췄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김 양식장에서 김발에 파래가 붙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한 다량의 염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염산 단속이 강화되면서 감태가 살아났다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엔 이상기온으로 중국 연안에서 대량으로 번식한 감태가 서해안으로 밀려들어 해수욕장 관리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배를 타고 나가 감태를 채취하는 소곡리 주민 손덕순(52)씨.

채취한 감태는 현장에서 바닷물로 씻은 뒤 싣고 와 다시 깨끗한 민물로 세척한다. 물감태로 포장해 냉동보관하거나, 마을의 영어조합법인에서 운영하는 감태공장에서 건조시킨다. 감태김은 발로 얇게 떠 밖에 널어 자연건조시키고, 무침용으로 쓸 감태는 공장의 전기 건조기를 이용해 두툼하게 말린다. 물감태는 싱싱하면서 쌉쌀한 맛이 돌고, 말리면 단맛이 더해진다고 한다.

감태는 주로 조선간장과 참기름·깨에 무쳐 밑반찬으로 먹는다. 밀가루와 섞어 부쳐 먹어도 맛있다. 얇게 말린 감태김은 굽지 않고 그대로 밥을 싸 먹는 게 최고다. 익히면 색깔이 변하고 향기도, 맛도 떨어진다. 김씨는 “옛날 들일할 때 감태 한 양푼을 물을 넉넉히 잡아 무쳐 가지고 나가, 일하다 한 그릇씩 들이켜면 갈증이 싹 가시곤 했다”고 말했다. 시원하고 상큼·달콤한 감태무침은 안좌도 면소재지인 읍동 주변 식당들에서 밑반찬으로 맛볼 수 있다. 감태는 미네랄과 각종 비타민, 섬유질이 풍부한 건강식품이다.

감태가 깔린 갯벌 위로 놓인 ‘천사의 다리’는 안좌도의 명물이다. 박지도·반월도를 잇는 보행용 나무다리를 따라 광활한 갯벌 위를 거니는 맛이 각별하다.

안좌도는 1004개의 섬으로 이뤄진 섬 고장 신안군의 14개 읍·면 중 한 곳이다. 이웃한 팔금도·암태도·자은도와 다리로 연결돼, 일단 섬으로 들면 네 개의 큰 섬을 차량으로 둘러볼 수 있다. 요즘은 갖고 온 자전거를 타고 구석구석 둘러보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안좌도는 안창도와 기좌도를 합친 섬이다. 두 섬 사이 갯벌을 매립하고 안좌도란 이름을 붙였다. 매립지 수로엔 가물치 낚시꾼들이 몰린다.

남근석.

안좌도에선 어딜 가든 마을 어귀에서 수십그루씩 늘어선 팽나무 무리를 만날 수 있다. “겨울 북서풍을 막고 마을의 기운을 보호하기 위해” 가꿔온 300~400년 전통의 방풍림(우실)들이다. 예전 안좌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는, 대리 이장 정인균(52)씨가 팽나무 우실 옆에 우뚝 선 남근석(사진)을 가리켰다.

“요것이 ×바운디, 유래가 깊제라. 쩌그 후동산에 여근 형상의 음바우가 있어갖고, 마을 여자들이 자꼬 바람이 나분게, 요걸 세워 막은 것이요.” 남근석은 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2개가 있다. 후동산 뒤 산두마을엔 여근 모양을 닮은 음샘도 있다.

안좌도엔 선사 유적도 즐비하다. 방월리·신촌리 등에서 50여기의 크고 작은 남방식(바둑판식) 고인돌과 선돌을 만날 수 있다. 대표적인 고인돌 마을이 방월리(저드레미)다. 마을 안 민가 옆에, 성혈(다산신앙 흔적)들이 파인 4기의 고인돌이 있고, 밭 가운데 ‘똥산’이라 하는 빈터에도 10여기의 고인돌 무리가 흩어져 있다. 민가 옆엔 애초 7기의 고인돌이 있어, 칠성바위라 했으나, 3기는 사라졌다. 받침돌이 기울어가는 가장 큰 고인돌 옆에서 김수기(61) 이장이 말했다. “요것이 옛날엔 빤듯했는디 지반이 낮아져갖고 삐딱해져부렀소. 어릴 때 바우 우게 요 구녁들에서 다마치기(구슬치기)하고 놀았제.” 다른 어르신들이 말을 잇는다.

“옛날엔 요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는디, 여 앉아 낚시질도 했답디어.” “낚시했단 얘긴 있을 수 읍는 얘기여. 낚싯줄이 백미터나 되아야는디 말이 되간.” “고러코롬 오래되았다는 야기지. 따지긴.” “요 밑에서 칼도 나오고 그륵도 나왔답디다. 그란께 아주 오래되았지라.” “오래된 건 쩌그 산우게도 있제. 거그 절재굴(절터가 있는 고개의 동굴) 안에따 지팽이를 던지면 고것이 매봉산 자락 밑으로 나온답디다.”

김환기 생가.

김환기기념관 건립 추진중

읍동리 안좌종합고등학교 옆길로 오르면 무덤 뒤 소나무 옆에서 백제시대 석실고분을 볼 수 있다. 봉분 위쪽에 석실 들머리가 뚫려 있다. 안내판도 없이 무성한 잡초 사이에 방치된 모습이다.

안좌도가 자랑하는 인물이 새·달·항아리 등의 그림으로 유명한 서양화가인 수화 김환기(1913~1974)다. 읍동리에 그의 생가가 있다. 읍동리 민가 담벽들도, 읍동선착장 창고도, 어흘리 옛 정미소 건물도 김환기의 그림을 본뜬 벽화들로 장식돼 있다. 안좌도행 배를 탈 때, 목포 북항에서 12시에 출발하는 안좌농협 철부선을 타면 김환기 그림의 복제본들을 감상할 수 있다. 선실 장식도 김 화백의 그림을 소재로 꾸몄다. 안좌도 김환기기념관 건립도 추진되고 있다.

신안 안좌도 여행쪽지

감태맛도 종류별로

◎ 서해안고속도로 타고 끝까지 간다. 목포요금소 지나 직진해 10분쯤 가면 압해대교 입구 지나 목포 북항에 이른다. 북항에서 하루 3번 운항하는 안좌농협카페리호 철부선(6시30분, 12시, 17시 출발)을 타고 안좌도 읍동선착장으로 간다. 읍동에서 나오는 배는 10시30분, 15시30분, 18시10분. 1시간 걸림. 1인 편도 3500원, 승용차 도선료 편도 2만원. 안좌·팔금·암태·자은도를 7대의 공용버스가 구석구석 운행한다. 1000원.

◎ 안좌도 소곡리 두리마을 감태공장(신해영어조합법인) 017- 631-6447. 생감태(물감태) 8㎏(2㎏짜리 4통)에 3만원, 감태김 1톳(100장) 3만원, 말린감태 600~700g 3500원. 면소재지 읍동리에 식당이 몰려 있다. 섬마을음식점(061-262-2626·안좌뻘낙지 직판장)의 우럭강국(말린우럭 맑은탕) 4인분 3만5000원, 낙지초무침 4인분 3만5000원. 불고기낙지전골과 청둥오리 요리를 내는 동국식당, 추어탕을 내는 봉숭아식당 등. 읍동리에 유성모텔·정원장 등 여관이 두곳 있다. 3만원.

◎ 안좌농협카페리호 [phone], 안좌면사무소 (061)262- 4050, 신안군 문화관광과 [phone].

안좌도(신안)=글·사진 이병학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