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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산을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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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배가 산으로 가는 오합지졸 여행기 배꼽잡는 에피소드 하이라이트 6
고향 오가는 길은 교통체증으로 고행길이 된 지 오래. 생각만 해도 짜증스럽다. 이번 고향 가는 길엔 이런 걱정 더셔도 되겠다. 답답한 체증을 순식간에 희희낙락, 요절복통 분위기로 반전시킬 특별한 책들이 있으니. 교통체증도, 고된 집안일로 쌓인 스트레스도 한방에 날려줄 재미 만점 여행책 여섯 권을 골랐다. 그중 대표적인 에피소드들을 뽑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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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신의 신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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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 시베리아에서 팥빙수 먹자는겨?
<혼신의 신혼여행> 메가쇼킹 만화가 지음, 애니북스 펴냄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같이 살자고는 했지만 설마 신혼여행 기간 중에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고생을 할 줄은 몰랐을 게다. 메가쇼킹만화가 부부가 신혼여행으로 자전거를 타고 전국일주를 한 이야기를 만화와 사진으로 담은 <혼신의 신혼여행>은 온 가족이 화장실에서 돌려 읽음 직한 ‘똥꼬발랄’한 책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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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신의 신혼여행〉(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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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꼴 배낭여행객에서 노숙자로 신분상승(?)<기발한 세계일주 레이스>
스티브 헬리, 밸리 챈드라새커런 지음, 중앙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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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세계일주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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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젊은 남자가 최고급 스카치위스키를 놓고 내기를 했다. 지구 한 바퀴 돌기, 누가 더 빨리 하나. 결코 비행기를 타지 않고서 말이다. 하버드대학을 나와 방송작가로 일하는 두 남자의 모험담은 가끔 자의식 과잉의 노린내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서 우리 자신의 여행담과 꽤 비슷한 속물적인 구석이 있다. 참고로, 스티브의 첫 여행지는 바로 부산이다.
“베를린에서 이틀을 보낸 후 바르샤바로 가는 야간열차에 올랐다. 나는 컴퓨터 컨설팅 업무를 하는 클라우스라는 폴란드인과 객실을 같이 쓰게 되었다. 그는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객실 문을 걸어 잠그고 속옷 바람으로 아래쪽 침대에 몸을 뻗고 누웠다. 나도 너무 관광객 티를 내지 않으려고 사각팬티만 남기고 옷을 벗었다. 클라우스에게는 분명 뭔가 이상한 데가 있었지만 해를 입힐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범죄 사실이 알려진 후 이웃 사람들이 연쇄살인범을 묘사할 때 자주 쓰는 말이 “약간 이상했지만 해를 입힐 것 같지는 않았다”는 표현이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자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6시30분에 폴란드에 도착했다. 내가 마침내 서방세계를 떠나왔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베를린의 역사가 유리와 금속으로 디자인된 초현대식 사원이었다면 바르샤바의 역사는 콘크리트로 지은 벙커였다. 밖으로 나와도 풍경은 더 나아 보이지 않았다. 콘크리트, 굴뚝, 그을음 얼룩밖에는 보이지 않는 도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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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산으로 가는 오합지졸 여행기 배꼽잡는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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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열차를 타기 전까지 5시간을 때워야 했다. 눈은 흐릿하고 몸은 지치고 심사는 뒤틀린 상태에서 나는 따뜻한 목욕을 하고 몸을 눕힐 수 있는 곳을 찾아 황량한 거리를 따라 걸어 내려갔다.
기차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호텔은 모두 가 보았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는 게 처음에는 몇 백 피트였다가 결국에는 1마일 반이 되고 말았다. 지저분한 차림에 수염도 깎지 않고 누런 배낭을 멘 내 모습을 보고는 찾아간 호텔마다 데스크 직원은 방이 없다고 했다.
“방값을 낼 돈 있어요.” 나는 그들을 안심시키려고 했다. “저는 기자인데 지금 취재중이거든요.” 나는 출판사 편집장이 준 구겨진 소개장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데스크 직원들은 나를 더 이상 지저분한 배낭여행객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대신 이제 나를 뉴욕의 대형 출판사 뒤에 있는 쓰레기 수집함을 뒤지다가 편지를 발견한 정신 나간 노숙자로 보게 되었다.”(206쪽)
콘돔 찾는데 에펠탑 모형은 왜 가져와
<마지막 기회> 더글러스 애덤스, 마크 카워다인 지음, 해나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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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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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더글러스 애덤스가 멸종 위기에 처한 생명체를 탐사한 내용을 담은 논픽션. 여기 소개하는 장면은, 양쯔강 수면 아래의 소리를 담기 위해 임시로 수중마이크를 만들 심산으로 마이크에 덮어씌울 콘돔을 사러 상하이 시내에 나간 대목이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프렌드십 스토어’라는 백화점이었다. 이름을 보아서는 콘돔을 사기에 딱 적당한 곳 같았지만 콘돔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 한참 애를 먹어야만 했다. 이리저리 헤매다 북엔드와 젓가락을 파는 매점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도저히 가망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행히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점원을 만났다.
그 여자에게 원하는 물건에 대해 설명했지만 점원은 금세 단어 실력이 바닥난 듯했다. 나는 노트를 꺼내 콘돔 끝 부분에 달린 작은 꼭지까지 아주 세밀하게 그려 보였다.
점원은 그림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지만 여전히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 여자는 나무 숟가락, 양초, 종이 칼, 그리고 어떻게 해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모르겠지만 도자기로 만든 에펠탑 모형을 가져왔고 마침내 포기했다는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과장된 몸짓으로 마임을 섬세히 연기했고 결국 그 보답이 돌아왔다.
“아! 아, 알았어요!”
“여기 있나요?”
내가 물었다.
“아니요, 없어요. 하지만, 하지만… 나 당신 어디로 가는지 말해요, 오케이? 당신은 난징 616가로 가요. 거기 있어요. ‘고무씌우개’를 달래요. 오케이?”
“고무씌우개요?”
“고무씌우개요. 그렇게 말해요.”
혹시 난징 616가에 매춘굴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약간 의심을 했지만 막상 가 보니 아까보다 좀더 작은 백화점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고무씌우개’라고 하는 우리 발음이 이상해서 사람들은 우리가 찾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헛되이 손만 흔들었다.
이번에는 아까 효과를 보았던 마임 연기로 곧장 들어갔다. 그리고 한 방에 효과가 나타났다. 간소한 머리 모양에 중년을 약간 넘은 듯한 여점원이 서랍이 있는 진열장으로 곧장 행진해 가더니 작은 상자를 하나 꺼내 의기양양하게 우리 앞쪽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마침내 성공했다는 생각에 상자를 열어 보니 기포 포장된 알약이 들어 있었다.
“생각은 좋았는데 상황이 안 따라주는군요.”
한숨을 쉬며 마크가 말했다.
마침내 안경을 쓰고 얼굴이 창백한 젊은 사내가 사람들을 헤치고 나왔다.
“제가 영어를 조금 할 수 있습니다. 뭘 도와드릴까요?”
“고맙습니다. 실은 콘돔, 아니 고무씌우개를 사고 싶습니다. 그걸 좀 저 사람들에게 설명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사내는 당황한 듯 기분이 상한 여점원 앞 카운터에 놓여 있던 상자를 집어들고는 말했다.
“고무씌우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요. 피임약이 더 좋아요.””(263쪽)
너무나 무의미해서 찾아오는 쾌감
<환상의 괴수 무벰베를 찾아라>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미래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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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괴수 무벰베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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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스러울 정도로 심각하다. 일본 와세다 대학 탐험부 학생들이 콩고에 있다는 수수께끼의 괴물 무벰베를 찾아 나섰다. 선진국 먹물들이 유령에 홀려 돈을 날린다는 말이다. 하지만 탐험부 학생들의 이후 행적까지를 모두 읽고 나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의 뜻을 새삼 깨닫게 된다.
“배가 고프다. 거지 생활 이틀밖에 안 됐는데 어째서 이렇게 배가 고픈 걸까. 아침은 악어고기 몇 조각. 식욕을 자극했을 뿐이다. 몸을 움직이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어제 온 비로 캠프는 또 쑥대밭이 됐지만, 그냥 팽개쳐뒀다.
무라카미의 너덜너덜한 돗자리에 끼어들어 보미타바어 문법에 몰두하면서 배고픔을 잊어본다. 상당히 재밌어서 두세 시간 정도는 금방 지난다. 무라카미도 오전 내내 수학 공부를 하고 있다. 역시 그걸로 공복감을 잊으려는 모양이다.
오후 2시부터 나와 무라카미의 감시 활동이 시작됐다. 감시라고 해봤자, 멍하니 호수를 바라보다가 때때로 생각났다는 듯이 망원렌즈를 들여다보는 정도다. 괴수는커녕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가끔 엄청나게 평범한 새가 날아가는 걸 보고, ‘내가 보고 있는 게 시간이 흐르는 풍경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파인더로 잠깐 새의 비행을 쫓아가다가 다시 멍하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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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산으로 가는 오합지졸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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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는 거라는 사실을 나는 텔레호에서 깨달았다. 여기서 날씨는 항상 남동에서 서북으로 옮겨간다. 비구름도 항상 남동쪽에서 일어나고, 미지근한 바람도 그쪽에서 불어온다. 비가 오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호수 수면에는 바람 때문에 잔물결이 일고, 건너편 물가에서 새하얀 안개 같은 것이 “슈-슈-” 하는 으스스한 소리를 내면서 점점 다가온다. 이것이 비다. 오늘은 비가 우리를 엄습하기 직전에 무지개가 떴다. ‘모켈레 무벰베’다. 완벽한 곡선을 그린 선명한 무지개다. 긴박감의 한가운데 이 웅대한 무지개. 멋진 경관이다.
밤, 다시 비가 내린다. 천둥이 치고, 바람이 거칠게 불어댄다. 상황은 점점 참담해진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허무하다. 너무나도 허무하다. 그래도 감시를 계속한다. 번개로 한순간 호수가 빛났을 때, 무벰베가 나올 것 같은 장소를 확인한다. 한순간이다.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너무 무의미한 활동이기 때문에 쾌감마저 느껴진다. ‘보통 사람은 흉내조차 내지 못할걸’ 하고 생각한다. 말하나 마나다.”(160쪽)
아버지가 골랐던 최악의 소풍 장소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횡단기>
빌 브라이슨 지음, 21세기 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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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횡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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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소도시, 혹은 변두리 출신이다. 목동에 해바라기밭이 있던 유년기, 부모는 대개 가난을 겪고 커 돈을 쓸 줄 몰랐고, 우리는 대개 집 근처가 세상의 중심인 줄 알고 성장하다가 성인이 되자마자 ‘구린’ 집 근처를 떠나 서울로, 시내로 떠나버렸다. 부모가 애정을 갖고 정착해 살아온 동네의 매혹을 발견하는 건 너무 늦어서다. 유럽이건 아프리카건 쉬지 않고 돌아다닌 빌 브라이슨이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미국의 ‘완벽한 소도시’를 찾아 길을 나섰다. 웃기고 찡하다.
“아버지의 가장 큰 집착은 경제성이었다. 아버지는 늘 우리를 제일 싸구려 숙소와 자동차 모텔, 그리고 설거지를 일주일에 한 번만 하는 도로변 싸구려 식당에 데려갔다. 다 먹기 전에 언젠가는 접시 어딘가에서 또는 포크 끝에서 누군가 먹던 말라붙은 계란 노른자를 발견하리란 걸 우리는 언제나 운명처럼 예감했다. 이것은 또한 숙소에서 벌어지는 이와의 사투를 뜻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비교적 호사였다. 우리는 대개 도로변 소풍을 강요당했다. 아버지는 나쁜 소풍 장소를 고르는 데 탁월한 본능을 타고났다. 번잡한 트럭 정류소나 공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찢어지게 가난한 빈민가의 한가운데여서 아이들이 몰려와 우리 식탁 옆에 모여 서서 우리가 동글동글한 선이 그려진 컵케이크나 주름진 모양의 감자칩 따위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허다했다. 게다가 우리가 차를 세우기만 하면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해서 어머니는 점심시간 내내 1에이커쯤 되는 넓은 곳을 종횡무진하며 날아다니는 종이접시를 쫓아다니시곤 했다.
1957년, 아버지는 19달러 98센트를 투자해서 휴대용 버너를 하나 샀는데, 이 물건은 매번 사용할 때마다 한 시간씩 걸려 조립해야 하고 버너 아니랄까봐 성질도 불같아서 불을 붙이는 동안 우리 아이들은 멀찍이 서 있어야 했다. 하지만 매번, 멀찍이 서 있을 필요가 결국에는 없었다. 이 버너란 놈이 고작 몇 초 동안 불꽃을 보여주다가 느릿느릿 꺼져버렸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몇 시간이고 버너를 이렇게 저렇게 켰다가 바람을 막아보려 애쓰면서 그와 동시에 대개 만성 정신질환자를 연상시키는 낮은 목소리의 신경질적인 말투로 버너를 불러댔다. 그러는 동안 형과 누나와 나는 제발 에어컨이 나오고 식탁보가 깔려 있고 깨끗한 물에 얼음을 띄워주는 곳으로 가자고 아버지에게 애걸했다. 우린 아버지에게 이렇게 빌었다. “아빠, 아빠는 성공하신 분이잖아요. 돈도 잘 버시고요. 우리 하워드 존슨 호텔로 가요.” 하지만 아버지한테는 통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대공황의 아들이었고 돈이 나갈 것 같으면 방금 멀리서 사냥개 소리를 들은 탈옥수 같은 표정을 지었다.”(21쪽)
왜 벌써 평지가 나온 거야?
<럼두들 등반기>
W. E. 보우먼 지음, 마운틴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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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두들 등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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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행기가 아니다. 럼두들은 가상의 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산악인들과 극지 탐험가들 사이에서 ‘컬트’로 추앙받으며 전설이 된 책이다. 소설만이 할 수 있는 맹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옆구리를 간질인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엎어지면서 깨진 코의 통증을 내 황홀경에 새로 포함시켰다. 나는 고통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전진하고 또 전진했다. 한발 한발 옮김에 따라서 전진하는 일이 점점 더 수월해졌다. 나는 과거에 오른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오르는 자신을 발견하고 짜릿한 쾌감을 맛봤다. 내가 삶과 에너지의 비밀을 밝혀낸 것일까? 우리가 오르는 길이 경사진 길이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 마치 평지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고개를 쳐들고 주위를 둘러봤다. 우리는 평탄한 지형에 올라와 있었다!
나는 몇 걸음 걸어가다 이미 걸음을 멈춘 솔로의 몸에 부딪혔다. 나는 가쁜 호흡을 고르면서 조용히 서 있다가, 어떤 장애물들이 우리를 기다리는지 궁금해서 고개를 쳐들었다.
아무런 장애물도 눈에 띄지 않아 나는 몹시 놀랐다.
우리는 정상에 서 있었다!
이번 등반의 여정에서 나는 두 번째로 내 정신을 의심했다. 럼두들의 높이는 12,000.15미터다. 그런데 내 고도계나 나 자신이 미치지 않은 이상 우리는 현재 10,500미터 지점에 와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이지?
그러다 나는 알았다. 동쪽 저편으로 거대한 산이, 그 산의 번쩍이는 정상이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내 머리 위로 1,500미터나 우뚝 솟아 있었다.
우리는 다른 산을 오른 것이다.”(207쪽)
정리 이다혜/<씨네21>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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