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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불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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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축복’ 빼앗긴 당신에게
대수롭잖게 여기다 수면제도 무용지물
잠자는 시간 외엔 눕지 말고 햇빛 가까이
억지잠 자지 말고 마음 속 원인 해결부터 최경임(62)씨는 5년째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6개월 된 갓난아이를 둔 아들의 이혼 소식을 듣고 나서부터다. 큰 충격이었다. 손자의 양육까지 맡았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루 1~2시간도 채 못 잤다. 짜증만 쌓이고, 만성피로에 시달렸으며, 일상은 피폐해져 갔다. 처음엔 수면제에 의존했으나, 나중에는 이마저도 무용지물이었다. 최씨는 “2년 전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얼마 전까지 침도 맞아봤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몸무게도 5㎏이나 빠졌고, 당뇨까지 온 뒤로는 수차례 자살도 생각했다. 잠이 이렇게 소중한 줄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주부 김선희(36·가명)씨는 남편이 실직한 1년 전부터 불면증을 앓기 시작했다. 김씨의 벌이가 매달 200만원 남짓인 반면 일곱살, 다섯살 자녀의 유치원비, 전세 대출금 상환용으로 150만원이 나간다. 김씨는 “아무리 아껴도 매달 50만원 이상 적자”라며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에 잠을 통 잘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잠 못 이루는 한국인’ 급증 많은 사람들이 ‘불면의 밤’에 노출돼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수면장애 환자가 2001년 5만1000명에서 2008년 22만8000명으로 4.5배나 늘어났다.
수면장애의 원인은 코골이,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약물 투입, 통증 등 다양하다. 문제는 최씨와 김씨처럼 스트레스, 불안, 초조, 근심 등 심리적 요인이 잠자리까지 이어지면서 수면을 방해할 때다. 요즘처럼 졸업과 취업, 인사철 등의 환경 변화와 맞물리면 더욱 심해진다. 배우자와의 사별, 실직, 이혼 등의 급작스러운 충격도 잠을 못 이루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고려대안산병원 호흡기내과 신철 교수는 “환자들 중 90%가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며 “10~20대는 성적과 부모, 20대 후반부터 30대는 취업과 실직, 40대는 직장과 자녀 문제 등이 주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수면제 복용은 금물 불면증은 잠들기 어렵거나, 수면 중 자주 깨거나, 한번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렵거나, 잠이 부족하다는 상태가 단독 또는 복합적으로 느껴질 때를 말한다. 잠자리에서 1시간 이상 잠들지 못해 양을 수천마리씩 세는 일이 1개월 이상 지속되면 불면증을 의심할 수 있다. 불면증 자체가 병이 아니라 증상이라는 인식 탓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많은데, 이는 불면증을 고착화하는 주범이다. 최경임씨는 몸이 불면증에 의해 잠을 못 자는 상황을 습관처럼 받아들이면서 만성 불면증으로까지 이어졌다. 최씨는 잠자리에서 매번 ‘오늘도 잠을 못자는 건 아닐까?’ “꼭 자야 하는데…’ 등을 염려했다. 더 큰 문제는 수면제에만 의존하려는 경향이다. 전문의와 상담하는 비율은 5% 남짓이다. 경희대의대 신경과 신원철 교수는 “수면제를 자주, 오랜 기간 먹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유지하고, 낮에 햇빛을 많이 쐬며 운동을 하는 것이 낫다”고 설명했다. 7~8시간 자는 게 적절 건강을 위해 잠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은 잠을 통해 신체적·정신적 피로를 풀고 재충전한다. 에너지를 보호하고 체온을 조절한다. 뇌와 신경세포의 성숙과 기능을 유지하고 기억을 정리한다. 면역기능을 회복하고 조절하며, 중요 호르몬을 조절한다. 생존에 필요한 주요 단백질의 합성과 분해도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적정 수면 시간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성인은 대체로 7~8시간이다. 중·고등학생은 8시간, 초등학생은 9시간 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잠을 충분히 못 자면, 개인적으로는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져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게 된다. 사회적으로는 산업재해나 교통사고 등 심각한 문제까지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어린이들의 경우 성장과 발육을 지연시키고, 학습장애나 주의력 결핍 등의 증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 신원철 교수는 “하룻밤을 꼬박 새우거나 1주일 동안 4시간 잠을 자면 혈중 알코올 농도 0.1% 상태와 같다”고 설명했다. 마음 먼저 풀어야 2주 전부터 신철 교수의 치료를 받고 있는 최씨는 요즘 하루 5시간 남짓 잠을 잔다. 사실 최씨의 처방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약물 처방과 동시에 스트레스를 없앨 수 있도록 긍정적 사고방식을 갖도록 유도한 것이 주효했다. 실제 전문가들은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불면증을 해결하는 방법은 최씨처럼 마음속의 응어리를 털어내거나 충격을 준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조언한다. 김씨는 남편의 실직상태가 해결되지 않았고 전문적인 치료를 받지 않았는데도 불면증 증상이 개선되고 있다. 잠 못 잔다고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기, 잠자는 시간 외에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 줄이기 등을 실천했다. 잠자기 전 가벼운 스트레칭, 요가, 명상 등 몸과 마음의 긴장도를 떨어뜨려 숙면에 도움을 주는 활동을 병행했던 것이 주효했다. 신원철 교수는 “잠이 안 오는데 굳이 침실에 누워 있을 필요가 없다”며 “독서, 텔레비전 시청 등 다른 일을 하다가 졸릴 때 다시 침실로 들어가는 방법을 반복하는 게 낫다”고 설명했다. 신철 교수도 “불면증 원인을 해결하거나 그것이 쉽지 않다면 원인 자체를 잊어버리거나 포기해야 한다”며 “취미 생활을 하거나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도움말: 신철(고려대안산병원 수면장애센터 교수) 신원철(경희대의대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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