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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2.17 19:42 수정 : 2010.02.19 13:50

호랑이 꿈 꿉시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호랑이 관련 전설·민담 많은 우리나라…호랑이 만나러 떠나 볼까

“호랑이가 얼굴을 찌푸리고 구역질을 하며, 코를 감싸 쥐고 머리를 한쪽으로 돌리면서 말하길 ‘(배웠다는 놈이) 더럽구나. … 내 앞에 가까이 오지 마라. … 너희가 밤낮으로 싸다니며 팔 걷어붙이고 눈 부릅뜨고, 노략질하며 부끄러운 줄 모르고, 심한 놈은 금전을 형으로 모신다. … 그 잔인하고 박한 행실이 너희보다 심한 것이 무엇이 있더냐.”- 박지원 <호질>

인용한 글은 백수의 제왕 호랑이가, 점잖은 척 더러운 짓을 일삼는 도덕군자를 향해 던지는 준엄한 꾸짖음(호질·虎叱)이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가정맹어호). ‘호시탐탐’ 남의 재물을 노리고, 권력에 빌붙어 ‘호가호위’하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자들이 넘치면 백성들은 밤낮으로 이런 속담을 되뇌게 된다. 가혹한 정치가 춤추는 나라엔 백수들도 넘쳐난다. 백수의 왕은 호랑이다. 올해는 호랑이해 중에서도 60년 만에 돌아온다는 백호랑이해다. 눈에 화등잔만한 불을 켜고 백수의 왕이 우리나라를 지켜볼 게 틀림없다.

호랑이 관련 전설·민담 많은 우리나라 호랑이 만나러 떠나 볼까

우리나라는 호랑이의 나라다. 방방곡곡 호랑이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우리 민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물이다. 호랑이 얘기 안 듣고 자란 사람 없고, 호랑이 꿈 한번 안 꾼 사람 드물다. 선사시대인들의 생활 흔적인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 호랑이가 등장한 이래, 숱한 신화·전설·속담·격언과 지명, 상징물, 사람 이름에 이르기까지, 나고 살고 죽는 인생사 이곳저곳에 호랑이 얘기 한자락 걸치지 않은 데가 없을 정도다.

284개 마을 이름에 호랑이가

우리에게 호랑이는 양면성을 가진 존재다. 산의 주인인 산신령이요, 악을 응징하는 구원의 신이며, 친근한 이웃이고, 한없이 어리석은 바보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치명적인 야수이자, 부모를 해친 원수이면서, 포획하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는 사냥감이기도 했다. ‘호랑이 잡고 볼기 맞는다’는 속담은 신앙 대상으로서의 호랑이와 사냥감으로서의 호랑이, 두 속성을 함께 드러낸다.

호랑이가 등장하는 우리나라 전설·민담은 600종을 웃돈다. 육당 최남선은 우리나라를 ‘호랑이 이야기의 나라’(호담국·虎談國)에 비유했다. 호랑이에 주목한 최남선은 일제의 야욕이 극으로 치닫던 1908년 창간한 잡지 <소년>에 호랑이를 등장시켰다. 일본의 지리학자 고토가 한반도를 토끼에 비유한 데 반해, 대륙을 향해 앞발을 들고 일어서 포효하는 호랑이 모습으로 한반도를 그렸다.


땅 모습뿐 아니라 우리나라 구석구석엔 호랑이 상징물이 깔려 있다. 마을 이름, 지형지물 등에서 호랑이와 관련된 지명이 349곳(전체 지명의 0.4%)에 이른다.(국토지리정보원 자료) 지명 중엔 마을 이름이 가장 많아 284개를 차지한다. 호랑이 꼬리의 뜻을 담은 포항 호미곶, 호랑이가 엎드린 형상을 한 안성 금광면 복거리(복호리), 호랑이가 나타나 효자를 도왔다는 전설이 전하는 거제도 호곡마을, 영천의 효지미마을 등이 대표적이다. 영월 주천면 신일리의 의호총처럼, 효자를 도와주고 죽은 호랑이를 장사 지낸 호랑이 무덤도 여러 곳에 있다. 나쁜 호랑이든 착한 호랑이든 호랑이들은 한반도 전역에서 우리 민족과 진하게 어우러져 대대로 살아온 셈이다.

호환으로 한 마을이 풍비박산 난 곳이 있는가 하면,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자 호랑이를 추격해 때려잡은 뒤 뱃속에서 살과 뼈를 수습해 장사 지낸 효자도 있다. 용맹함의 상징으로 그리고 악귀를 쫓는 힘을 가진 신성한 동물로 여겨, 그림 그리고 수놓고, 심지어 글로 써서 붙이기도 했다. 하늘에 기우제를 지낼 때도 강력한 힘을 가진 호랑이를 잡아 그 머리를 제단에 바쳤다고 한다. 무관의 관복 흉배에 그려넣어 용맹성을 강조했고, 대문에 호랑이 그림을 내걸어 잡귀를 쫓는 부적으로도 썼다. 무속인들은 산신령과 동급(또는 대리인)으로 여겨 호랑이를 모시기도 한다. 무섭기만 한 호랑이지만, 민담이나 민화 등에선 대부분 착하거나 어리석고 익살스런 모습으로 그려진다. 두려운 존재인 맹수를 일상생활 속에 녹여넣어 마을과 가족을 지켜주는 든든한 수호신으로 여기고 친숙한 동물로 묘사한다.

화등잔만한 불을 켜고, 밤길 가는 나그네의 심장을 오그라들게 하던 호랑이도, 효자를 등에 태우고 강물을 헤엄치던 호랑이도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췄다. 남한 땅에 야생 호랑이는 없다는 게 정설이다. 예나 지금이나 호랑이나 그 발자국을 봤다는 허다한 목격담은 진행형이다. 끊이지 않는 목격담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 이후 남한에선 호랑이가 발견됐다는 구체적 기록(포획 기록, 사진 촬영 등)이 없다고 한다.

60년 만에 돌아온 백호랑이해

그러나 호랑이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여전히 호랑이와 함께 살고 있다. 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로 아기 호랑이 호돌이를 내걸었고, 60년 만에 백호랑이해를 맞아 호랑이 마케팅 바람이 뜨거운 것도, 우리 곁에 호랑이가 살아숨쉬고 있다는 걸 드러낸다. 고고함, 용맹스러움의 상징동물 호랑이의 해. 우리 모두 새해를 맞아 두루 깨끗하고 용감하고 믿음직스러운, 멋지게 도약하는 한국 호랑이들이 되길 기원해 보자.

호랑이 나라이니, 곳곳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를 간직한 마을들이 널려 있다. 호랑이를 만나러 떠나는 여행을 준비해볼 만하다. 살아 있는 호랑이도 만나보고 호랑이 흔적, 호랑이와 관련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한다. 호랑이 마을 여행 다녀오신 뒤엔, 한번쯤 호랑이 꿈도 꾸고 대박 맞으시길. ^^

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조선민화박물관

재미나는 호랑이 공부

⊙ 호랑이가 개·고양이? | 호랑이는 포유강 개목 고양이과에 속한다.

⊙ 호랑이·범·표범 | 범은 호랑이와 표범을 아울러 일컫는 이름.

⊙ 백호 | 벵골호랑이의 돌연변이 종. 야생종은 멸종. 전세계 사육 마릿수 200여마리. 국내엔 14마리.

⊙ 줄무늬 수 | 몸에 24개 안팎, 꼬리에 8~13개가 있다.

⊙ 힘 | 앞발 한 방의 순간적 힘은 800㎏ 위력. 도약거리 5~7m, 높이 2m를 뛴다.

⊙ 시력 | 낮엔 사람과 비슷, 밤엔 식별능력이 사람의 6배.

⊙ 짝짓기 | 발정기간 일주일 정도. 교미는 1회 30초, 하루에 20~30회나 한다(주변 경계 습성 때문).

⊙ 수명 | 야생상태 10년 안팎, 사육상태에선 20~25년.

⊙ 멸종위기 | 1900년대 초 10만마리-1950년대 2만5000마리-현재 4800~7000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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