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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2.24 20:14 수정 : 2010.02.25 08:06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카트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스포츠카 입문용’ 레이싱카트 체험… 그 작은 탈것에서 상상 이상의 스피드가

내연기관은 발의 확장이다. 그 확장된 발 없이 도시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달 19일 오전 8시30분 마포구에 있는 집 현관을 나섰다. 영하 1~2℃의 바람은 차가웠다. 5분 뒤 항상 타는 9번 마을버스가 왔다. 스물이 넘는 사람을 태운 디젤 엔진의 떨림이 발밑에서 느껴졌다. 9m 길이의 마을버스 엔진은 200마력이 넘는다. 200마리 넘는 말이 끄는 마차와 같다. 자동차가 없고 말이 운송수단이던 시대였다면 대단한 장관일 것이다. 마력(HP)은 짐마차를 부리는 말이 단위시간(1분)에 하는 일을 실측하여 1마력으로 삼은 데서 유래한다. 서고 출발하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100토크의 엔진이 떨었다.

레이싱카트를 몰기 위해서는 필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소형차의 1/4 크기…체감속도는 비슷

레이싱 체험을 위해 오후에 경기 파주시로 가야 했다. 파주시에는 대표적인 레이싱카트 체험장 ‘카트랜드’가 있다. 오후 1시 공덕동 회사 지하주차장을 출발했다. 선배 사진기자와 취재차량에 올랐다. 승용차의 높이는 약 1.5m, 전장은 약 4.5m이다. 그러나 그만한 크기의 마차와 비교할 수 없는 힘과 속도를 가졌다. 120마리 말의 힘을 내는 차의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속도의 진화는 눈부시다. 포뮬러 원(F1)의 기원은 1906년 열렸던 프랑스 그랑프리다. 그땐 150㎞의 트랙 한 바퀴를 도는 데 1시간이 걸렸다.

오후 2시. 레이싱카트는 레이싱 입문용으로 제작된 작은 탈것이다. 겉모습은 스포츠카를 그대로 축소한 것처럼 보인다. 엔진, 시트, 연료탱크, 타이어에 기본 프레임을 갖춘 간단한 구조다. 강철과 알루미늄으로 된 섀시만으로 골격이 만들어져 있다. 2인용 봅슬레이보다 약간 작은 크기다. “ㅂㅜ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응!” 세 사람이 카트를 몰고 있었다. 100m 선수가 숨을 헐떡이는 소리를, 엔진이 낸다. ‘카트’라는 단어는 친근하고 귀엽다. 그러나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의 벌판에 있는 레이싱 서킷을 달리는 카트는 결코 귀엽지 않았다. 덩치는 작지만 터프한 밴텀급 권투선수를 연상시켰다.

카트랜드의 이병철 총괄팀장은 레이싱카트가 결코 장난감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포뮬러 원 선수 아이르통 세나와 미하엘 슈마허 모두 어려서 레이싱카트를 타며 레이서의 꿈을 키웠다고 그는 설명했다. 실제로 슈마허는 여전히 카트를 즐긴다.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는 국내 카레이서들도 레이싱카트를 먼저 경험한 선수들이 많다. 이병철 팀장 역시 차에 미쳤다. 1985년생이지만 레이싱카트 경력이 10년이다.

“드라이빙 테크닉의 기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립 주행이고 다른 하나는 드리프트 주행입니다. 그립은 말 그대로 타이어와 지면의 마찰을 유지하면서 운전하는 것이죠. 드리프트는 바퀴와 지면의 마찰력이 없어져 차가 미끄러지는 기술입니다. 영화 <패스트 앤 퓨리어스-도쿄 드리프트>를 보면 기가 막힌 장면이 나오죠. 드리프트로 차를 옆으로 미끄러지게 해 주차장을 올라가죠. 보기엔 멋있지만 실제 레이서들은 잘 안 씁니다. 순간적으로 미끄러지니까 잠시 추월하기엔 좋지만 대신 (드리프트 상태에서) 탈출이 늦어 다시 따라잡히기 쉬워요.”

레저카트로 먼저 운전 감각을 익혔다.

드리프트. 차가 관성에 의해 미끄러지는 현상을 이용해 드라이버가 미끄러짐을 의도적으로 조정하는 기술. ‘컨트롤 슬라이드’라고도 한다. 운전자의 ‘로망’이다. 두 시간 동안 기초 교육을 받은 뒤 서킷에 섰다. 먼저, 레저 카트를 타 감각을 익히기로 했다. 헬멧을 쓰고 자리에 앉았다. “핸들 꼭 잡으세요!” 이병철 팀장이 시동을 걸었다. ‘ㄷㅓㄹㄷㄹㄷㄹㄷㄹ.’ 엔진 속 실린더의 움직임이 그대로 오른발바닥에 전해졌다. 살짝 오른발을 밟았다. ‘부ㄹㄹㅇㅇ!’ 아주 살짝 밟았는데도 목이 뒤로 꺾일 만큼 가속도가 순간 치솟았다. 거의 모든 카트는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만 달려 있다. 클러치가 없다. 클러치는 엔진의 동력을 차축에 연결하고 끊는 중간자 구실을 한다. 클러치가 없어 엔진의 힘이 체인을 통해 그대로 바퀴로 전달된다. ‘부ㄹㄹㄹㄹㄹㄹㄹㄹㄹㅇㅇㅇ!’ 13마력의 엔진이 뛰기 시작한다. 열세 마리 말이 끄는 마차에 나는 올라앉았다. 아직 찬 공기가 헬멧을 후비고 들어왔다.

레이싱카트의 속도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레이싱카트의 시트는 하나다. 이론적으로 4인승 소형차의 4분의 1 크기다. 그러나 체감 속도는 4분의 1이 아니다. 거의 같다고 해도 될 지경이다. 레이스의 기본인 ‘아웃 인 아웃’을 가르쳐준 대로 실행하려 핸들을 꼭 잡았다. 아웃 인 아웃은 곡선주로에서 바깥에서 안으로 붙여 다시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주법이다. 회전반경을 크게 해 스피드를 떨어뜨리지 않고 코너를 돌 수 있다. 일반 승용차처럼 파워 핸들이 아니라 지면과 타이어의 긴장과 떨림이 섬세하게 손바닥과 전완근(손목과 팔꿈치 사이의 근육. 악력에 관여한다.)으로 전달됐다. 액셀러레이터를 떼지 않고 코너를 돌았다. 힘 좋은 남자 마사지사가 갈비뼈를 누르는 듯 묵직한 게 느껴졌다. 드라이버가 옆에서 받는 힘인 횡지(G)다. 포뮬러 원의 경우 4지가 넘는다. 갈비뼈 보호대 제품이 따로 있을 정도다.

발을 떼선 안 된다. 물이 튀어 무의식적으로 발을 올렸다.

핸들을 꽉 움켜쥐고 ‘아웃 인 아웃’

‘부ㄹㄹㄹㄹㄹㄹㅇㅇㅇㅇㅇ!’ 지상에서 불과 4㎝ 정도 높이로 달리는 카트 옆으로, 안전벽 용도로 쌓은 검은 타이어가, 그 밑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이, 그 뒤 ‘출구’ 간판이, 나를 찍는 사진기자 선배가, 나를 보며 약간 웃으며 담배를 피우는 이병철 팀장이, 순간 시야에 잡혔다 순식간에 후퇴했다. “ㅆㅆㅆㅆㅆㅂㅂㅂㄹㄹㄹ!” 누군가 성대를 연방 자극하는 듯한 괴조음이 저절로 나왔다. 레이싱은 속도의 놀이면서 동시에 시간의 놀이였다. 약 300m의 서킷을 도는 데 걸린 시간(랩타임)은 평균 33초. 이병철 팀장은 한 손으로 몰며 약 20초의 랩타임을 기록했다. 언 손을 녹이는 내게 문성수 대표이사는 “운전면허를 따기 전에 드라이빙 감각을 익히기 위한 수단으로도 좋다”고 설명했다.

취재를 끝내고 120마력의 취재차를 타고 자유로를 달렸다. 곡선주로에서 ‘아웃 인 아웃’을 중얼거리다 문득 이곳은 서킷이 아니라 차선을 지켜야 하는 도로임을 깨달았다. 일반도로에서 아웃 인 아웃은 자살행위다. 차는 발의 확장이다. 국토해양부 자료를 보면 2009년 등록된 전체 자동차 수는 1700만대를 넘었다. 레이싱은 확장된 발로 추는 춤이었다. 그 확장된 춤을 추며 도시는 가끔 살아있다고 증명한다.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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