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2.24 20:41
수정 : 2010.02.2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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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 에이글의 2010년 봄/여름 시즌 레인부츠 광고 사진(왼쪽)과 스웨덴 스니커즈 브랜드 트레통의 2010년 봄/여름 시즌 레인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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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궂은 날씨를 환하게 밝혀주는 세련된 여성의 필수품, 레인부츠
2005년 세계 최고의 록 페스티벌인 영국 글래스턴베리 록 페스티벌에서 찍힌 한 장의 파파라치 사진이 전세계에 뿌려졌다. 사진 속 주인공은 최고의 모델 케이트 모스.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은 건 케이트 모스가 신고 있던 투박한 검은색 고무장화였다. 민소매 상의, 짧은 반바지, 두꺼운 벨트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거침없이 진흙투성이인 페스티벌 현장을 성큼성큼 걸어다니는 케이트 모스의 모습은 ‘세련된 여성이 궂은 날씨에 대처하는 법’에 관한 교본이 있다면 표지사진감이었다. 그 이후 할리우드 스타들은 심심치 않게 이 투박한 장화를 신고 파파라치 사진 속을 활보했다. 그리고 지금, 장화는 레인부츠라는 패션 아이템으로 사계절 내내 전세계 여성들에게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영국군 군화로 출발한 ‘웰링턴 부츠’
무릎까지 올라오는 고무장화는 1815년 워털루전쟁에서 나폴레옹을 꺾고 승리한 영국의 장군 웰링턴의 이름을 딴 ‘웰링턴 부츠’라고 불린다. 웰링턴 장군의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 부츠가 그의 제안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신을 수 있는 편한 신발을 찾던 웰링턴 장군은 독일 헤시안 부츠를 변형한 형태의 부츠를 제작했고, 이 부츠는 영국군의 군화로 사용되며 널리 알려졌다. 전장에서도 신을 수 있고 실내에서도 신는다는 점 때문에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웰링턴 부츠는 이후 고무재질로 제작돼 방수 기능을 갖추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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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스니커즈 스타일의 2009년 가을/겨울 레인부츠(이하 트레통), 발목까지 오는 레인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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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보다 전장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주로 신었던 웰링턴 부츠가 어떻게 여성들의 패션 아이템이 됐을까? 패션에 실용성이 강조되면서 여성들이 원하는 모습이 여성적 아름다움보다 편안하고 실용적인 멋스러움으로 옮겨간 게 가장 큰 이유다. 비오는 날 치마에 불편하기 그지없는 하이힐을 신고 조심스레 걸어다니거나 물이 들어오는 플랫슈즈를 신고 신경을 곤두세운 채 걷는 것보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웰링턴 부츠를 신고 편하게 걷는 게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패션 아이템에 성별이 없어진 것도 한몫한다. 군인들이 신던 남성적인 신발인 웰링턴 부츠를 여성이 신으면 더 과감하고 개성 있는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웰링턴 부츠만의 실용성과 투박함이 여성들을 매료시킨 것.
웰링턴 부츠 중 가장 유명세를 타는 제품은 영국 헌터사의 오리지널 웰링턴 부츠다. 1850년대부터 웰링턴 부츠를 만들어온 헌터가 1955년 겨울 생산을 시작한 초록색의 오리지널 부츠는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헌터의 웰링턴 부츠는 발, 발목 등 28개 이상의 개별적인 부분 조합으로 제작된다. 이번달부터 헌터 부츠를 정식 수입하는 엘지패션의 수입사업부 강희진씨는 “헌터는 오리지널 라인의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매 시즌 새로운 색상을 개발해 출시한다”며 “오리지널 라인 외에도 산책용이나 원예용 등 세분화된 목적에 맞는 다양한 라인이 있다”고 설명했다. 헌터가 지난해 구두 브랜드 지미 추와 함께 만든 부츠는 악어 무늬에 옆에 금색 버클이 달려 고급스럽다. 영국의 비영리단체 ‘워터에이드’와 함께 제작한 오리지널 웰링턴 부츠에는 물방울이 그려져 있다. 이 제품의 경우 판매액의 일부가 아프리카 물부족 국가를 돕는 데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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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컨버스화 스타일 레인부츠(이하 에스피와이디자인그룹), 빨강색 오리지널 라인 웰링턴 부츠, 초록색 오리지널 라인 웰링턴 부츠, 헌터가 지미 추와 협업해 제작한 레인부츠(이하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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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부츠는 최근 웰링턴 부츠의 형태에서 다양한 디자인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스웨덴의 스니커즈 브랜드 트레통은 지난해 가을/겨울 시즌에 단화 스니커즈 스타일의 제품을 내놓았다. 컨버스화처럼 신발끈까지 달린 레인부츠와 발목까지 오는 부티 스타일의 레인부츠도 눈길을 끈다. 레인부츠의 유일한 디테일이라고도 할 만한 옆쪽 버클은 가죽, 큐빅, 리본 등의 소재로 디자인이 다양해졌다. 에스피와이디자인그룹 기획부 김경미씨는 “최근 투박한 웰링턴 부츠를 매끄럽게 디자인해 다리가 날씬해 보이는 레인부츠 제품이 많이 나온다”며 “종아리 중간까지 오는 미드라인 레인부츠와 굽이 6㎝까지 들어간 힐 스타일의 레인부츠도 인기”라고 밝혔다.
레인부츠는 이제 비 오는 여름에만 신는 계절 아이템에서 사계절 언제든 신을 수 있는 아이템으로 이미지를 굳혔다. 폭설이 잦았던 지난겨울 국내뿐 아니라 워싱턴 등 외국에서도 털 등의 안감이 들어간 레인부츠를 신고 눈 위를 걸어다니는 이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레인부츠 안에 넣어 신을 수 있는 워머나 니 삭스도 레인부츠의 보온성과 투습성 등을 높여준다. 헌터는 원색에서 레퍼드 무늬까지 다양한 색상의 워머를 파는데, 워머는 발을 따뜻하게 보호해줄 뿐 아니라 액세서리 기능까지 한다. 빨간색 부츠에 검은색 워머를 매치하거나, 노란색 부츠에 남색 워머를 매치하는 등 부츠와 워머의 색상을 다르게 하면 새로운 분위기를 낼 수 있다.
파스텔·캔디 색상 부츠 대거 선보일 듯
레인부츠를 고를 때는 디자인뿐 아니라 색상도 중요한 요소다. 가을/겨울 시즌에는 짙은 초록색이나 남색, 검은색 등 어두운 색상이, 봄/여름 시즌에는 분홍색이나 보라색, 노란색 등 밝은 색상이 주를 이룬다. 2010년 봄/여름 시즌에는 패션 트렌드에 맞춰 파스텔색상이나 캔디색상의 레인부츠가 대거 출시된다. 가죽 웰링턴 부츠를 최초로 자연고무로 제작한 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 에이글은 올 봄/여름 시즌에 흰색·보라색·청색·라임색·빨강색 등 다섯가지 캔디 색상의 샹떼벨 팝 라인을 선보였다. 트레통 역시 봄/여름 시즌 신제품으로 하늘색과 노랑색, 빨강색 등 밝은 색상을 선택했고, 에스피와이디자인그룹은 여름 시즌을 앞둔 오는 4월께 파스텔톤의 분홍색과 하늘색의 레인부츠를 출시할 예정이다.
올해 첫 봄비가 내리는 날 레인부츠를 하나 장만해보는 건 어떨까. 비오는 어두침침한 날의 기분을 ‘업’시킬 수 있는 색상의 레인부츠를 신고, 옷이나 신발에 빗물이 튈 걱정 따위는 접어놓고 거리를 걷다 보면 어느새 ‘세련된 여성이 궂은 날씨에 대처하는 법’ 세번째 장에 등장할 법한 멋스러운 여성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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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스커트와 매치하면 더욱 발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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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글의 샹떼벨 팝 라인 레인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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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인부츠 선택법
레인부츠는 폴리염화비닐(PVC) 소재보다 천연고무 소재의 레인부츠가 좋다. 천연고무 소재는 유연성이 좋아 추운 날씨에도 부츠가 딱딱해지지 않는다. 방수기능도 좋다. 찢어질 수 있는 얇은 소재보다 두꺼운 소재를 선택하자. 무릎 위로 통풍이 잘 되는지 확인하는 것도 필수. 레인부츠는 일반 신발보다 한 사이즈 큰 것을 선택해야 한다. 레인부츠를 맨발로 신으면 소재와 기능의 특성상 발에 땀이 찰 수 있고, 피부가 예민할 경우 마찰로 인해 트러블이 생길 수도 있다.
◎ 레인부츠 코디법
봄과 여름에는 화사한 색상의 짧은 반바지나 미니스커트 등에 밝은 색상의 레인부츠를 매치하면 발랄한 분위기를 낼 수 있다. 몸매를 드러내는 바지나 스키니 진, 레깅스에 신으면 세련되고 멋스럽게 연출할 수 있다. 프릴이 달린 긴 치마나 카디건과 함께 신으면 히피풍으로 변신할 수 있다. 의상이 화려할 경우에는 꽃무늬 등 복잡한 무늬의 레인부츠보다 단순한 디자인과 어두운 색상의 레인부츠를 신어 의상을 강조하자. 어두운 색상의 레인부츠는 트렌치코트와도 궁합이 잘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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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제공 헌터·에이글·트레통·에스피와이디자인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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