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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15 19:35 수정 : 2010.03.15 19:35

허찬희 국립법무병원 의료부장이 지난 11일 충남 공주 국립법무병원 병동을 돌다 병동 마당에서 운동 도중 그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한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건강2.0] 범법자 정신치료 전문가 허찬희씨
성폭력 범죄자 대부분은 어릴적 ‘어머니의 부재’ 탓
마음의 상처에 공감 표하니 골칫덩이 환자도 확 달라져

한국정신치료학회 허찬희(57) 회장은 동양의 도와 서양의 정신치료를 융합해 정신질환을 고치는 의사다. 그의 스승으로 한국정신치료학회를 만들고 대한신경정신학회장을 역임한 이동식 선생은 이를 ‘도 정신치료’라 이름지었다.

허 회장은 환자에 대한 공감과 이를 위한 치료자의 인격 도야가 정신치료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본다. 그는 공감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느끼는 것, 얼굴만 봐도 서로 마음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일터는 충남 공주에 자리한 국립법무병원. 정신질환 범법자를 수용·치료하는 치료감호소다. 30년 이상 정신치료를 하면서 그는 감정의 억압이 병을 낳음을 확신하게 됐다. 당연히 정신치료는 억압된 감정의 해소로 이뤄진다.

묘약은 공감이다. 2008년 12월 말 부임한 뒤 감호소의 말썽꾼을 ‘처리’한 비방도 공감이었다. 그들은 다른 환자 괴롭히기, 간호사에게 시비 걸기, 감호소 간부 면담 요청, 인권기구나 사정기관에 투서하기 등으로 소일하는 골칫덩이들이었다. 그러나 허 회장은 그런 행동 뒤에 숨겨진 마음의 상처를 봤다. 상담이 시작됐다. 변화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 환자는 “네가 참 억울하게 당했구나”라는 그의 말에 눈물을 쏟고 마음을 열었다. 교사인 그의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어린 아들에게 칼이나 곡괭이 같은 흉기를 휘둘렀다. 권위에 대한 반감은 그런 아버지가 뿌린 씨앗이었다.

“어머니에게 하소연이라도 했으면 나았을 텐데 그의 눈에 비친 어머니 역시 아버지로부터 학대받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환자는 고통을 털어놓을 대상이 없어 자신의 감정을 억압해야 했습니다.”

상담으로 그 환자는 지금 자신의 행동을 낳은 뿌리를 알게 됐다. “어린 시절의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고 자각하는 순간 행동이 바뀌게 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환자는 말썽꾼에서 벗어났다. 다른 ‘문제 환자’들도 비슷했다.

허 회장은 성폭력 범죄자의 불우한 어린 시절에 대한 보도를 볼 때마다 정신치료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그는 자신이 맡고 있는 ‘성폭력범죄자 치료 및 재활센터’의 경험을 통해 성폭력이 어린 시절의 정서적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게 됐다. 이곳에 온 뒤 그가 만난 11명의 성폭력 범죄자 대부분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재를 경험했다. 가출이나 사별 등 물리적 부재뿐 아니라 어머니의 무관심도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한 성폭행범은 어린 시절 폐병에 걸린 어머니가 감염을 우려해 자신을 멀리한 것에 상처를 받았다.

“성폭력 범죄는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사랑이 충족되지 않아 생기는 적개심, 이 두 가지가 합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상처를 경험한 나이가 어릴수록 충동 조절능력은 더욱 약화합니다.”


허찬희 국립법무병원 의료부장은 환자에 대한 치료자의 공감이 정신치료의 성패를 좌우하며 환자와 공감하는 능력은 치료자 개인의 인격 도야로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허 회장은 공감을 통해 환자들이 어린 시절 느꼈던 마음의 상처와 대면하도록 했다. 치유가 시작됐고 환자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환자들의 변화를 지켜보며 그들이 성폭행의 습성에서 벗어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우울증과 사이코패스도 사랑이 채워지지 않아 생기는 현상으로 본다. 우울증은 자신을 해코지하여 사랑을 주지 않은 부모나 사회에 복수하는 것이고 사이코패스는 다른 이를 해쳐 적개심을 처리하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주위에서 조금만 공감해줬어도 문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공감은 현대 정신치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이다. 하지만 허 회장은 “공감하는 능력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매뉴얼이 있는 게 아닙니다. 공감 능력은 자신의 감정에 대한 꾸준한 분석과 치료, 직간접적인 경험 등으로 터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치료자의 인격 도야가 중요합니다. 수행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는 공감 능력을 얻기 위해 치료자가 욕심이 없어야 함을 거듭 강조했다. 환자를 돈벌이의 대상이나 명예를 얻는 도구로 여기면 공감은 결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치료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정화하는 마음, 정심(淨心)을 가져야 한다. 그가 늘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지켜보려는 이유다. 이를 통해 치료자의 마음은 맑은 거울처럼 환자의 감정을 비추면서도 그 감정에 공감할 수 있도록 비워진다. 물론 그 마음은 진공이 아니다. 묘한 무엇이 존재하는 텅 빔이다. 페루의 정신치료사 카를로스 알베르토 세긴은 그 묘한 무엇을 ‘정신치료적 에로스’라고 불렀다. ‘도 정신치료’에서는 이를 자비심 또는 모든 존재에 대한 보살핌과 관심으로 본다. 그의 스승이 늘 강조하는 말이다.

“이동식 선생님과 강석헌 선생님으로부터 많이 배웠지만 개인이나 치료자로서 아직 초보 수행자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유능한 신경정신과 개원의였던 그가 국립부곡병원을 거쳐 치료감호소를 선택한 이유는 ‘정신치료적 에로스’ 때문이었다. 그는 “경험 많은 사람이 어려운 환자를 돌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겸손해한다. 하지만 그의 경험은 단순한 세월이 아니다. 중증 환자를 호전시킨 사례가 적지 않다. 국립부곡병원에서도 11년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조울병 환자나 정신분열증 환자와 같은 이들의 증세를 크게 호전시켜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형량을 높이거나 전자발찌를 채우는 것만으로 성폭력 범죄를 줄일 수 없습니다. 정신치료를 통해 범죄의 원인이 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짜 교정입니다. 근본적인 대책은 자신의 행동이 자녀를 범죄자로 만들 수 있음을 부모들이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더 근본적인 것은 먼 옛날 우리 농촌마을처럼 동네 어른이 모든 아이를 자신의 자녀처럼 돌보고, 아이들은 동네 어른을 믿고 따르고 존경하는 그런 공동체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공주/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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