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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24 21:35 수정 : 2010.03.27 18:22

양꼬치는 한국인의 입맛도 사로잡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정겨운 이국적 감칠맛, 중국·필리핀·인도 현지 거주인들이 소개하는 거리의 음식들





⊙ 베이징 양꼬치 : 어둠이 깔린 거리, 매콤하고 고소한 연기를 사방으로 뿜어내며 지글지글 익어가는 양고기, 잘 익은 꼬치 하나씩 들고 마주 앉아 수다의 즐거움에 빠진 사람들…. 양고기를 꼬치에 끼워 ‘쯔란’(=커민)이라는 향신료를 뿌려 숯불에 구워 내는 ‘양러우촨’(羊肉串)이 만드는 중국 길거리 풍경이다.

2008년 여름, 딸과 함께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서쪽 끝 도시인 카슈가르(카스)를 방문했다. 이드 카 모스크를 따라 늘어선 노점들의 이국적 분위기에 빠져 기웃거리다 양고기를 굽는 잘생긴 위구르족 소년을 발견했다. 11살 소년은 학교가 끝난 뒤 가족들의 장사를 돕고 있었다. 중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가족들과 관광객의 의사소통도 소년의 몫이다. 어린 나이에 일하는 아이의 모습에 마음 한편이 저리긴 했지만, 소년은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신나게 드라마 <풀하우스>(중국명 ‘랑만만위’)에 대해 얘기하며 환하게 웃었다. 소년이 구워준 양고기는 적당한 기름기와 육즙을 머금은 감칠맛이 났다. 이곳이 중국 양러우촨의 본고장이니, 아이가 준 양러우촨은 ‘진짜 원조’다.

양러우촨은 한족과 유목민족들의 얽히고설킨 역사를 담은 음식이다. 양고기 꼬치는 중동지역부터 중앙아시아, 신장위구르 자치구까지 유라시아 유목민 지역이면 어디든 있다. 터키의 시쉬 케밥, 중앙아시아의 스탄 국가들의 샤슐리크 모두 양을 키우며 이동하는 유목민들이 수천년 전부터 먹던 전통 음식이다. 중국 역사는 정주민인 한족과 서북방 유목민들의 끊임없는 교류와 대립의 역사인데, 현재의 신장위구르 자치구 지역이 중국에 정복되고 위구르족들이 생계를 찾아 중국 곳곳으로 이주하면서 양러우촨도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중국 어디서라도 꼬치 하나에 1~3위안(166~498원)의 ‘착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서민음식이다. 연변에서는 양러우촨을 ‘양뀀’이라고도 부르는데, 조선족들의 전통적인 고춧가루 맛이 듬뿍 더해져 한국인의 입맛에 더 가깝다. 한-중 수교 뒤 많은 중국인이 한국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서울에도 곳곳에 양러우촨 식당이 생겨났으니, 중동에서 시작된 양러우촨의 동진이 드디어 서울에 이르렀다고 할까?

베이징=박민희/특파원


필리핀의 발롯은 한국의 곤달걀과 비슷하다.

⊙ 필리핀의 발롯 : 한국에서는 몸에 좋다는 것이라면 뭐든 먹어치워 버리는 습성이 있다. 주로 중년 남성에 국한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 이 음식에 대해서는 그쪽 방면 ‘베테랑’들도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음식’이란 필리핀에서 자양강장제로 불리는 발롯(Balut, Balot)이다. 부화하기 바로 직전에 달걀을 그대로 삶은 전통(?) 음식인데, 단백질이 풍부하고 특히 밤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밤에 좋다는 말에 솔깃해서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 한 껍질 까보기로 했다. 손에 쥐었을 때는 막 삶은 달걀과 같이 온기가 있었고 회색 껍질을 가진 것이 달랐을 뿐 우리네 삶은 달걀과 다르지 않았다. 숨을 한 번 들이켜고 껍질을 까기 위해 단단한 모서리에 부딪혔을 때 안에서 무엇인가가 껍질 안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껍질이 두꺼워서 한 두 번 더 친 다음에 안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눈에 띈 것은 마치 충격에 기절해 죽은 듯한 병아리 머리였다. 그 안에서 넘쳐나는 향기와 국물에 속이 뒤집혀 떨어뜨릴 뻔하자 필리핀 친구가 냉큼 받아 능숙하게 국물을 쭉 들이켠 뒤 남은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병아리 머리와 젤리같이 변한 털 달린 날개와 나머지 순두부 같은 것들을 두어 번 베어먹은 후 입에서 몇 개의 뼈를 뱉어냈다. 그리고 말했다, “마사랍!”(필리핀 현지언어 타갈로그어로 ‘맛있다’는 말이다.) 그 뒤 두어 번 더 시도해봤지만 결국 먹질 못했다. 주택단지 안에서는 밤에 소년들이 아이스박스를 들고 다니며 이렇게 외친다. “바~알~로~ㅅ!” 마치 우리네 찹쌀떡 장수같이.


마닐라=글·사진 백상훈/유학생


인도의 노점은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다.

⊙ 델리의 다바 : 인도 어디를 가도 다바(dhaba)라 불리는 곳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로드사이드 카페’(roadside caf)인데 말 그대로 길거리 간이식당이다. 다바는 고속도로변은 물론 대학 캠퍼스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뉴델리에 위치한 국립 자와할랄 네루 대학교 초입에도 그런 다바가 있다. 바로 ‘강가 다바’다. ‘갠지스 간이식당’이라고 부르면 좀더 친숙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강가 다바는 네루대 학생들은 물론 저녁 시간에는 일반 시민들까지 간식을 즐기러 찾아오는 통에 델리에선 꽤 명소로 통한다. 일반 길거리 식당들이 한정된 동네나 특정 직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경우가 많다면, 강가 다바는 학생, 교수, 학교 직원들은 물론 데이트하는 연인에서 일반 시민들까지 찾아오는 델리에서 가장 포용력이(?) 큰 길거리 식당이 아닌가 싶다.

파는 음식도 다양하다. 한 잔에 2.5루피(62.5원) 하는 짜이(인도 전통차), 한 조각에 3루피인 사모사(삼각형 모양의 튀긴 만두), 모모라 불리는 티베트식 만두에 이르기까지 서넛이 앉아서 먹어도 50루피(약 1250원)면 이야기도 충분히 하고 배도 적당히 불러온다. 오후 5시쯤이면 강가 다바는 어김없이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보통 인도에서는 저녁 식사를 밤 9시쯤 하기 때문에 초저녁이면 간단한 간식을 즐기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다. 강가 다바에서 매일 들려오는 오후 5시의 그 시끌벅적함을 이해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모이는 그 광경에서 묘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길 옆 노천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웃고 떠드는 가운데 토론의 장이 형성되고,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또다시 그 사람들을 구경하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길거리’를 보통 ‘사람이나 자동차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고 알고 있는데, 많은 길거리 식당들이 단순히 길가에서 음식을 파는 장소가 아닌 사람들과 이야기가 어우러질 수 있는 강가 다바 같은 공간이 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델리=글·사진 신민하/<씨네21>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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