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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의 ‘꼬미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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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신의 ‘꼬미꼬미’
손질부터 달랐던 술고래 사토상의 장어덮밥과 숯불의 향기
“인볼티니 꼰 멜란자네, 아라 께끼 오루-완.” 오늘 저녁도 ‘메모리’의 주방은 바쁘다. 도쿄에서 이탈리아 음식은 ‘이따메시’라고 친근하게 불린다. 그래서인지 메모리는 도야마 주민들의 마을회관처럼 이용되기도 한다. 평일 밤 9시쯤 근처의 식당 주인, 셰프들이 하나둘 모여 와인 한잔, 시원한 생맥주 한잔을 걸치며 하루의 회포를 푼다. 주말 밤에 찾아오시는 미쓰히코상. 스포츠형 머리에 짙은 콧수염이 잘 정돈된 구레나룻, ‘참 멋쟁이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초밥 경력 18년의 베테랑 오너 셰프다.손님 중에 흰머리의 늙수그레한 사토 아저씨는 평일 저녁에도 9시 스포츠 뉴스와 함께 “오쓰카레-스”(수고하셨습니다) 하며 들어오시는 가족 같은 분이었다. 사토 아저씨는 왕년에 날리던 조리사였다. 일본 최고의 일식 조리회 간다가와 회장과 요리 동문이라는 전설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도야마에서만 20년을 살아온 토박이 장어 요리 집의 오너 셰프다. “아버지! 술 좀 그만 드세요, 가게에서부터 드시더니 여기서 또 드시는 거예욧? 어머니가 안 좋아하세요.” 가끔 따님인 아카네상이 아버지에게 훈계를 하러 찾아오면 도망치듯 끌려나가셨다.
어느 여름날, 나는 아르바이트로 아저씨를 모시고 도쿄 전역에 장어덮밥을 배달하러 다녔다. 사토 아저씨는 차 시동을 걸면서부터 맥주 한 캔을 뜯으셨다. 연방 맥주를 드시며 “아이구 날씨 참 좋네” 하며 흥에 겨운 엔카를 부르며 운전하신다. 에도가와, 오테마치, 니혼바시를 거쳐 마지막 배달을 갈 때쯤에는 얼큰히 취하셔서 걱정됐는데, 아뿔싸! 마지막 배달처가 이다바시 근처 일본 경시청 청장의 사무실이었을 줄이야.
경시청 도로 앞에 삐딱하게 주차하시더니 술 냄새를 풍기며 정문으로 들어가신다. 검문 경찰들도 안면이 있는지 누구도 저지하지 않고 경시청 안으로 모신다. 사토 아저씨는 경찰도 눈감아주는 술고래였다. “내가 술 마시며 배달 운전하는 게 싫다면 와서 사 먹어야지, 총리대신이 주문해도 난 똑같아!” 아저씨는 장어덮밥에 요리사로서의 자신감을 진하게 표현했다. 숙련자의 장어덮밥은 손질부터 다르다. 숙련된 사바키(생선 해체)와 가시, 뼈를 제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분 이내. 그렇지 않으면 살 속으로 피가 퍼지고 비린내가 심해진다. 물론 관동과 관서가 다른 방법으로 사바키하지만 아부리(불에 살짝 굽기)는 똑같다. 잘 피운 숯불에 앞뒤로 살짝살짝 열을 가해 장어의 비린내를 숯의 향으로 감싸준다. 그리고 달달한 다래(간장, 미림, 술과 장어의 뼈로 끓인 소스)를 곱게 발라 주기를 수차례. 한여름에는 곁에 시원한 맥주 한 잔 없이는 너무도 고달픈 일이다. 사토 아저씨께서는 이제 하늘에서 불을 피우고 계신다. 3년 전 지병으로 결국 돌아가셨다.
“남조선에서 왔다고? 유학생? 어이쿠, 많이 먹어야지. 혼자 힘들 텐데 용감하네! 학생, 오늘은 그냥 가. 담에 돈 내게, 돈 좀 벌구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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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올리브 앤 팬트리 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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