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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24 22:26 수정 : 2010.03.24 22:26

남편의 기 리필해줘요~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탐앤탐스와 함께하는 커피 사연 공모전

작은 사업을 하는 남편이 퇴근하고 들어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책상 위에 그날 쓴 영수증을 가져다 놓는 것이다. 남편이 어디서 점심을 먹었는지 영수증을 보면 알 수 있다. 영수증에 쓰여 있는 상호는 주로 ‘전골집’ ‘서울 식당’ ‘맛있어 부대찌개’ 같은 음식점. 한데 6개월 전부터 영수증 문구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커피’라고 영자로 쓰여 있는 카드영수증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거래처 사람들이랑 ‘어쩔 수 없이’ 가서 마셨던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어쩔 수 없이’란 표현을 강조한 것은 이유가 있다. 남편이 가장 돈 쓰기 아까워하는 것은 외식비, 그중에서도 커피를 돈 내고 마시는 거다. 간혹 분위기 좋은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 한잔 마시자” 하면 눈에 쌍심지를 켠다. 집에 가면 돈 안 들이고 마실 수 있는데 왜 저런 데서 비싼 커피값을 내고 마셔야 하느냐며 날 정신이 나간 사람 취급했다. 날마다 마시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번 데이트할 겸 마시자는 건데 꼭 저렇게 반응할까 싶어 마음이 상하곤 했다. 몇 번 반복 뒤엔 남편에게 커피 마시자는 말을 안 한다.

그런 남편이 어느 날부터 커피 영수증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어떤 주일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가져왔다.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커피 영수증을 일일이 살펴봤다. 시나몬 카페모카,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생크림 빼고…. 심지어 몇 잔을 시킨 날도 있었다.(다른 사람이랑 마신 듯). 하지만 한 잔만 인쇄된 경우가 더 많았다. 혼자 마신 모양이다.

여러 날이 지난 주말이었다. 친척 모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 커피 한잔 마시고 싶다.” 그러면서 내 손을 끌고 커피 전문점에 들어갔다. 익숙하게 주문하고 커피를 들고 오는 남편의 얼굴엔 흐뭇함이 가득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커피 향을 음미한 후 한 모금 마시며 하는 말, “마셔봐, 이 집 커피 정말 맛있다!” 어이없어하는 나에게 남편은 변명하듯 웃으며 말했다. 커피를 알지 못했던 어느 날, 거래처를 여러 곳 다니고 나니 온몸에 기가 다 빠진 듯했단다. 지칠 대로 지친 남편의 눈에 띈 커피 전문점. 잠시 쉬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단다. ‘아무거나’ 대신 메뉴판의 가장 윗자리에 있던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별생각 없이 한 모금 마시자 온몸의 피로가 싹 달아나는 것은 물론 ‘아, 이 맛이야!’ 하는 느낌이 들더란다.

그 후로 남편은 일주일에 서너 번 커피 전문점을 찾았고 커피 한 잔과 마주하는 그 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고 한다. 남편이 좀 얄밉기도 했지만 정신없이 바쁜 일과 속에 잠시라도 여유를 가질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런 여유를 준 커피가 고맙기도 했다. 요즘 주말이면 남편이 날 꾄다. “우리 카페라떼 한잔하러 갈까?”

백인숙/경기 부천시 소사구 범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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