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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2월 중정일(지난 3월28일) 향사를 앞두고 도동서원을 찾은 지역 유림 대표들이 향사 준비를 의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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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조선 전기 유학자 김굉필 기려 세운 대구 달성군 도동리 도동서원
봄볕은 따스한데 낙동강 풍경은 여느 봄과 다르다. 강줄기를 따라 흙모래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포클레인·덤프트럭 바삐 오가며, 흙탕물 일으키며, 죽어라 하고 ‘낙동강 살리기’를 하고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자모리에서 물길 보며 산길을 오르면 다람재 정상. 현풍면과 구지면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2층 전망대에서 ‘강 살리기 공사장’ 일부와, 물길 건너 고령 개진면 들판, 도동서원이 자리잡은 유서 깊은 마을 도동리가 한눈에 잡힌다. 아름다운 강 풍경이다. 고령 땅 개진(개경포)은 강화도에서 뱃길을 통해 합천 해인사로 팔만대장경판을 옮길 때 배를 댔던 포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다람재 전망대 옆엔 조선 전기 유학자 한훤당 김굉필(1454~1504)의 시를 새긴 빗돌이 있다. 도동리는 김굉필을 기려 세운 도동서원이 들어서면서 붙은 이름이다.
중정당과 사당, 이를 둘러싼 담장조차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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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산물과 얼음을 저장했던 현풍 석빙고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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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리의 무게중심도, 주민들 관심사도, 핵심 볼거리도 도동서원이다. 고리타분한 유교문화의 잔영이 아닌, 볼수록 감동적인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본디 비슬산에 있다가 소실돼 1605년 이곳에 새로 짓고 보로동서원이라 했다. 2년 뒤 선조는 ‘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는 뜻으로 도동서원이라 이름지어 사액하였다. 대니산 일대가 지금도 서흥 김씨 문중 땅인데, 당시 하사된 것이라고 한다.
서원 구석구석 선인들의 사려 깊은 마음가짐이 서려 있고,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는 볼거리가 숨어 있다. 서원이 북향으로 들어선 것은 이곳이 보기 드문 명당이어서다. 신라 때 금사라는 비구니 절이 있었던 대니산(태리산·수리산) 서북쪽 끝자락,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산비탈에 자연스럽게 앉아 있다.
북쪽을 보고 앉았어도 햇볕은 담장과 마당에서 온종일 놀다 간다. 외삼문인 수월루, 환주문과 강당인 중정당, 그리고 내삼문과 김굉필·정구 위패를 모신 사당 건물이 비탈을 따라 계단식으로 들어섰다. 이들을 둘러싼 흙담장도 산비탈을 오르내린다. 담장 안팎엔 수백년 묵은 목백일홍들이 가지마다 새순을 내밀었고, 진달래는 붉은 꽃잎을 열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 도동서원을 찾았을 때 마침 2월 향사(3월28일)를 앞두고 각 지역 유림 대표 20명이 모여 향사 준비로 분주했다. 강당과 동재(거인재)·서재(거의재)엔 군불이 지펴지고, 서원 관리사인 전사청 마당에선 돼지를 잡아 손질했다. 잡은 돼지는 머리째 세로로 반을 갈라 생고기 상태로 사당에 모신 두 분(김굉필과 도동서원을 건립한 정구)에게 각각 제사 지낸다. 문화관광해설사 송대섭씨가 중정당 옆의 작은 돌탁자에 대해 말했다. “‘생단’(희생단)이라고 합니다. 향사 전에 잡은 돼지를 여기 올려놓고 고기 상태를 점검하죠.” 제관들이 고기를 살펴보고 합격이면 ‘충’, 불합격이면 ‘불’이라고 외쳐 다시 준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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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서원 강당(중정당) 지붕. 기와를 올릴 때마다 새로 찍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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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서원의 아름다움은 꼼꼼히 살펴볼수록 빛을 발한다. 계단의 돌들에 새겨진 태극무늬·연꽃무늬, 기단석에 박힌 용머리와 다람쥐 무늬, 담장에 박힌 암키와와 수막새의 조화, 지붕 끝 기와에 새겨진 정교한 무늬와 제작연대 표시 등, 찬찬히 살펴보지 않으면 지나쳐버릴 것들이 숨어 있다. 강당인 중정당과 사당, 이를 둘러싼 담장이 모두 보물(제350호)로 지정돼 있다.
앞뜰엔 수령 400년의 거대한 은행나무
중정당에 걸린 ‘도동서원’ 현판은 두개다. 앞쪽 처마 밑 현판 글씨는 퇴계 이황의 글씨를 집자해 만든 것이고, 안쪽의 것은 선조가 내린 현판이다. 담장도 오래 들여다보게 만든다. 진흙에 기와를 박아 쌓은 아름다운 흙벽이다. 예쁘다고 쓰다듬지 마시길. 담장도 보물이니.
서원 앞뜰에는 1607년 사액을 기념해 심었다는, 수령 400년의 거대한 은행나무가 기둥 같고 들보 같은 가지들을 사방으로 내뻗고 우거져 있다. 높이 20여m, 지름이 약 2.5m에 이르는 큰 나무다. 가지들이 부러질 우려가 있어 시멘트 기둥들로 받쳐놓았다. 서원 뒷산은 아름드리 소나무숲이다. 소나무숲길을 따라 10여분 오르면 문·무인석 등 무수한 석물을 거느린 김굉필 묘소가 있다. 위아래로 이어진 3개의 묘 중 가운데 묘다. 맑은 바람 쐬며 산책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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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우거진 도동서원 뒷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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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리엔 김굉필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20여 가구가 모여 산다. 마을에서 건너다보면 오른쪽으로 다람재 능선이 물길에 가로막혀 끊겨 있고, 강 건너쪽엔 작은 야산이 홀로 솟아 있다. 여기에 얘깃거리가 많다. 도동리 주민 서용수(66)씨가 다람재를 가리켰다. “지따랗게 이래 쪼옥 내리뻗응께네 똑 다람쥐맹이로 생기가 다람재라 카는 기라. 건너짝은 깨구리산이라.”
개구리산 앞 물가에 선담으로 부르는 바위가 솟아 있다. 홍수 때 물이 선담을 넘어서면 마을 안쪽까지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20여년 전까지 도동리엔 나루터가 있었다. 배를 타고 건너가 농사를 짓고, 아이들도 배를 타고 학교에 다녀야 했다. 다람재 능선과 개구리산은 본디 이어져 있던 산줄기였다.
주민 박원도(82)씨가 말했다. “저어기 기다란 능선 있지예. 거가 비암등이라. 비암이 깨구리를 잡아물라꼬 이래 내리오다 고마 요 앞산이 싹 끼어들어가 딱 가로막히가꼬 멈춰버린 기라. 비암이 깨구리를 물었으모 마 그 마을에 장군도 나고 할낀데.” 이어져 있던 다람재와 개구리산은 용이 하늘로 오르면서 꼬리를 휘둘러 깨어졌다고 한다. 갈라지기 전까진 개진면 쪽 산밑(기와공장 쪽)으로 물이 흘렀다는데, 그곳을 지금도 외나루라고 부른다.
개구리산 밑 절벽엔 주민들이 두려워하던 깊은 소가 있다. 박씨가 덧붙였다. “물속엔 시커먼 굴이 뚫려 있는 기라. 잉어·붕어가 드글드글한데, 옛날 물속에 고기 잡을라꼬 인자 보재기(고기 잡는 잠수부)가 들어갔다가 고마 씨껍을 하고 도망쳐 나온기라. 굴속에서 이심이(용을 닮은 상상의 동물)를 봤다쿠데.”
가물 때는 다람재 능선 끝 물가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1986년 다람재 길이 뚫리기 전까지 주민들은 능선 끝 물가의 오솔길을 이용해 현풍을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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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굉필 후손들이 모여 사는 구지면 못골의 한 고택 담 밖에서 산수유와 홍매화가 꽃자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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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물 캐기 등 체험마을 준비 한창
다람재 능선 위쪽엔 김굉필이 부친 시묘살이를 했다는 암자(현 정수암)가 있고, 마을 뒤 산자락엔 정구의 제자였던 사우당 김대진이 지은 정자 관수정이 있다. 정자 현판 이름 그대로 물줄기를 내려다보기 좋은 곳이다.
도동마을에선 지금 체험마을 준비가 한창이다. 농어촌개발공사와 대구시 지원을 받아 한옥 충효예절관, 숙박시설을 짓고 마을길을 정비해 올해 말부터 전통문화 체험, 농작물 캐기 체험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도동리 오가는 길에 만나는 볼거리로, 현풍면 지리 솔예마을의 현풍 곽씨 12정려, 한훤당 김굉필의 후손이 모여 사는 못골(지리)의 ‘한훤고택’(김굉필의 고택은 아니다), 김굉필과 정여창이 만나 시를 읊던 구지면 내리의 정자 이노정, 망우당 곽재우 묘소, 현풍면 소재지의 현풍석빙고와 현풍향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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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도동 여행쪽지
고령에선 대가야체험축제
◎ 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 김천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바꿔타고 가다 현풍나들목에서 나간다. 구지면 소재지 거쳐 171번 지방도 타고 도동서원 팻말 따라 도동1리로 간다. 화산리·수리·징리·오설리·도동2리를 거친다. 도동1리에서 다람재 넘어가면 자모리 거쳐 현풍면 소재지로 가게 된다.
◎ 먹을거리 | 현풍면 소재지에 곰탕으로 이름난 할매곰탕집들이 있다. ‘현풍 박소선 할매집곰탕’ (053)614-2143. 곰탕 9000원.
◎ 고령 대가야체험축제 | 이웃한 고령군은 고대왕국 대가야 문화의 중심지다. 지산동 일대에 고분 200기가 밀집해 있다. 도동서원 오가는 길에 대가야박물관·왕릉전시관·대가야역사테마파크를 둘러본 뒤 고분 탐방로 산책을 해볼 만하다. 4월8~11일 대가야체험축제가 열린다. 대가야 용사 체험, 유물 등을 활용한 역사 게임, 대가야 역사 재현극 등 체험거리가 푸짐하다. 고령군청 문화체육과 (054)950-6111, 대구시 달성군청 문화체육과 (053)668-2171, 대구시청 관광과 (053)803-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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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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