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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4.15 08:45 수정 : 2010.04.15 08:45

한살림과 함께하는 밥상사연 공모전

[매거진 esc] 한살림과 함께하는 밥상사연 공모전





1986년 5월 어느날. 그날은 내가 약혼을 하는 날이었다.

5년 연애 끝에 온갖 우여곡절을 이기고 혼인 계약을 하는 날.

나도 만감이 들었지만, 20여년 동안 혼자몸으로 무남독녀를 키워오신 엄마의 느낌은 수만 갈래 수천만 갈래였으리라. 그래도 속편한 나는 늦잠을 자고 출근할 때보다 더 느긋하게 엄마가 차려준 아침상 앞에 앉았다.

엄마는 밤새 잠도 주무시지 않고 반찬을 만들었는지 그날 아침상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정말 육해공군이 푸른 초원 위에 다 내려앉은 것 같았다.

“막상 약혼식 때는 뭐 많이 먹지도 못할 텐데, 아침 든든히 먹어 둬.”

“에이, 다들 식사할 텐데, 나만 굶나 뭐?”

엄마의 속은 나보다 더 떨리는지 아침을 드는 둥 마는 둥 하신다.

그때, 골목 쪽으로 나 있던 우리집 출입문이 살짝 흔들렸다.


“밥 좀 주세요.”

엄마는 문을 열고 나는 현관에 서서 내다보았다.

남루한 옷차림을 한 초로의 남자분이 고개를 숙이고 플라스틱 통 하나를 든 채 구부정히 서 있었다. 지금은 아파트에 누가 구걸을 하러 오는 일이 없지만, 그때는 집으로 밥을 빌러 오는 사람이 가끔 있었다. 그리 멀지도 않은 시절인데도 말이다. 잠깐 동안 엄마는 말이 없이 그 남자분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그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오셨다.

“마침 우리도 이제 아침을 먹고 있었는데 잘되었네요. 아침 같이 들고 가세요.”

엄마는 밥통에서 더운밥을 퍼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수저를 새로 꺼내고 국을 떴다. 극구 손을 내젓는 분 손에 숟가락을 쥐여드리고, 그렇게 우리는 셋이 조금은 어색한 겸상을 하고 밥을 먹었다. 말없이 밥을 먹고 난 후 엄마는 그분이 들고 온 플라스틱 통과 집의 또다른 통까지 꺼내어 그날 아침의 진수성찬 반찬과 남은 밥을 다 담아 주셨다.

“우리는 오늘 집안 행사가 있어서 아마 집에 와서 밥을 먹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니 대신 가져다가 맛있게 드세요.”

거기다가 약간의 지폐까지 넣어서 보따리 하나를 만들어 들려 보내던 엄마. 그러고 나서 나는 집을 나와 미장원으로 향했다.

그날 이후, 엄마도 나도 그날의 일은 다시 입에 올리지 않았다. 서로간에 그날의 일을 되새김하는 게 무슨 공치사처럼 여겨지는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몇년 전 엄마는 돌아가셨다. 엄마에 대해 야속한 것도 있고, 서운한 일도 있고, 또 애틋하고 고운 기억도 있지만,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이날 아침의 조용한 그 밥상이다. 가끔 어려운 일을 해결하고 났을 때나, 슬픔이 지나가고 난 이후에 특히 더. 그날 엄마의 그 밥상 덕에 내가 이만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집안의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눌 줄 알았던 엄마, 당신을 추억합니다.

요안리/ 서울 강남구 개포동

‘esc’가 바른 먹을거리 운동을 펼치는 한살림과 독자 사연 공모전을 진행합니다. ‘내 인생의 잊지 못할 밥상’이라는 주제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매주 한분을 뽑아 유기농쌀·홍삼액 등 20만원 상당의 한살림 상품 등을 드립니다. 자세한 응모 요령은 <한겨레> 누리집(www.hani.co.kr)에 접속해 esc 게시판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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