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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4.21 17:55 수정 : 2010.04.21 19:40

[매거진 esc] 한살림과 함께하는 밥상사연 공모전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가 너무 좋았다.

할머니 댁에 가면 맛있는 식혜가 있는 것도 좋았고 할머니 집의 곰곰한 시골냄새도 좋았다. 솔직히 내 입맛에는 맞지 않지만 할머니가 끓여주시는 오징어김칫국도 그냥 할머니의 맛이라 좋았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할머니는 서울로 이사오셨다. 막내삼촌이 결혼하고 막내삼촌이랑 같이 사시기 시작하셨다. 우리 집은 강남, 할머니 댁은 목동. 할머니는 엄마 아빠가 다 맞벌이하는 우리 3남매가 뭐가 그리 안쓰러우신지 1주일에 한번 이상 칠순 노구를 끌고 전철을 두시간씩 타고 오셨다.

오셔서 가장 먼저 하시는 것은 밥. 우리 3남매가 라면과 김치볶음밥 등으로 때우는 게 너무 안쓰러우신지 오시자마자 밥을 하셨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사춘기여서 그랬을까. 입에 맞지 않는 할머니 반찬에 고마워하지도 못하고 왜 그렇게 투정 부렸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프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결혼 전 우리 신랑을 처음 식구들에게 소개해주는 자리에서도 엄마를 포함한 세 며느리가 그렇게 말리셨는데도 그 많은 반찬을 할머니가 직접 하셨다. 우리 큰애 남편 될 사람인데 직접 해주어야 한다고. 다행히 시골에서 자란 우리 남편은 할머니 밥을 매우 맛있게 먹었다.

결혼 후에도 3년을 친정에서 살았다. 남편 직업 때문에 떨어질 일이 많아서. 할머니는 내가 우리 딸을 낳았을 때도 우리 딸을 키울 때도 걱정이 되셨는지 팔순이 다 돼 허리가 꾸부러지시고 조금 걸어도 헉헉대시면서도 집에 와서 밥을 해주셨다.

우리 할머니 밥상은 휘황찬란하거나 특이한 나물이 있다거나 하는 그런 밥상은 아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할머니의 맛, 할머니의 냄새가 배어 있는,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먹는다면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밥이다.

할머니는 이제 곧 팔순이 되신다. 1년 전부터는 친정에 자주 오시지 못하셨다. 이제 마음처럼 몸이 움직여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의 지방 발령으로 3년 만에 분가를 했다. 할머니는 내 밥상이 그리 걱정이 되셨는지 주말에 우리 집에 온 고모와 엄마에게 하루에 10번도 더 전화를 걸어서 고추장 챙겨라, 간장 챙겨라, 쌀 챙겨라 … 몇 번을 그렇게 하셨다고 한다.

지금도 난 많이 힘들고 하면 할머니가 힘들게 차려주신 밥상을 생각한다.

맛있진 않다. 하지만 할머니의 사랑과 정성, 할머니 내음이 듬뿍 담긴 그 밥상. 그 밥을 먹으면 얼마나 배부르고 든든하던지…. 앞으로 난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몇 번 더 먹을수 있을까.

이영주/전남 나주 용산동


‘esc’가 바른 먹을거리 운동을 펼치는 한살림과 독자 사연 공모전을 진행합니다. ‘내 인생의 잊지 못할 밥상’이라는 주제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매주 한분을 뽑아 유기농쌀·홍삼액 등 20만원 상당의 한살림 상품 등을 드립니다. 자세한 응모 요령은 <한겨레> 누리집(www.hani.co.kr)에 접속해 esc 게시판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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