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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키는 168㎝, 얼굴은 못생겨도 되지만 목소리가 좋고 손가락이 길고 가냘플 것, 노래를 잘 부르고 기타를 잘 치면 좋겠고 피아노를 칠 줄 안다면 대단히 감사하겠음.’ 이건 제 이상형의 조건입니다. ‘키는 168㎝인 줄 알고 만났더니 173㎝, 목소리는 들을 것도 없고 손가락은 볼 것도 없음, 노래는 참아줄 만한 수준이고 기타는커녕 노래방에서 탬버린도 박자 맞춰 칠 줄 모름.’ 이건 제가 결혼한 남자의 상태입니다. 이상형과는 영 동떨어져 있지만 우리 부부는 참 ‘별일 없이’ 삽니다. 1년 전에 저같이 별일 없이 사는 유부녀 3명이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날의 주제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어떻게 할래’였습니다. 놀랍게도 3명 모두 대답이 똑같았습니다. “월급만 손 안 대고 갖다주면 돼! 하지만 월급에 손을 대는 순간 남편의 모가지에 손을 댈 거야!” 그날 세 유부녀는 호방하게 웃으며 만장일치를 보았지만 뭔가 쓸쓸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눈물 한방울로 사랑이 시작되고 애인의 배신에 배를 가르던, 사랑에 웃고 이별에 울던, 그 시절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남편의 외도 또한 돈 문제로만 환원하게 되는 건 참 별일 없이 늙어간다는 뜻일까요, 아이엠에프 사태가 부부관계에까지 아로새긴 상흔일까요? ‘esc’에서 운영하고 있는 상담코너에서 ‘고민’을 받아보면, 남들 보기엔 ‘별일 없이’ 살고 있지만 남모를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 상담 역시 ‘자상한 가장이자 흠잡을 데 없는 남편과 살고 있는데 행복하지 않다’는 게 골자입니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다’ ‘고부 갈등이 심각하다’ 등의 상담과 달리 명백한 귀책 사유도 없고 ‘문제없는 남편과 사는데 문제고 별일 없이 사는데 별일’이라니! 역시나 우리의 상담교주 김어준씨는 촌철살인적 교시를 내려줍니다. 그 해답은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에서 확인해보시죠. 김아리 〈esc〉 팀장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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