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5.06 14:43
수정 : 2010.05.06 14:43
[매거진 esc] 한살림과 함께하는 밥상사연 공모전
어렸을 적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무섭고 완고하신 분이셨다. 양반 운운하시며 비가 와도 뛰지 않으시고 아무리 추워도 찬물로 마당에서 세수를 하셨으며 찬밥은 절대 안 드셨다. 반드시 금방 지은 새 밥과 뜨거운 국이 있어야 식사를 하시는 분이셨다.
우리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 아버지는 일곱이나 되는 당신 자식들을 위해 집을 팔아 돈을 조금 마련해서 시내에 연탄가게를 차리시고 연탄배달을 하셨다. 가게가 있는 시내는 집값이 비싸 우리 형제들은 시골의 허름한 집에서 밥해 먹으며 학교에 다니고 엄마가 매일 시내버스를 타고 왔다 갔다 하시며 우리들 밥을 챙겨주셨다.
고등학교 때 일이다. 아버지는 내가 대학을 간다고 하자 마구 화를 내시며 반대를 하시고 그날부터 공부를 하지 못하게 방해를 하셨다. 본심은 아니셨겠지만 집안형편이 너무 어려워 남동생 공부시켜야지 계집아이는 가르쳐봤자 아무 쓸모가 없다는 지론이셨다. 그날부터 나는 아버지의 애물단지 딸이 되었다. 친구들은 영양제에 진수성찬 도시락에 매일매일 부모님의 관심 속에 고3을 보냈지만 난 반대하는 아버지와 싸우면서 눈치공부를 해야 했다.
고3 마지막 등록금을 주시지 않을 정도로 고집스럽게 나의 대학진학을 반대하셨다. 고집 센 나는 끝까지 투쟁을 해가며 공부를 했고 드디어 다음날이 연합고사를 보는 날이 되었다.
시험 전날 난 시험장에서 가까운 곳에서 자고 아침 일찍 가려고 아버지가 계시는 집으로 갔다. 마음이 불안한 나는 새벽에 일어나 마지막 정리 겸 교과서를 읽어내려갔다. 엄마는 저녁에는 시골에 가셨다가 동생들 아침을 먹이고 오전께에 오시기 때문에 아침밥은 아예 먹을 생각도 안 했다.
그런데 비좁은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나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부엌에서 뭔가를 하시는 소리였다. 난 공부에 집중하느라 아무 생각 없이 책만 읽어내려갔다. 한참이 지났을까 부엌으로 향해 난 뒷문이 열리고 밥상이 들어왔다.
난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따뜻한 국과 밥과 반찬 몇 가지가 올라와 있는 제대로 된 밥상이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난 감동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밥을 먹자 아버지는 보온도시락을 내미셨다. 도시락을 들고 고맙다는 말도 안 하고 시험장으로 냅다 달렸다.
아버지의 밥상 덕분에 다행히 시험 결과가 좋아 국립대학에 무난히 갈 수 있었고 난 아르바이트로 대학을 무사히 마쳤다. 이제는 결코 받을 수 없는 그 밥상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자꾸만 내 눈에 어른거린다.
이삼미/강원 원주시 명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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