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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12 18:46 수정 : 2010.05.15 16:45

(왼쪽) <컵케이크, 달콤한 내 인생>의 저자가 운영하는 한남동의 컵케이크 전문점
(오른쪽) <효자동 레시피>에 소개된 ‘그릴에 구운 오징어 샐러드’

[매거진 esc] ‘효자동 레시피’ ‘컵케이크, 달콤한 내 인생’ 등 요리에세이 4권

요리책이 백과사전처럼 두껍고 깨알 같은 글씨로 동서양을 망라한 방대한 레시피가 나열돼 있던 시절이 있었다. 저자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메뉴의 ‘다다익선’만 중요한 시절이었다. 다음은 저자가 누군지를 보고 요리책을 고르는 시대가 도래했다. 한복선, 김하진 등 업계 전문가들로부터 시작한 저자표 요리책에서 이제 ‘나물이’처럼 일반인이라도 네티즌들에게 인정받으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가 됐다. 종류도 한식부터 일식, 중식, 이탈리아식은 기본이고 베이킹책만 해도 60종을 넘는 등 ‘더 나올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쏟아졌다. 이런 시대에 요리책의 생존전략은 ‘이종교배’다. 최근 출간되는 요리책 중엔 요리책인지 에세이인지 구분할 수 없는 책들이 많다. 요리와 여행을 엮거나, 요리와 레스토랑 운영기를 엮거나, 요리와 인생스토리를 엮는 식이다. 그래서 같은 책을 어떤 서점은 요리 분야에 두지만, 어떤 서점은 수필 코너에 두기도 하고, 또다른 서점은 여행 코너에 두기도 한다. 최근에 출간된 이런 요리 에세이 중에서 문장이 뛰어나 읽는 맛이 쏠쏠한 책 4권을 소개한다.


〈효자동 레시피〉
⊙ 효자동 레시피 | 2004년 가을부터 2008년 겨울까지 서울 효자동 골목길에 ‘레서피’라는 음식점을 운영한 신경숙씨가 펴낸 책이다. 레스토랑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거 같은 이 골목길에 한옥을 개조해 만든 이 가게는 ‘커피숍’인지 ‘식당’인지 혹은 ‘상점’인지 알 수 없는 외양 탓에 처음엔 문 밖에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사람만 넘쳐날 뿐 손님이 없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케이크를 구워서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걸로 시간을 때우고 지인들이 이제 케이크라고 하면 질려서 공포감을 느낄 정도가 됐을 때 백발의 노신사가 아이스커피를 시킨 것에서 영업이 시작됐다. 이 책은 그렇게 한명의 손님에서 출발한 가게가 점차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가고 저녁이 되면 웃음소리와 음식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사랑방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낸 한폭의 수채화와 같다.

특이하게도 주인은 모든 손님과 동네 이웃을 이 가게의 ‘주인’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손님들과 머리를 맞대어 레시피를 바꿔나가고 직접 만든 요리로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싶다는 청년에게 주방을 내주고 정원에서 가꾼 허브는 필요한 사람에게 다 나누어주고, 동네 꼬마들이 지나가면 불러다가 놀고 가게 만드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주인장의 출산으로 지금은 잠시 휴업중이지만 이 가게는 그렇게 너무나 일본 영화 <가모메 식당>과 닮아 있다. 아보카도 샌드위치, 콩소메 수프, 안초비 파스타, 가지 토마토 파스타 등 이 집에서 팔던 인기 메뉴들의 만들기 비법도 상세하고 풍부하게 담았다.


〈컵케이크, 달콤한 내 인생〉
⊙ 컵케이크, 달콤한 내 인생 | 한국에서 최초로 컵케이크 전문점을 내고 베이커리업계에서 유명인사가 된 이샘씨의 스토리는 의외로 ‘축구’에서 시작된다. 축구가 밥보다, 남자보다, 부모님보다, 공부보다 더 중요했던 열여덟살의 여고생은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영국으로 떠나게 된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이 축구의 나라였기 때문이었다고. 2002년 한국으로 대학을 진학한 것도 월드컵이 한국에서 열렸기 때문이고, 전공을 경영학으로 선택한 것도 스포츠 마케팅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고, 남들이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던 2006년 독일로 연수를 떠난 것도 독일 월드컵 때문이었고, 그래서 대기업에 취업해서 자리잡은 곳도 스포츠 사업팀이었다.

그렇게 평생을 ‘축구’라는 키워드로 살아온 그가 스물여덟에 돌연 사표를 쓰고 컵케이크를 굽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못 궁금한 그 이유에서 출발한 이 책은 한남동에서 문을 연 ‘Life is just a cup of cake’(인생이란 한 조각의 케이크)란 가게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서래마을에 2호점을 내기까지 이야기를 씨줄로 삼고 8만개 이상의 컵케이크를 구우며 숱한 시행착오 끝에 성공한 컵케이크 레시피를 날줄로 엮은 책이다.

바닐라·딸기·블루베리 컵케이크 등 20여종의 컵케이크 레시피를 친절하게 전수해주는 것은 기본, 직장을 다니면서 가게 오픈을 준비한 경험을 바탕으로 가게 위치 정하는 것부터 인테리어, 재료와 기계 구하는 방법까지 실용적인 정보도 넘친다.



(왼쪽) <보통날의 파스타>에 소개된 이탈리아 현지 파스타
(오른쪽) <스페인에서 날아온 맛있는 편지>의 저자가 찍은 스페인 풍경 사진


〈스페인에서 날아온 맛있는 편지〉
⊙ 스페인에서 날아온 맛있는 편지 | ‘사진작가 정세영의 키친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스페인 식당을 운영하는 지은이의 스페인 여행 에세이이자 스페인 요리책이다. 밥을 좀 많이 먹으려고 전공을 사진으로 바꾸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밥 먹기 위한 수단이 밥을 굶는 수단이 돼 버렸다는 지은이. 이 때문에 사랑하는 이도 떠나가고 그래서 방황 끝에 떠난 스페인 여행. 거기서 상처도 치유하고 배워온 요리로 먹고살게 됐단다.

책은 장애가 있는 한국 쌍둥이를 입양한 젊은 좌파 부부와 30년 넘게 해로하는 독일-일본인 커플 등 스페인에서 만난 독특한 인연들의 이야기와 해물 파에야, 가스파초, 상그리아 등 스페인 대표 요리를 엮었다.

우리에게는 이름부터 낯선 요리들이지만 레시피는 아주 간단하다. 일단 분량을 적시하지 않았다. 재료 모양도 ‘여러분 성격대로 잘라라’는 식이고, 재료도 ‘없으면 생략’ 이런 식이다. 이는 ‘요리는 상상력을 발휘해서 노는 놀이’라는 필자의 철학 탓이다.

사진작가여서 사진은 기본이고 글솜씨도 수준급이다. 스페인 곳곳을 그린 일러스트와 요리·그림 실력까지 뛰어나다. 한마디로 눈은 즐겁고 혀에는 침이 고인다.


〈보통날의 파스타〉
⊙ 보통날의 파스타 |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라는 에세이집으로 이미 뛰어난 필력을 공인받은 청담동 유명 셰프 박찬일씨의 신간이다. 이탈리아 유학파 출신인 덕에 이탈리아에서 보고 느끼고 겪은 파스타의 모든 것을 녹여냈다.

“파스타를 먹는 과정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다기보다는 이탈리아의 정수를 배우는 것 같았다. 지방마다 다른 스토리와 배경의 파스타가 있었고, 그것은 그네들의 삶의 원형질이었다”는 그는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 파스타를 경험하는 한국인들에게 파스타에 대한 오해를 푸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이탈리아에는 이태리타월만 없는 게 아니라 스파게티에 곁들여 먹는 ‘피클’도 없고 ‘크림 카르보나라’도 없단다.

독자에 따라선 파스타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보단 고등어나 참치캔을 활용한 간단한 스파게티부터 감자 뇨키와 치즈 리소토까지 우리 시대 가장 ‘핫’한 요리사 박찬일표 레시피를 구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미덕일 수도 있겠다.

글 김아리 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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