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5.17 20:16
수정 : 2010.05.17 20:27
[건강한 세상]
<동의보감> 잡병 편에는 소갈(消渴)병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나온다.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당뇨병과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다음, 다식, 다뇨 등의 증상을 포함하는 개념으로서 당뇨병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소갈병은 증상과 연관되는 장부에 따라 폐소(肺消), 격소(膈消), 비소(脾消), 신소(腎消) 등으로 세분된다. 갈증이 나서 물을 많이 마시는 상소(上消), 음식을 잘 먹으면서도 여위고 소변이 잦은 중소(中消), 소변이 뿌옇고 기름 같아지는 하소(下消)로 나누기도 한다. 이것은 초기 당뇨병 증상에서 신장 기능 저하까지 진행되는 병의 단계에 대한 설명으로도 볼 수 있다.
소갈의 원인은 고량진미를 많이 먹으면 지나치게 살이 쪄서 그 기운이 위로 넘쳐나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 소갈이 오래되면 옹저, 수종(水腫)이 생기거나 양쪽 눈을 다 보지 못하게도 된다는 것이나, 갑자기 옹저가 생기면 죽을 수 있으므로 반드시 옹저를 예방해야 한다는 구절은 당뇨병의 만성 합병증에 대한 현대의학의 설명과 다르지 않다. 치료법으로는 기름진 음식과 향이 강한 풀, 광물성 약재를 쓰지 말아야 하며, 음주, 성생활, 짠 음식과 면류 등을 주의하라고 했다. 맥문동, 오미자, 천화분 등의 약재와 여러 가지 처방으로 치료하지만 소갈이 창만이나 옹저로 변한 것은 치료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현대의학에서는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이 이자에서 잘 분비되지 않거나 분비되더라도 체내에서 잘 이용되지 않는 것(인슐린 저항성)을 당뇨병의 원인으로 보기 때문에, 치료의 초점도 여기에 맞추어져 있다. 하지만 인슐린 외에도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자에서 나오는 글루카곤, 부신수질과 교감신경 말단에서 분비되는 에피네프린, 노르에피네프린 등이 그것인데 모두 혈당 상승 작용을 한다.
혈당 강하 호르몬은 인슐린 하나인데, 혈당을 올리는 것은 왜 여러 가지일까? 맹수 등을 만났을 때 전력 질주해서 생명을 건지려면 혈당을 급격하게 올리는 것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진화해왔을 것이다. 위기 상황이 지나간 후 혈당을 정상 상태로 낮추는 것은 급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생활은 그렇지 못하다. 맹수를 만날 일은 없지만, 피로와 긴장, 초조 상태가 계속되면서 교감신경이 항진된 상태로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흔히 스테로이드라 불리는 부신피질호르몬 코르티솔이 많이 분비되어 또한 혈당을 올린다. 에너지 소비에 비해서 영양이 넘치는 것도 문제이지만 만성적인 스트레스 상황 또한 당뇨 환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원인으로 보인다. 술 권하는 사회일 뿐 아니라 혈당 올리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키거나 인슐린 자체를 주사하는 것만이 아니라 혈당을 높이는 물질들을 조절하는 치료약은 왜 개발되지 않을까? 집중 광고되는 한방 당뇨병 치료제들도 실험적으로 혈당 강하 효과가 있는 한약재만을 강조한다면 개인의 병증에 맞게 전신 상태를 조절하는 한의학적 치료와는 거리가 있다. 이제 혈당 수치 그 자체보다 혈당을 자꾸만 올라가게 하는 몸과 마음의 상태를 조절하는 치료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윤영주(부산대 한방병원 교수/의사·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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