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5.19 17:59
수정 : 2010.05.19 17:59
[매거진 esc] 한살림과 함께하는 밥상사연 공모전
해병대에 입대하여 포항에서 근무할 때입니다.
1년이 넘어 병영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중간고참 무렵 내무실에 큰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병이 외출을 나간 후 하루가 지나도록 미귀대한 사건이었습니다. 부대장은 상급부대나 헌병대에서 알기 전에 사건을 덮기 위하여 신병을 데려오는 일에 나를 차출했습니다. 나는 신병의 관품에서 집에서 온 편지로 거주지를 확인했습니다.
다행히도 포항에서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당일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고 외출증을 가지고 신병의 집으로 갔습니다. 포항에서 버스로 흥해로 갔고, 흥해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찾아간 신병의 집은 작은 어촌마을이었습니다. 마침 신병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밥상은 그 시절의 어려운 어촌생활을 반영하듯 보리밥에 반찬이 초라했습니다.
느닷없이 찾아든 나를 보고 사태를 짐작한 듯 어머니가 나를 맞았습니다.
신병은 친구들과 해변에 나갔다고 했습니다. 혹시 모를 일이기에 연락을 하지 말라 하고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는 근심과 걱정으로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작은 고깃배를 타시는데 며칠에 한 번씩 들르시고 밑으로는 올망졸망한 동생들이 셋이나 있어 한 입이라도 줄일 요량으로 어린 나이에 군에 자원입대한 큰아들이었는데 군 생활의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집으로 왔을 때 어머니의 억장이 무너졌답니다.
시간이 다 되어 돌아온 신병은 나를 보고 놀랐지만 한편 체념한 듯했습니다. 나는 신병에게 탈영하면 일생 동안 따라야 하는 사회적 고통과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귀대할 것을 종용했습니다. 신병은 귀대하면 당할 고통으로 두려워하면서도 계속된 내 설득에 다행히 용기를 냈습니다.
귀대 준비를 하는 동안 신병 어머니는 아들과 나를 위하여 서둘러 밥상을 차렸습니다. 잠시 후 들어온 밥상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고 침샘을 자극했습니다. 주발에 수북이 올려 푼 쌀밥과 갈치국, 그리고 삶은 홍게와 여러 생선들이 가득한 그야말로 어촌 특유의 밥상이었습니다. 밥상만 보아도 없는 살림에 쌀을 구해다 어머니의 눈물로 차린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병은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인지 밥상 앞에 다가서지 못하였고 나도 한쪽 구석에 앉아 밥상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어린 동생들을 보니 선뜻 숟가락으로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재차 식사를 권하는 어머니에게 지금 서둘러 떠나야 오늘 안에 귀대할 수 있다는 핑계로 신병을 데리고 집을 나서며 말했습니다. “어머니! 부대에 돌아가 아무 일 없도록 잘 보살필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식사는 다음에 정식으로 휴가 나와서 둘이서 먹을게요. 그때에도 맛있게 차려주세요.”
그날의 그 약속은 끝내 지키지 못했지만 지금도 그 밥상과 근심이 가득했던 신병 어머니의 모습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한춘택/인천 서구 가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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