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한살림과 함께하는 밥상사연 공모전
아이의 아버지는 한전에 다니셨다. 어느 날 아이의 아버지는 강원도 화천에 새로 짓는 발전소로 발령을 받았고, 가족 모두는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서 화천 산골마을로 이사를 왔다.1960년대. 당시 화천은 오지산골로, 땅은 척박했고, 사방이 온통 산이었다.
서울에서 전학 온 아이는 어머니가 싸주신 하얀 쌀밥 도시락을 넣은 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했다. 당시 화천의 아이들은 책가방이 아닌 보자기를 메고 있었고, 대다수 아이들은 고무신이 아닌 맨발이었다.
전학 수속을 받고 첫 등교를 한 날 점심시간. 아이들은 보자기 안에 있는 도시락을 꺼냈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꽁보리밥은커녕 감자와 김치가 전부였다. 서울에서 전학 온 아이가 하얀 쌀밥이 담긴 도시락을 열자, 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쌀밥을 먹고 싶었던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의 제지로 바라만 보았다.
어느덧 보릿고개인 4~5월이 되었다. 대다수 아이들은 감자는커녕 도시락을 싸오지 못했다. 대신 아이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학교 인근의 산으로 올라가 나물을 캐고, 나무껍질을 채취해 끼니를 때웠다. 아이는 어머니가 싸준 밥이 들어간 도시락을 멀리하고, 아이들과 함께 산으로 가 나물이며, 나무껍질 등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놀았다.
어느덧 겨울이 되었고, 아이는 짝꿍의 집으로 놀러 갔다. 짝궁의 집 어귀에서부터 고약한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알고 보니, 썩은 감자에서 나는 냄새였다. 먹을 것이 귀했던 그때, 지금처럼 감자떡, 옹심이 등을 생감자 전분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썩은 감자를 통해 전분을 얻어 만들었다.
짝꿍의 어머니는 놀러온 아이를 위해 썩은 감자를 통해 얻은 전분으로 만든 옹심이를 식사로 내오셨다. 맛있게 먹고 있는 짝꿍과 그의 가족들을 보며 한 수저를 떠서 먹어보았다. 냄새가 고약했던 썩은 감자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되다니, 아이는 놀라웠다. 당시 산골에 멸치나 다시마, 쇠고기 등 육수를 낼 수 있는 게 어디 있었겠는가. 오직 집 앞마당에서 키운 대파와 감자로 육수를 낸 옹심이는 최고의 맛이었다.
어머니의 정성과 지혜, 그리고 손맛으로 어우러진 옹심이 한 그릇.4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당시 옹심이만큼 내 생애 최고의 밥상은 없었다.
(지난 4월 갑자기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신 아빠를 병간호하며, 아빠의 잊지 못할 밥상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빠의 이야기를 정리하여, 딸인 제가 대신 올려봅니다.)
임선아/성남 분당구 야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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