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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31 19:16 수정 : 2010.05.31 19:30

[건강한 세상]

아이가 우는 것을 달래줘야 할까? 아니면 모른 체해야 할까? 이런 질문을 마음속에 품어보지 않은 엄마는 거의 없을 것이다. 육아서적을 참고해도 나오는 말이 제각각이다. 어떤 책에는 아이가 과도하게 울면 뇌가 스트레스 호르몬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정상적인 뇌 발달을 가져오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다른 책에서는 아이의 응석을 받아주면 자기 스스로 조절하는 뇌 회로를 만들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엄마들은 대부분 혼란 속에서 이랬다 저랬다 한다. 그러다 보니 또 이런 말이 떠오른다. 육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라는데.

육아서적에 나오는 말들은 모두 일면의 진실을 담고 있다. 여기서 빠진 것은 아이의 특성과 나이에 대한 고려이다. 우선 만 2살 이전의 아이를 오래 울리는 것은 위험하다. 아이의 뇌는 어른의 뇌와 같지 않다. 출생 시 아이의 뇌는 뇌세포 사이의 연결이 거의 되어 있지 않다. 부품은 있지만 부품 사이의 연결은 부분적으로만 이뤄져 있다. 이 시기의 뇌는 생각을 통해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이는 아직 인간 본연의 반응을 보일 수 없다. 때로는 파충류 수준이고, 잘해봐야 원숭이 수준의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아이의 뇌는 아직 스트레스를 감당할 정도의 보호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스트레스에 노출된 상태를 주변에서 바꿔주지 않으면 뇌는 둔감해지기보다는 작은 스트레스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회피하는 반사적 상태로 굳어진다.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꽉 찬 아이의 뇌는 성장에 에너지를 충분히 쓰지 못하고 자기보호를 위한 기본적 체계에만 에너지를 집중한다.

아이가 좀더 크면서 감정을 조절하는 뇌 부위와 원시적인 뇌가 연결이 이뤄진다면 이때는 우는 것을 무조건 달래줘서는 안 된다. 아이는 늘 절박하고 두려워서 우는 것은 아니다. 울음으로 주변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하여 울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동물로 말하자면 이제 침팬지 수준은 자란 것이다. 아이는 바로 눈물을 보이기보다는 요구를 말하고 강하게 주장한다. 이것이 들어지지 않았을 때 떼를 쓴다. 이러한 아이의 요구에 자주 보상해준다면 아이는 외적인 상황을 조종하여 자기 마음을 달래려는 방식에만 익숙해진다.

여기서 말한 두 돌 기준은 딱 끊어지는 기준은 아니다. 아이마다 발달은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다. 또 더 나이를 먹은 아이더라도 감당하지 못할 스트레스 상황이라면 보호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기질적으로 예민한 아이나 어린 시절 스트레스 조절을 못 해주어 예민하게 자란 아이라면 나이가 늘어도 감정 조절이 어렵다.

중요한 것은 본능적 위험을 느껴서 울고 떼를 쓸 때는 아이의 감정을 달래줘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른이 판단하기에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이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아주 어린 아이라면 무조건 달래줘야 한다. 혼자 오래 울게 두어서는 안 된다. 조금 큰 아이라면 아이가 울 때 바로 행동하지 말자. 아이를 지켜보고 느껴보자. 아이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 감정을 읽어야 한다. 아이가 이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감정을 조절하는 데 약하다면 부모가 자신의 이성을 아이에게 빌려줘야 한다. 이때 부모까지 감정적으로 흔들려서 행동해서는 아이의 이성이 자라나기 어렵다.

서천석 서울신경정신과 원장·행복한아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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