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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갑수(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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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김갑수·윤결 등 엘피 마니아들이 말하는 ‘왜 엘피인가’
한국을 대표하는 엘피 애호가라면 첫째, 둘째로 꼽히는 이가 시인 김갑수(51·사진)씨다. 그의 작업실 ‘줄라이홀’은 가히 엘피로 쌓은 성채다. 서울 마포 주택가 골목, 평범한 상가건물 지하에 자리잡은 줄라이홀은 3만장의 엘피와 수천장의 시디, 그리고 족히 집 한 채 값에 이르는 빈티지 오디오들로 가득 차 있다. 김씨는 엘피 원판을 구하기 어려웠던 80년대 대학 시절부터 미군들이 가져온 원판을 구하러 동두천을 헤맸고, 돈을 벌기 시작한 뒤로는 거의 모든 수입을 음반과 오디오에 써왔다. 남들이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고 물으면 그는 늘 “다른 것을 안 하니까”라고 똑같은 대답을 한다. “똑같은 음악이 곰삭아 노골노골거리는 그 형언할 수 없는 느낌” 때문에 엘피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엘피는 트는 것이 아니라 연주하는 겁니다. 엘피는 하나하나가 나만의 것이란 고유성이 있어요.” 엘피가 들어오면 그는 먼저 천으로 닦고, 세척 용액을 문질러 때를 벗긴다. 그리고 진공흡입기로 용액을 빨아내 말린다. 재킷에 터진 부분이 있으면 정성껏 테이프로 붙여 수선을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낡은 음반을 손보는 과정 전체가 그에겐 음악을 듣는 연장선이다. “음악은 귀에 들리는 소리만이 아닙니다. 공연장에서 듣는 음악이 더 좋게 느껴지는 이유는 공연장까지 가고, 기다리고, 객석 분위기에 압도되는 것 등등이 사람을 긴장시켜 음악에 더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엘피를 공들여 다루는 몸짓이 모두 음악입니다. 엘피는 음악을 더 귀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얼마 전, 그는 엘피 하나를 틀어볼 생각도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보기만 했다고 한다. 한 영국 애호가가 세상을 떠난 뒤 한국으로 건너온 음반이었다. 새로 들여온 엘피를 반갑게 꺼내는데 음반에 붙어있는 은회색 머리카락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노인이 런던 자기 방에서 그 음반을 평생 듣던 모습이 떠올라 순간 너무나 뭉클했습니다. 인생이 엘피 안에 있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자신이 엘피광이지만 그는 누구나 엘피를 들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음악이 인생에서 여가 이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음악에 많은 것을 걸고 싶은 사람이라면 엘피를 한번 만나보라 권한다. “엘피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가 들어가거든요. 대신 ‘음악이 얼마나 강하게 다가오는지’ 느끼게 될 겁니다.” 김갑수씨가 음악 못잖게 엘피란 물건 자체의 매력을 예찬하는 애호가라면, 독립영화 감독 윤결(37)씨는 “엘피가 내게 가장 효과적인 음악 저장매체이기 때문에 엘피를 듣는다”고 말한다. “미클로시 페레니란 첼리스트를 예로 들면, 그는 베토벤 첼로 소나타를 일생 동안 두번 녹음했습니다. 2000년대 나온 페레니 음반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그가 30년 전 낸 먼저 음반이 궁금해집니다. 그때는 시디가 없었으니 엘피로만 나왔어요. 그 음반을 들으면 다시 페레니가 사사한 야노시 스터르케르는 어떤 음악을 했는지 다시 들어 보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계속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리 시대 연주자들의 해석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옛날 음반들이 엘피로만 나와있으니까 엘피를 찾아 듣는 겁니다.”
윤 감독은 엘피를 듣는 것을 사람들이 현재와 동떨어진 향수, 추억을 추구하는 회고적 취미로 보는 것이야말로 오해라고 말한다. 지금 연주자들이 전범으로 삼는 다양한 연주들을 찾아 듣기에 시디보다 엘피가 더 낫기 때문이란 것이다. “간혹 시네마테크에서 고전 영화들을 틀어주잖아요? 그 낡은 필름에서 우리가 뭔가 발견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시선’일 겁니다. 지금 우리에게 없는 다른 시선이죠. 엘피는 불편하고 수고로워요. 카트리지 하나만 해도 침압을 맞추고, 수평도 맞추고, 스타일러스와 스핀들의 간격도 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수고로움을 통해 음악에 대한 다른 시선을 얻어요. 그래서 엘피를 듣습니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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