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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6.02 20:10 수정 : 2010.06.02 20:10

[매거진 esc] 한살림과 함께하는 밥상사연 공모전

올해로 교직 14년차인 나에겐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찡하게 아려오는 한 아이가 있다.

일반계 여고에서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로 교직 생활을 시작한 지 5년 만인 2002년, 갑작스럽게 전문계 고등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쳐다만 보기에도 무서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친단 말인가 하는 두려움으로 정신없이 1년을 보낸 2003년, 학교는 나에게 담임까지 맡겼다. 역시나 예상했던 모든 조건의 아이들이 우리 반에도 있었다. 안정적이지 못한 가정, 경제적인 어려움, 목표의 부재와 방황, 비행과 폭력 등.

그중에서도 우리 반 아이 B는 이러한 조건들을 모두 갖고 있는 총체적인 난국 그 자체였다. 거슬리는 용모에 거친 언어, 그리고 반항기 가득한 태도로 나를 제압하려 들었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학생부를 드나들었다. 하지만 나 역시 ‘이 아이들이라고 다를 거 없다. 이 아이들 역시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학생일 뿐이다’라는 자기 최면을 걸면서 속으로는 떨고 있을망정 아이들 앞에서는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선생님, 학교, 그리고 친구에 대한 애착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아이들에게 “함께”라는 것의 의미를 알게 해 주고 싶어 토요일이면 바가지에 비빔밥을 비볐고 잔디밭에 모여 앉아 삼겹살을 구웠으며, 공부는 해서 뭐해요라는 아이들에게 밤늦도록 공부하고 돌아가는 길 차가운 밤공기를 맞는 싸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많은 아이들이 조금씩 공부를 하기 시작했으며, 자신들의 가능성과 변화에 놀라워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로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바로 다름 아닌 B였다. 머리가 좋았던 B는 엄청난 성적 향상을 보였으며,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으며, 자신의 고단한 삶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곳으로 학교를 택했다. 골초였던 흡연 습관을 완전히 고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최소한 교내 흡연으로 학생과에 불려 다니는 일은 더는 없게 되었다. 그렇게 바쁘게 보낸 1년을 마감하는 2월의 어느 날. 10시가 넘은 늦은 밤,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저만치 B가 서 있었다. “선생님, 저녁 드셨어요? 안 드셨으면 이거….” 녀석은 그렇게 얼버무리고는 도망을 쳤다. 녀석이 건넨 비닐봉지 안에는 호박, 두부, 바지락, 햇반, 라면, 달걀이 들어 있었다. 얼른 녀석을 쫓아가 “사 왔으면 요리까지 해서 밥상을 차려주고 가야지?” 하고 안으로 불러들였다. 녀석은 능숙한 솜씨로 호박을 썰고, 두부를 자르고, 바지락 살을 발라 된장국을 끓여냈고, 달걀찜까지 후딱 만들어 냈다. 녀석이 돌아간 후 라면 봉지 아래 깔려 있던 흰 봉투 안에서 얼마간의 돈과 편지를 발견한 나는 그날 밤 한참을 울었다. “선생님, 저번에 제 수련회비랑 납부금이랑 내 주신 거 알아요. 감사하다는 말 하고 싶었는데 못했어요. 알바해서 조금 마련했으니 꼭 받아주세요.”

나에게 생애 가장 아름다운 밥상을 선물한 그 녀석,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황미진/광주 서구 금호동



‘esc’가 바른 먹을거리 운동을 펼치는 한살림과 독자 사연 공모전을 진행합니다. ‘내 인생의 잊지 못할 밥상’이라는 주제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매주 한분을 뽑아 유기농쌀·홍삼액 등 20만원 상당의 한살림 상품 등을 드립니다. 자세한 응모 요령은 <한겨레> 누리집(www.hani.co.kr)에 접속해 esc 게시판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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