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리 허스트윗 감독의 〈헬베티카〉(2007).
|
[매거진 esc]
‘싱글맨’ ‘헬베티카’ 등 디자이너 출신이 감독을 맡거나 디자이너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들
서랍장에 가지런히 접어놓은 양말과 새것이나 다름없는 흰색 셔츠를 꺼내고 의자 위에 잘빠진 검은색 구두를 올려놓고 구둣솔로 닦는다. 거울 앞에서 폭이 좁은 짙은 갈색 타이를 매고 넥타이핀을 고정하는 이 남자. 이 남자는 지난주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싱글맨>의 주인공 조지(콜린 퍼스)다. 교수인 조지가 출근을 준비하는 장면에 오랫동안 눈이 가는 이유는, 이 영화의 감독이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동성애자인 교수 조지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애인을 차 사고로 잃고 감정의 혼란에 빠진다는 내용이지만, 이 영화의 감독이 톰 포드라는 걸 알고 극장에 들어간 이상 영화 속 인물들이 입고 나오는 옷과 주인공의 집, 소품 등에 시선이 고정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영화 중반부. 조지가 자살을 결심하고 장례식장에서 입혀질 검은색 양복에 흰색 셔츠, 검은색 타이, ‘넥타이는 윈저 방식으로 매어주길’이라고 쓴 노트, 열쇠, 지갑, 서류 등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장면에서는 ‘역시 톰 포드!’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 영화가 영화 자체를 두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구치’와 ‘이브생로랑’(YSL)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고 지금은 자신의 브랜드 ‘톰 포드’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올려놓은 디자이너 톰 포드가 만들어낸 세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헬베티카’ 서체 만든 디자이너 다룬 영화가 그 시초
주로 영화의 시각적인 부분 일부만을 담당해왔던 패션 디자이너나 시각 디자이너가 영화의 중심부로 바짝 다가섰다. 최근 3년 동안 미국과 유럽의 디자인계에서는 디자이너가 메가폰을 잡고, 디자이너에 관한 영화를 찍고, 디자인 자체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영화가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이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시작에 한 편의 영화가 있다. 뉴욕과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독립영화 감독 게리 허스트윗이 만든 장편영화 <헬베티카>다.
|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의 삶을 다룬 〈밀턴 글레이저: 투 인폼 & 딜라이트〉(2009).
|
|
미국의 건축사진가 줄리어스 슐먼에 관한 다큐멘터리 〈비주얼 어쿠스틱스〉(2008).
|
|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의 감독 데뷔작 〈싱글맨〉(2009).
|
‘아트 & 카피’ ‘타이프페이스’ 등 디자인 다큐도 줄이어 무엇보다 20세기를 이끌어온 유명 디자이너의 삶을 기록하는 형식의 다큐멘터리 제작이 활발해진 것이 눈에 띈다. 2008년에 제작된 <비주얼 어쿠스틱스>는 1930년대부터 대표적인 현대 건축가들과 함께 작업해온 미국의 건축 사진가 줄리어스 슐먼의 삶을 들여다본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의 포스터에는 1960년에 미국 건축가 피어 쾨니그의 건축물을 찍은 그의 가장 대표적인 사진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 #22’가 실려 있다.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에 관한 인물 다큐멘터리인 <렘 콜하스: 어 카인드 오브 아키텍트>와 렘 콜하스가 1998년에 지은 프랑스 보르도의 집 안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 집의 도우미 아주머니의 일상을 따라가며 건축물의 생명력을 얘기하는 <콜하스 하우스라이프>도 2008년에 개봉했다. ‘I♥NY’를 디자인한 미국의 대표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에 관한 다큐멘터리 <밀턴 글레이저: 투 인폼 & 딜라이트>는 2009년 극장에 걸렸다.
|
영화 〈싱글맨〉의 한 장면.
|
|
영화 〈오브젝티파이드〉의 로고.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