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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6.23 19:50 수정 : 2010.06.24 08:23

[매거진 esc] 한살림과 함께하는 밥상사연 공모전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0교시 자율학습과 아침 보충수업으로 피곤한 두 눈을 문제집에 묻으며 한숨 자려고 하는데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어제 은영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오늘 은영이가 학교에 못 온다고 연락 왔다. 과목 선생님들이 자리 하나가 왜 비었냐고 물으면 그렇게 말씀드려라.” “네.” 너무나도 싱거운 친구 아버지의 부고였다. 친구 아버지의 부고보다 수학 숙제가 더 급했던 나는 그렇게 그날 하루를 마감하려는데, 오후 보충수업이 끝나자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선생님이 오늘 은영이 집에 가보려고 하는데 반장도 같이 가자.”

나는 반 친구들을 대표하여, 생애 처음으로 조문객이 되어 친구집을 가게 됐다. 깜깜한 밤중에 도착한 친구집은 동네 사람들로 북적였고 은영이는 자그마한 몸집에 상복을 입고 머리에는 흰 둥그스름한 것을 쓰고 있었다. 은영이 학교 선생님이 찾아왔다는 말에 동네 아주머니가 상을 봐왔다. 나는 저녁을 굶었던 터라 엄청난 양의 밥이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반찬은 왜 그리도 잘 나오던지. 내가 좋아하는 고기완자와 홍어회와 고깃국으로 가득한 밥상을 보며 나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숟가락을 들고 입안에 허겁지겁 밥을 쑤셔넣었다. 그리고 상갓집 밥이 참 맛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참 밥먹는 데 정신이 팔려 있는데 갑자기 동네 아주머니가 은영이를 품에 안으시며 말씀하셨다. “에구 이 불쌍한 것. 불쌍한 것. 이제 우째 사노.”

그러자 갑자기 은영이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서러움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넘치며 꺼이꺼이 우는 친구 앞에서 나는 더이상 숟가락질을 할 수가 없었다. 왠지 다들 나만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져 얼굴이 화끈거렸다. 친구 아버지의 죽음에 아무런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던 나의 무정함을 원망했다. 결국 친구의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따라 방바닥만 쳐다보던 나는 막차를 타기 위해 일어서는 선생님을 따라 나왔다.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연신 해대는 은영이의 손을 붙잡고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밥 잘 먹었어”라고 해버렸다.

결국 집에 돌아오던 시외버스 안에서 나는 먹은 것을 몽땅 토해내고 말았다. 소화도 제대로 못 시킬 정도로 우걱우걱 먹어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원래 멀미가 심해서 그렇다고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에 너스레를 떨어대고는 또한번 마음이 심란했다. 그날 먹었던 그 밥상은 사람이 사람에게 가져야 할 예의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하게 해준 밥상이었다.

노수미/제주 제주시 도남동


‘esc’가 바른 먹을거리 운동을 펼치는 한살림과 독자 사연 공모전을 진행합니다. ‘내 인생의 잊지 못할 밥상’이라는 주제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매주 한분을 뽑아 유기농쌀·홍삼액 등 20만원 상당의 한살림 상품 등을 드립니다. 자세한 응모 요령은 <한겨레> 누리집(www.hani.co.kr)에 접속해 esc 게시판을 확인해 주세요. 마감은 6월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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