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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6.23 20:33 수정 : 2010.06.23 20:33

esc를 누르며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났습니다. 둘은 호감을 가지고 사귀는 과정에서 술을 진탕 마셨습니다. 술에 취한 여자가 걷기가 힘들다며 남자에게 업어달라고 했습니다. 치마를 입고 남자에게 업힌 여자는 그만 남자의 등에서 물기가 많은 큰일(?)을 보고 말았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손을 타고 흘러내리는 이물질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뒤 남자는 여자를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꾸 그 일이 떠올라 도저히 여자를 만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여자의 친구들이 남자를 찾아와 닦달을 합니다. “여자가 똥 좀 쌌다고 남자가 쪼잔하게 도망을 가냐?” 남자는 인터넷 게시판에 사연을 올렸습니다. “제가 정말 쪼잔한 걸까요?”

1년 전쯤인가 유명 포털사이트 게시판을 달군 사연입니다. 많은 네티즌들이 위로와 비난을 건네며 갑론을박을 나누었습니다. 남자친구의 등짝에 똥을 싸버린 여자. 그리고 도망가는 남자를 쫓아와 ‘그까짓 거 가지고 도망을 가다니 이 좀팽이야!’라고 외치는 여자들.

다른 사람들은 이 사연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무릇 인간의 자아존중감이란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더랍니다. “어떻게 이딴 일로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는 거야!”라는 당당한 외침으로 말이죠. 하지만 주변엔 이렇게 견고한 자존감을 가진 여자보단 “이래도 나를 사랑할 수 있겠니?”라고 묻는 여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여자들의 자존감 역시 사회·역사적 산물이라, 성차별의 뿌리가 깊었던 한국사와 별개로 논할 순 없겠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연애 과정만큼이나 ‘자존감의 리트머스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실 연애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 나란 인간이 어떻게 생겨먹었는가, 특히 내가 나를 어떻게 여기는가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과정입니다. 이번주 상담면 주제는 ‘연애하는 여자는 긍정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연애가 잘 안 풀리는 여자, 매번 남자에게 차인다고 느끼는 여자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김아리 〈esc〉 팀장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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