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6.28 19:45
수정 : 2010.06.28 19:45
[건강한 세상]
아이의 문제가 타고난 것이 중요한지, 아니면 기르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아동을 다루는 학문 분야에서는 아주 유명한 주제다. 이 논쟁의 결론은 대개는 양시론이어서 이쪽도 맞고 저쪽도 맞다. 그렇지만 논쟁은 끝나지 않는다. 도대체 어느 쪽이 어느 정도만큼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사실 타고난 부분과 길러진 부분은 아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예를 들어보자. 타고난 기질이 예민해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아이가 있다. 이 아이에게 뭔가 변화를 주면 아이는 울면서 싫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런 아이의 반응에 부모는 놀라서 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다. 뭔가 시도하면 바로 부정적인 반응이 뒤따르기에 부모는 새롭게 시도하는 것을 피하도록 변화한다. 결국 그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새로운 경험을 가질 기회가 적은 채 온실 속에서 길러지기 쉽다. 그렇다면 타고난 약점대로 기르지 않고 뭔가 다르게 기를 방법은 없을까?
없지는 않다. 다만 어려울 뿐. 수위를 조절하면서 아이에게 조금씩 도전하도록 격려하면 아이는 달라진다. 힘들어하면 뒤로 물러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또 작은 시도를 한다. 도전이 쉬워지도록 주변 상황도 조정한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에너지가 든다. 아이를 관찰하고 상황도 장악해야 한다. 축구로 말하자면 부모가 경기장에서 마냥 뛰어다니는 선수여서는 안 되고 경기장의 선수들을 모두 움직이는 감독이어야 하는 셈이다.
이 과정이 쉽지 않기에 우리는 대부분 타고난 대로 길러지기 쉽다. 예민한 기질의 아이는 불안한 성격의 어른으로, 충동적인 기질의 아이는 공격적인 성격의 어른이 되기 쉽다. 결국 타고난 부분과 길러진 부분은 운명적으로 하나로 합쳐진다.
좋은 부모는, 힘들지만 이러한 운명에 저항하는 부모다. 아이의 타고난 기질적 특성을 발견하고 이를 조금씩 조정해가는 부모다. 기질이란 강력한 경향성이 있기에 급하게 변화를 시도하면 여린 새순을 잡아당길 때 그렇듯 심한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기질을 인정하면서 다른 쪽을 보충해주는 편이 현명하다.
예민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면 작은 시도를 성공으로 이끌도록 유도해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아이들은 흔히 어른들에게 의존하면서 스스로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럴 때는 부모가 도우면서도 뒤로 물러나 숨은 채 생색을 내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아이는 자기 스스로 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작은 상처와 좌절을 경험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부모가 나서서 해주지는 않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 부모가 있고, 그 부모는 나를 판단하지 않고 온전히 인정하는 진정한 내 편이라고 느낀다면 아이는 두려움을 좀더 견뎌낼 수 있다.
글을 읽고 한숨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 쉽지만은 않다. 아이 키우기는 누구나 경험이 부족하다. 게다가 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다. 힘든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어찌 보면 못할 정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훈련을 통해 구조견이나 마약탐지견 같은 개를 키우는 조련사에게 이 정도의 노력은 일상적이라고 한다. 우리 아이들이 개보다는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사람의 자식인데. 어쩌면 문제는 쉽게 해치우고 싶은 얄팍한 우리 마음에 있을지 모른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서울신경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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