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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 리블랭크는 버려지는 옷들, 소파 가죽과 펼침막 등에 디자인의 마법을 걸어 멋진 제품으로 거듭나게 하는 ‘업사이클링 디자인’ 그룹이다. 채수경 대표(사진 가운데 재봉틀 앞)와 이지연 매니저(앞줄 가운데) 등 리블랭크 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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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세상] 디자인그룹 ‘리블랭크’
소파·펼침막·헌옷 바꿔 ‘재탄생’ 단순 재활용 넘는 ‘업사이클링’
유명 쇼핑몰 입점·대기업 협력…아이돌 연예인도 즐겨 입는 옷
오랫동안 입지 않고 유행도 지나 먼지 앉은 옷, 폐기물 딱지가 붙어 아파트 공터에 나앉아 있는 소파, 행사가 끝난 뒤에 걸린 펼침막…. 머지않아 쓰레기장으로 가 소각되거나 땅에 묻히게 될 운명에 놓인 것들이다.
‘죽음’을 앞둔 그들에게 구세주가 나타났다. 업사이클링 디자이너 그룹 리블랭크다. 업사이클링이란 버려지는 재료를 다시 쓰는 리사이클링을 넘어 더 가치 있게 쓰도록 한다는 뜻을 담은 말이다. 이 회사는 2006년 아름다운 가게 재활용 디자인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김동환씨와 디자이너 채수경, 윤진선, 홍선영씨가 주축이 돼 만든 사회적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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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그룹 ‘리블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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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당산동 문래공원 사거리에 있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먼저 가죽 더미가 눈에 들어온다. 이 회사의 ‘청일점’인 디자이너 김동환씨가 전날 의정부의 소파 천갈이 업체로부터 받아온 것들이다. 소각장에서 연기로 사라질 운명이었던 이 가죽은 리블랭크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가방, 카드지갑, 필통 등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 옆에는 재활용 가게에서조차 손님들로부터 외면당한 와이셔츠, 티셔츠, 양복 등이 줄지어 걸려 있다. 앵글로 만든 간이창고에는 용도 폐기된 현수막들이 칸마다 빼곡하다. 이지연 매니저는 “재활용 소재들은 대부분 직원이 직접 수거해 온다”고 말했다. 방진복처럼 생긴 흰옷을 입고 버려진 재료를 거둬오는 일을 트래시 어택(trash attack)이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갖고 오지는 않는다. 특히 현수막은 까다롭게 고른다. 이씨는 “현수막의 경우 천보다 타폴린이나 메시 같은 소재로 만든 현수막이 강도가 높고 방수 효과가 좋아 활용도가 높다”고 했다.
여느 작업장과 달리 리블랭크 사무실은 조용하다. 하나의 디자인으로 대량생산하는 게 아닌 만큼 창의력과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느 디자인에 비해 고려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품과 시간도 많이 든다. 올여름을 겨냥해 만든 티셔츠가 그렇다. 4개의 티셔츠로 하나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디자이너 홍선영(29)씨는 “기존 티셔츠 앞면의 프린트를 재구성해 새로운 무늬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며 “적합한 무늬를 찾다 보면 티셔츠 한 장을 디자인하는 데 몇 주가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핸드백용 가죽을 재단중인 어시스턴트 디자이너 김진주(26)씨는 “실수로 재료를 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재단을 할 때 여러 번 생각한 뒤 조심스럽게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버려진 재료를 결합해 만들기 때문에 리블랭크의 제품은 똑같은 것이 없다. 대부분 핸드메이드다. 디자이너가 만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익한 가치까지 담긴 그런 옷과 액세서리를 찾는다면 리블랭크가 딱이다. 가죽으로 만든 카드지갑이나 필통은 1만~2만원, 핸드백이나 재킷은 십여만원에서 수십만원 사이다. 이들 제품은 서울 신사동의 에이랜드(ALAND), 압구정동의 므스크(msk), 합정동의 벼레별씨, 홍익대 앞 상상마당, 서울타워의 엔(N)타워 등 패션잡화 매장에 전시돼 있다. 청와대 기념품 가게에서도 리블랭크가 폐품에 건 ‘마법’을 만날 수 있다.
좋은 뜻을 가진 사회적 기업이지만 아직 경영은 어렵다. 지난해 매출은 1억원가량. 사회적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금이 없다면 디자이너, 어시스턴트 디자이너, 재봉사 등 14명이 일하는 회사를 꾸려가기에는 턱없이 적은 규모다.
희망은 리블랭크의 좋은 뜻에 공감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 지난해 9월 한 외국계 회사의 요청에 따라 제작한 필통, 이면지 노트패드, 교통카드 케이스 등 가죽 제품 3종 세트는 호평을 받았다. ㈜한섬의 여성복 브랜드 마인(MINE) 20주년 기념 전시회 때는 회사 쪽의 요청으로 창고에 있던 옷을 재료로 새옷을 만들어 전시하기도 했다. 제일모직의 일모스트리트, 6번가(6TH AVENUE), 일본의 가로수길 등과 같은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한 것도 희망을 준다.
독특한 디자인은 연예인들의 눈길도 끌고 있다. 탤런트 이민호와 에픽하이에 옷을 협찬했고, 걸그룹 에프엑스(F/X)는 리블랭크의 옷을 직접 사다 입었다. 물론 연예인 협찬은 경영에 도움이 안 된다. 연예인들이 입은 옷을 보고 일반인들이 사려고 해도 같은 옷이 없기 때문이다. 리사이클링 디자인에 대해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리사이클링을 위한 디자인 기술은 어느 정도 확립이 됐어요. 이제 수익성을 높이는 쪽으로 고민을 하려고 합니다. 리블랭크가 야심 차게 추진중인 클로젯 프로젝트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길 바랍니다.”
글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사진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리블랭크 제공
‘클로젯 프로젝트’란?
장롱 속 잠든 옷, 더 좋은 새옷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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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젯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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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은 기업으로서 성공해야 사회적 의미를 실현한다. 리블랭크의 사회적 가치는 이미 입증됐다. 이제 기업으로서 생존해야 한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클로젯 프로젝트’와 기업협력 업사이클링이다.
클로젯 프로젝트는 벽장(closet)에 든 옷을 해체한 뒤 고객과 협의해 새로운 상품으로 다시 만드는 일이다. 디자이너의 손을 거치고 나면 오래돼 빛이 바랜 가죽코트나 점퍼가 명품 못지않은 가방이나 모자 등으로 거듭나고, 순모 양복 재킷이 고급 손가방이 된다. 청바지처럼 간단히 업사이클링이 가능한 제품은 6만~7만원, 가죽처럼 작업이 복잡하고 어려운 제품은 2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든다. 이 프로젝트 참여를 원하는 이들은 서울 신사동의 매장 가로수길(02-3445-1920)을 직접 찾아가거나 홈페이지(www.reblank.com) 초기화면에서 숍(SHOP)으로 들어가면 된다.
기업협력 업사이클링은 기업에서 정기적 혹은 부정기적으로 버려지는 재료를 활용한 프로젝트다. 호텔이나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교체하면서 버리는 시트나 커튼, 홍보용 대형 펼침막 등으로 해당 기업 홍보용 물품이나 사내외 고객을 위한 선물을 만들 수 있다. 영국의 업사이클링 회사 원어게인(Worn Again)을 모델로 한 사업으로 이 회사는 유로스타 직원들이 입다 버린 유니폼과 한 회사에서 홍보용으로 쓴 애드벌룬으로 노트북용 파우치와 가방 등을 만들었다.
리블랭크 쪽도 기업에서 정기적 또는 대량으로 버려지는 물품이 있으면 언제든지 그에 대한 솔루션(해결방법)을 제공할 뜻이 있다고 밝혔다. (02)744-1365.
권복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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