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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6.30 21:47 수정 : 2010.06.30 21:47

[매거진 esc] 한살림과 함께하는 밥상사연 공모전

내가 몸담고 있던 어느 협회의 지부장님께서는 초등학교 행정실장님이셨는데 어린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많았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 여러 명을 도와주는 것은 물론 그중 조손가정 아이의 집에 방문해 밥도 해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는 등 부모처럼 아이를 돌봐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 역시도 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부터 막연히 들었던 그 생각을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한 초등학교에 전화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소개받았다. 학생 담당 선생님께서는 그런 내가 의심스러웠는지 재차 이유를 물었다. 그냥 ‘돕고 싶어서’라고 대답한 내가 못 미더웠나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워낙 사기가 많으니 이해했다.

내가 소개받은 아이는 4학년 여자아이로 엄마와 6학년 오빠가 함께 살았다. 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일을 나가 저녁 늦게 돌아오고 낮 동안 남매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등 다른 일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형편이 어려워 학원은 당연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큰 도시 같은 곳은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무료 공부방이 있다는데 이곳은 작은 마을이라 그런지 그런 게 없는 듯했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는 게 좋을까 생각했다. 금전적인 도움보단 아이들의 자립심을 키울 수 있게 과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예전 학원 강사일을 했던 것을 십분 발휘해 남매의 공부를 돕기 시작했다. 문제집도 직접 사 아이들의 집에서 일주일에 두번씩 공부를 했다. 아이들은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여느 아이들 같지 않게 어리광이나 말썽을 피우지 않았다. 아이들과의 수업은 재밌었다. 6학년 오빠는 머리가 똑똑해 한번 말해도 스스로 척척 해결했고 4학년 동생은 문제집 풀이 등 내준 숙제를 정말로 열심히 했다. 아이들은 내가 고마웠는지 수업에 열심히 임하는 자세로 보답했다. 그렇게 몇달이 지나고 내가 결혼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다음주가 마지막 수업이 될 것 같다고 얘기하자 아이들은 아쉬운 눈빛을 보냈다.

마지막 수업 날 아이들 집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라면이 끓여져 있었다. 아이들은 해맑은 미소로 보글보글 갓 끓인 라면상 앞에 앉아 나를 맞이했다. 순간 뭉클한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라면에 송송 썰어 넣은 파를 보니 더욱 그랬다. 화려한 밥상은 아니었지만 고사리손으로 끓인 라면은 꿀맛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 아이들의 미소가 떠오른다.

박효연/경북 구미시 남통동

‘내 인생의 잊지 못할 밥상’ 독자 사연 공모전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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