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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나눔을 통해 좀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피아니스트 임미정씨는 그동안 북한과 국내외 저소층 아이들에게 악기 보급과 음악 교육을 해왔다. 임씨가 이달 초 캄보디아 프놈펜 외곽 호산나 초등학교에서 합창단 아이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사진 하나를위한음악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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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세상] ‘하나를위한음악재단’ 세운 피아니스트 임미정
성공한 연주가로 이웃사랑 앞장…남북 음악교류하며 깨달음 얻어
북 어린이에 악기보내 ‘행복 나눔’ 저소득층 아이들에 음악 교육도
피아니스트 임미정(45·한세대 교수)씨의 어릴 적 꿈은 고아원장이었다. 대여섯살 때부터 그랬다고 한다. 부모는 딸에게서 음악적 재능을 발견했지만, 그는 “음악하며 혼자 잘살면 안 될 것 같아” 일반 중학교에 들어갔다.
재능은 숨길 수 없었다. 1학년 담임(테너 심두석)의 권유로 서울예고에 진학했다. 상도 휩쓸었다. 육영, 삼익, 동아 등 각종 콩쿠르에서 1위를 했고, 고3 때는 지휘자 금난새의 눈에 띄어 케이비에스(KBS) 교향악단과 협연을 했다.
서울대 졸업 뒤 피아니스트로 그는 성공 가도를 달렸다. 줄리아드 음대(석사)와 뉴욕주립대(박사)를 졸업했고, 1997년 샌안토니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만장일치로 1위를 차지했으며 아메리칸 심포니 등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다. 그럼에도 무언가 마뜩지 않은 게 있었다. “남들은 부러워하지만 내 인생에 뭔가 이해되지 않는 게 있었어요.”
그의 음악 인생에는 예기치 않은 일들이 끼어들었다. 1980년 케이비에스 교향악단과 협연을 위해 방송국에 들렀을 때였다. 이산가족찾기 방송이 시작된 날이라 촬영 카메라가 없어 협연이 두 차례 연기됐다. 방송국에서 녹화 시간을 기다리며 그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우리 민족에게 그런 고통이 남아 있었더라고요.”
미국 유학 시절인 1989년 선배들의 요청으로 ‘남북 가곡의 밤’에서 반주를 맡았다. 행사가 끝난 뒤 그를 찾아와 고향 생각을 하며 눈물을 쏟는 이들이 있었다. 이듬해 미국 10대 도시를 순회했다. 반응은 비슷했다. 감동적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피아니스트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 한쪽엔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남북 가곡의 밤’ 행사가 인연이 돼 그는 2000년 북한으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남북정상회담 발표 뉴스를 들으며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향했다. 미국 출신 지휘자와 남한 출신 연주자, 그리고 조선 국립교향악단.
출신은 달랐지만 서로 배려하며 작은 몸짓은 물론 호흡까지 신경 쓰며 연주를 했다. 모두 자신의 음악을 조건 없이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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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위한음악재단’ 세운 피아니스트 임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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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음악이 어떠해야 하는지 깨달았어요. 많은 연주자가 카네기홀에 서는 꿈을 꿉니다. 그러지 못해 좌절합니다. 하지만 음악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사람을 묶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음악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지 그런 마법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제 에너지의 일정 부분을 나눔에 쓰기로 결심한 이유입니다.” 임씨는 북에서 돌아온 뒤 음악 나눔을 준비했다. 국내외 여러 교향악단과의 협연, 전국 순회 독주회, 국제 피아노대회 심사위원 등 피아니스트로서 바쁜 활동 중에도 그는 “음악의 이상을 삶 속에서 구현하기 위한 길”을 찾았다. 하나를위한음악재단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임씨가 재단을 통해 벌인 첫 나눔의 대상은 북녘의 어린이. 2005년 8월 도라산역사에서 음악회를 열어 북한 어린이에게 피리 300개를, 2008년에는 하모니카 1000개를 보냈다. 통일 전까지 1만개를 보내는 게 목표다. 피리를 하모니카로 바꾼 이유는 어른들도 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모니카 하나만 있어도 가족이 돌아가며 불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어려운 때를 이겨내는 힘이 됩니다.” 임씨는 이어 보육원, 달동네, 몽골학교 등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음악 교육 프로그램 엠포원(M4one) 아카데미를 열었다. 서울의 한 보육원 아이 5명에서 시작된 아카데미는 지금 서울, 부천, 대구, 함양 등 전국 각지에서 500명에게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 색소폰, 합창 등을 가르친다. 강습료는 무료 또는 한 달에 1만~5만원. 2년 과정을 마친 아이들에게는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진다. “아이들의 눈빛과 말투 행동 등 모든 것이 달라져요. 자신감이 생기지요.” 음악 나눔은 모금을 위한 큰 규모의 콘서트 외에 출장 연주회 형식을 띤 ‘나들이 음악회’를 통해서도 이뤄진다. 각급 학교, 소년원, 복지관, 풀뿌리 시민단체 등 어디든지 찾아간다. 1년에 10~20회가량 ‘나들이’가 이뤄진다. 임씨는 올해 국외로도 눈을 돌렸다. 지뢰 제거 사업을 하는 남동생의 소개로 이달 초 캄보디아를 방문한 그는 음악 교사 파견을 준비중이다. 한 달에 300만~500만원의 비용이 드는 일이라 후원자를 찾고 있다. 지진으로 트라우마를 겪고, 재건사업 동안 방치될 아이들을 위한 아이티(IT) 프로젝트도 추진중이다. 이 모든 일을 혼자 힘으로 하긴 어렵다. 이경선·최은식 서울대 음대 교수, 재즈 연주자 박동화, 첼리스트 정명화, 소프라노 신윤정씨 등 100명 가까운 음악인들이 나눔에 참여하고 있다. 200명에 불과하지만 후원회원도 힘이 된다. 임씨는 재단 활동을 하면서 음악가로서 새로운 삶에 눈을 뜬 후배들을 많이 본다. 연주를 한 뒤 자신이 더 많이 받고 왔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큰 기쁨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옥죄던 매듭이 풀렸다. “연주와 재단 일을 함께하면서 제 인생의 퍼즐이 맞춰진 느낌이 들어요.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편하고 행복합니다.” 고아원 원장을 꿈꾸던, 특별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아이의 꿈은 그렇게 이뤄졌다.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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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을 위한 ‘콘서트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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